Photography Unknown #1_Body & Nature

2014_0311 ▶ 2014_0425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4_0311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가브리엘라 후크 Gabriela Huk_카야 도브로볼스카 Kaja Dobrowolska 로테 플뢰 크리스텐센 Lotte Fløe Christensen_한경은 Han Kyungeun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J ART SPACE J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159-3번지 SPG Dream 빌딩 8층 Tel. +82.31.712.7528 www.artspacej.com

몸, 사진, 자연의 대화 ● 19세기 초 사진의 발명과 함께, 사진은 급속도로 사회의 흐름에 편승했다. 작가들은 사회에 기반하여 인물을 대상화시켰고, 그에 따라 사진 속 인물들은 사회를 대변하는 초상이 되었다. 이처럼 사진 속에 나타난 몸의 형상은 개인의 영역에 있지 않고 사회적 영역에 속해 있었다. 사진이 보급됨에 따라 당대 중산층은, 귀족 혹은 부를 축적한 상류층을 모방해 사진을 찍음으로써 초상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켰다. 또한 사진을 유형학적 탐구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파리 경시청 소속 알퐁스 베르티옹은 인체 측정을 통한 범죄자의 꼴을 구분했으며,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는 여러 직업 군에 있는 인물들을 대상화하여 분류하기도 했다. 그리고 워커 에반스(Walker Evans)나,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과 같은 20세기 초 FSA(Farm Security Administration : 농업안정국) 산하 사진작가들은 사회적 현상을 드러내기 위해 특정 공간에 놓인 인물들을 촬영했다. 결과적으로 사진 속에 드러난 인물들은 사회를 대변하는 형상 곧 '몸'으로써 카메라와 마주했다. 이후 사진에 나타난 몸에 대한 인식은 사회의 흐름에 따라 차츰 변화하기 시작했다. 몸의 형상은 사회적 영역에서 벗어나 개인적 지위를 얻기 시작했다. 촬영자는 사회적 현상을 보기에 앞서 주체적 해석과 감성을 따랐고, 사진에 나타난 몸을 특정 공간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대상으로 보려 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모두는 개인의 영역에서 몸을 사유하고 있으며, 아울러 자신이 속한 사회와 세계를 개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사진 매체를 통해 주체와 세계 사이에 드러나는 몸의 형상에 주목하며, 이를 통해 작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려 한다.

가브리엘라 후크_Re:Shaped(Untitled Ⅱ)_피그먼트 프린트_65×65cm_2011

주체-사진-세계 ● 사진은 찰나의 시간을 통해 사진 속의 "대상이 거기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대상은 셔터가 닫힘과 동시에 실재에서 떨어져 나와 끝없이 과거로 흘러간다. 여기서 실재하는 대상과 사진 이미지에서 실재하는 대상의 간극이 생겨난다. 사진에 드러난 대상과의 물리적 연결은 이 순간에 의해 단절되며 이미지 형태의 결과물은 실재 대상의 타자로서 존재한다. 이처럼 촬영된 이미지는 주체인 대상과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형성하나, 대상에 귀속되지 않는 독립적 개체로 발현된다. 카메라를 통해 타자화된 대상을 품게 된 이미지는, 실재하는 세계에 지속적으로 물음을 던지고 실재와 비실재의 영역에 함께 존재한다. 사진은 이미지 자체인 동시에 사진을 찍는 주체자의 행위를 기억한다. 파인더 안에 비친 대상을 인식하고 셔터를 눌러 촬영하는 과정을 통해 사진 이미지는 사진을 찍는 주체자와 대상 사이의 접점을 형성하며 사진 이미지는 주체자가 바라보는 시선을 대변한다. 주체-몸-세계 ● 몸은 흔히 정신과 이원론적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여기서 정신은 사유하는 주체를 말한다면 몸은 실재하는 형태로 주체를 대변하는 일종의 도구가 된다. 하지만 몸이란 정신과 별개의 측면에서 다뤄질 수 없는 불가분성을 지니고 있다. 몸의 실재성은 사유의 차원에 머물러있던 정신을 끌어내어 실재하는 세계와 맞닿을 수 있게 한다. 즉, 정신은 몸이라는 관문을 통해 세계와 마주할 수 있으며, 몸의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사유를 형성한다. 따라서 정신은 몸이라는 실체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몸과 함께해야 비로소 완전한 주체가 될 수 있다. 몸 또한 마찬가지다. 몸은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다면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

