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예민함 Forced Sensitiveness

노세환展 / ROHSEAN / 盧世桓 / mixed media   2014_0703 ▶ 2014_0724 / 일,공휴일 휴관

노세환_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구분할 수 있는 예민함_Mono Edition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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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환 홈페이지_www.rohsean.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표갤러리 사우스 PYO GALLERY SOUTH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빌딩 B112호 Tel. +82.2.511.5295 www.pyogallery.com blog.naver.com/pyogallerys

기획된 세계(projected world)를 살아가는 소비자 ● 오늘날 원본과 복제,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논하는 것은 예전만큼 치명적인 주제가 아니다. 연예인의 성형여부에 대한 논란은 언젠가는 은퇴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이뻐졌으면 됐지 로 끝나는 신변잡기가 되었다. 성형 후 얼마나 변했는지, 아름다워졌는지가 우리의 관심일 뿐이다. 사연에 따라 참가자를 선정, 성형을 해주는 케이블 프로그램인 렛미인(Let 美人)은 시즌4가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판을 까는 방송사, 방송의 컨텐츠인 참가자, 스폰서인 성형외과, 소비자인 시청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궁극의 방송콘텐츠로 여겨지고 있다. ● 뉴스 프로그램에서 보도되는 여러가지 이슈들이 진실이라 믿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여지던 시기는 지났다. SBS, MBC, 종편채널인 조선TV와 JTBC의 뉴스를 비교해 볼 때 같은 사건 사고에 대한 내용전달은 같은 소스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그 전달의 온도가 다르다. 흔히 조중동이라 불리우는 자칭 '보수언론'과 한겨례, 경향 등의 '진보언론'이라고 불리우는 신문간의 대립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맛에 맞는 언론사를 취사선택해서 사건의 내용을 받아들이거나, 여러 방송에서 등장하는 주장들을 조합해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사실을 만든다. 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발달하고 이 새로운 채널을 통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 또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알려져있는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주장대로 매체에 따라 전달되는 내용은 달라진다. 같은 내용이라도 신문에서 다루어졌는가, 트위터에서 다루어졌는가라던지, 말로 전해지거나 편지로 전해지는 것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은 분 명 다르다. 그렇다. 해석이다. 오늘날의 세상을 우리는 견고한 세상을 지각, 수용하기보다는 해석으로써 받아들이고 있다. ● 작가 노세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견고함을 끊임없이 흔들며 우리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대해 질문을 던져 왔다.「Meltdown」시리즈는 과일과 야채와 같은 다양한 자연물, 혹은 신발이나 의자와 같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들이 제목의 의미처럼 마치 녹아내리는듯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드러낸다. 각 사물들은 흰색 공간을 부유하듯 떠 있으며 사물의 흰색 표면은 마치 컴퓨터로 렌더링한 듯 반짝이는 윤기를 내보이며 그 사물이 녹아내리듯 뚝 뚝 방울져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유도되는 대상의 상태에 대한 관람자의 지각은 사실 양방향성을 띌 수 있다. 이 과정은 녹는 과정일 수 있지만 굳는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사진은 그 사이의 한 순간을 고정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녹는 것과 굳는 것. 조금 더 부연설명을 붙여보자. '과일이' 녹는 것과 '과일에 칠해진 페인트'가 굳는 것. 변화의 대상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이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 된다.「자장면집 백자」시리즈에서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장면 접시와 단무지 접시들을 화이트큐브라는 정제된 환경의 힘을 빌어 '백자'로 둔갑시킨다. 이렇듯 작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의식적, 무의식적인 영향을 통해 변화하는 지각의 모습들을 재치있게 제시하고 우리의 인식의 과정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노세환_믿을만한 야바위_단채널 영상_2014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 중 '예민함(sensitivity)'에 주목한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예민함은 사람마다 다른 개개인의 취향이나 특성이 아니라 사회시스템에 의해 조성되는 교육된 예민함이다. 현재 세상을 작동시키는 거의 유일한 경제 시tm템인 자본주의는 생산-소비, 그리고 이 순환의 규모를 확대함을 근간으로 한다. 즉, 오늘날은'대량생산 - 대량소비'의 사회이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소비의 사회」의 2부 소비의 이론에서 오늘날의 소비구조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생산-소비 구조에서 상품들이 많이 생산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 이 풍요로움의 상태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생산-소비 규모의 확대는 시스템의 만족, 즉 생산명령에 따른 필요가 충족될 뿐 이 안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의 필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 사회에서 풍요로움은 점점 물러나며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희소성의 원리이다. 인간은 풍요로움의 기호만을 가지고 희소성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아 넣는다. 시스템은 이러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상품을 만든다. 사람들은 결국 상대적인 결핍을 메꾸기 위해 더욱 소비에 집착한다. 이런 현대의 '차별화' 사회에서 모든 사회관계는 개인의 결핍감을 증대시킨다. 현대 사회에서소유물은 다른 이의 소유물간의 관계를 통해 상대화되기 때문이다. 이제 차별화를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 가격적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상품간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는 예민함이 미덕으로써 강조된다. 와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맛을 느끼는 사람은, 커피의 원산지와 블랜딩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맛을 아는 사람은, 사진과 회화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색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스마트한 사람이다. 패션과 취미잡지에서, 공중파 드라마에서, SNS에서 이들은 일반인들과는 차별화되는 능력자로서 그려진다. 여기에서 더욱 벌어지는 그들과 나라는 간극에 대한 결핍감은 예민함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게 만든다. 이제 이를 위해 사용되는 재화와 상품은 낭비가 아니라 소비가 된다. 소비는 구입하는 상품의 희소성과 스스로의 희소성을 위한 능동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노세환_36개의 생수를 구분할 수 있다는 미감을 믿는 오만함_Mono Edition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4