가브리엘라 후크_Re:Shaped(Untitled Ⅰ)_피그먼트 프린트_95×65cm_2011

몸-사진-언어 ● 앞서 말했듯, 이원론적 사고에 있어서 몸은 정신을 대변하는 언어적 도구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몸은 정신의 영역을 실재계로 확장하기 위한 언어처럼 작용하며, 이에 따라 세계와 대화하는 도구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몸의 관문적 형태는 사진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난다. 몸은 사진은 찍는 순간 정신과 분절되어 이미지 자체로 존재한다. 여기서 몸은 언어의 지위를 갖추게 되고 고유한 형상이 된다. 그렇다면 정신에서 떨어져 나온 몸의 형상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사유할 수 있는가?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초인 소쉬르는, 언어활동에 있어 사회적이고 체계적인 측면을 랑그(Langue)로,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발화의 측면을 파롤(Parole)이라 하였다. 랑그와 파롤은 서로 상반되나, 이해 관계를 맺으며 상호 보완적인 형태를 띤다. 일종의 파롤(Parole)적 존재인 작가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아와 관념을 바탕으로 랑그(Langue)라는 보편적 세계와 소통을 시도한다. 그들은 거대한 세계 속에 존재하는 개인으로서 사진을 통해 몸을 대상화하고 개인의 존재를 규명한다. 몸은 그들에게 있어 사유의 대상이자 자연과 공간, 그리고 타인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언어로 작용한다.

가브리엘라 후크_Eikon(Untitled Ⅰ)_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09

사진에 나타난 몸 ● 가브리엘라 후크(Gabriela Huk)는 자신의 몸을 촬영한다. 이미지로 형상화된 몸은 정신과 독립된 존재로서 작가 자신과 마주한다.「Re:Shaped」시리즈에서 그녀의 몸은 검은 천을 감싼 테이블 위에서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자신의 몸을 대상화시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함이며, 몸은 일종의 언어적 도구가 된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또 다른 언어를 끌어들인다. 그것은 바로 기하학적인 선과 도형의 형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선과 도형의 체계적인 형태는 몸을 규정짓는다. 그녀의 몸은 기하학적인 언어들을 수용하면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로써 완성된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몸에 대한 탐구는 정신의 기틀을 다지고 세계와 대화하기 위한 수단과 같다. 흔히 사회적, 문화적 기준과 통념들은 개인의 주체성을 제한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의문을「Eikon」시리즈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프린트 된 자신의 몸 이미지를 다양한 형태로 접어서 다시 촬영한다. 변형된 이미지는 더 이상 몸의 주체성을 대변하지 않으며, 또 다른 형식의 이미지가 된다. 즉, 접힌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몸에 대한 보편적인 편견을 적용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작가는 사회적, 문화적 기준과 통념 이전에 온전한 주체로서 개인을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카야 도브로볼스카_Keep me in the Dark, from Memory Box series_단채널 영상_2011
카야 도브로볼스카_Take one, from Emotional Landscapes series_단채널 영상_2012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과거가 남겨진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흔적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존되거나 단지 기억으로써 무형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들은 회상의 과정에서 과거로 흘러 들어가 달콤한 향수에 젖으며 그곳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카야 도브로볼스카(Kaja Dobrowolska)는 본인의 유년 시절이 기록된 VHS 비디오테이프를 토대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나간다. 그녀는 영상을 스틸 이미지로 만들고, 반복과 되감기를 이용해 재구성함에 따라 단순기록의 영상에 주체적으로 개입한다. 「Memory Box」시리즈의 일환인「Keep me in the dark」와「Memory Box」는 그녀가 유년시절을 기록한 VHS(Video Home System) 테이프를 기반으로 한다. VHS 테이프는 필름으로써, 즉 물질적인 존재인 비디오테이프로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 현재에 와서 영상을 저장하는 공간이 유투브나 인터넷으로 대체됨에 따라 느껴지는 물리적 상실감은 영상에 나타난 90년대의 모습을 더욱 기묘하게 한다. VHS 테이프에 기록된 그녀의 유년시절은 성장통에 수반하는 모호함과 불확실함, 그리고 그에 따른 불안을 담고 있다. 그녀에게 과거를 바라보는 행위는 단순히 관찰을 넘어 주변의 것들을 바로 보는 과정이며, 자신의 현재를 더욱 선명히 자각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또한 반복적인 구성은 영상에 수반되는 시간성을 해체하고 현재와 과거의 거리감을 모호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영상 속에 나타난 그녀 자신과 90년대의 모습들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로서 존재하고 있다.

로테 플뢰 크리스텐센_I.solated (Plants) #5_피그먼트 프린트_30.5×24.5cm_2008
로테 플뢰 크리스텐센_Untitled (Glass House), from View Towers_피그먼트 프린트_56×44cm_2012

자연과 몸 ● 자연의 삶은 사유에 의한 지식이 아닌 경험에 의한 체득을 우선으로 한다. 자연은 우리들의 존재를 규정짓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도 사회적 형태, 즉 생태계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자연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개인을 책임지지 않는다. 덴마크 작가 로테 플뢰 크리스텐센(Lotte Fløe Christensen)은 자연을 도구로 사용하여 인간에 대해 깊이 탐구한다. 작가는 몸의 감각적이고 순리적인 반응에 따라 자연 속에서 삶의 관점을 조직하고, 거대한 세계를 마주한다. 작가는「Isolated(Plants)」시리즈에서 인간의 일반적인 통념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하얀 종이를 이용해 자라난 화초들을 땅에서 고립시킨다. 따라서 하얀 배경 안에 놓인 화초들은 사진 속에서 외부적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대상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즉, 이 작품에는 대상을 판단하고 규정짓기보다는 대상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관점은「View towers」시리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얇은 나뭇가지들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형태는 사진적 기록에 따라 영구적인 형태를 갖게 되며 비로소 대상은 독립된 주체로서 존재한다. 주체로서의 대상, 하얀 배경, 그리고 대상이 놓여 있는 공간은 한 장의 이미지로 완성되어 작가의 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로테 플뢰 크리스텐센_Screen, from Applying Sense_피그먼트 프린트_50.8×61.3cm_2007

위의 두 시리즈에서는 자연을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여 자연물을 대상화시켰다면,「Applying Sense」시리즈에서는 자신이 행위의 주체가 되어 자연 공간으로 파고든다. 작가는 자연, 즉 세계를 탐색하고 그 안에서 다양하게 행위 함에 따라 공간 속에 드러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미지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행위들은 자연이라는 넓은 세계 속에서 개인의 영역을 다져나가는 토대로 작용하며, 이를 통해 세계와 관계 맺음에 따라 개인과 주체의 영역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이는 곧 인간적인 삶의 올바른 태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이기도 하다. 카야 도브로볼스카(Kaja Dobrowolska)는 또 다른 작품「Emotional Landscape」시리즈에서 풍경을 관조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직접 풍경 속에 들어가 행위 함에 따라 공간과 자신의 관계를 체험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여기서 몸은 공간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수단이자, 자신의 주체적 감정을 공간에 반영하기 위한 매개물로 작용한다. 또한 그러한 몸이 공간 속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정적인 상태가 되는 것은 영상과 사진의 모호한 경계를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공간과 조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공간과 자신의 물리적인 간극을 줄여나감에 따라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관점을 조직하는 기반을 쌓는다.

한경은_시작 자체의 의도가 불순했다, from 기억의 가소성_피그먼트 프린트_93.3×80cm_2013

몸-치유 ● 자신의 정신적 상처를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큰 결심과 단호함이 필요하다. 그만큼 정신적 상처, 트라우마는 타인과의 접점을 차단한 채, 내밀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작가는 타자의 상처를 마주하며, 그들의 깊은 내면과 긴밀한 대화를 시도한다. 대화의 방법으로 한경은(Han Kyungeun)은「기억의 가소성」시리즈에서 실제로 각각의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을 작업에 참여시킨다. 작가는 인위적으로 상처를 (특수)분장한 인물들을 포트레이트 형식으로 촬영함에 따라 사진을 통한 치유의 과정을 실험한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되고 재배열되어 확고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트라우마를 마음의 심연 속에서 끌어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몸에 상처를 만든다. 몸에 새겨진 가짜 상처는 그들의 상처받은 정신이 배어 나오기 위한 통로가 된다. 사진 속 인물들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며, 치유와 해소의 과정을 겪는다. 실재하는 몸의 형상을 빌려 무형의 상처를 시각화하는 과정은 인물들 각 개인의 내면과 깊은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작가는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 타인과 대화함에 따라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나아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한다.

한경은_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from 기억의 가소성_피그먼트 프린트_93.3×80cm_2013

신체가 손상된 후 치유 과정에서 상처가 생겨날 때 우리의 정신은 상처를 주시한다. 허나 상처를 방치하거나 건드릴 경우 치유는 지연되거나 외려 덧나기 마련이다. 고통을 감내하고 주의를 기울이면서 상처는 마침내 치유된다. 이런 과정과도 같이 작가들의 작품은 그들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몸과 자아 그리고 성찰의 과정은 인내와 고통을 수반하며, 때로 주체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는 사유의 굴레에 빠뜨리기도 한다. 성찰의 과정은 주체성의 확립을 위한 성장의 한 방식이다. 몸을 바라보며 사유하는 과정은 곧 실재하는 세계에 주체적 시각을 부여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자신을 치유하는 동안 세계의 보편성에 휩쓸리지 않고, 존재를 견고히 만들고자 노력한다. 불확실성과 모호함으로 가득한 세계 속에 객체로서 오롯이 실재하며, 스스로를 재정립하려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삶을 해석하는 또 다른 시선을 공유할 수 있다. ■ 정효섭

Vol.20140311d | Photography Unknown #1_Body & Natur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