작가는 이러한 오늘날의 세상에 대해 제목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람자들에게 말을 건넨다.「36개의 생수를 구분할 수 있는 미감을 믿는 오만함」은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36개의 미네랄워터 제품을 각각 똑같은 시험관에 채워 넣어 배치한 작품이다. 생수 혹은 미네랄워터 시장은 오늘날 다양한 제품들이 가장 치열하게 마케팅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 중 하나이다. 우리 주위에서 에비앙(evian), 아쿠아피나(Aquafina), 페리에(Perrie), 볼빅(Volvic), 보스워터(Voss water), 히타천령수(日田天領水) 굳이 해외제품을 찾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제주, 강원, 동해, 금천 등 전국 각지에서 산출되는 온갖 무기물을 함유한 삼다수, 평창수, 퓨어생수, 천년동안, 마신다 에서부터 자스페, 휘오, 디아망, 디자인시에나워터, 파나블루 슈어라는 제품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상품들은 각기 해양심층수, 알프스 빙하, 노르웨이 피요르드 빙하를 녹인 물, 화산암반대수층 지하수 등의 지역적 차별성, 희소성을 무기로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원산지와 성분을 내세우며 자신의 제품이 몸에 좋다는 기능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정말 전달하고자 하는바는 각 상품이 가지는 고급스러움, 그리고 상품간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라는 소비자의 예민함이라는 능력여부이다. 티난트(Tynant)라는 상품에 이르면 과연 이게 대량생산되는 물병인지 예술작품인지 구별이 힘들 정도가 된다. "우리는 한 병의 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귀하의 품격에 어울리는 이미지, 그리고 우리를 알아볼 수 있는 감각입니다." 라는 카피가 어울릴법한 상황이다. 이들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의 미각, 촉각 등의 기능적 감각이나 건강이라는 결과가 아니다. 기호에 대한 학습된 정서적 예민함이다. 그 예민함에 대한 고찰을 작가는 사진매체를 통해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밖에도 작가는 피망과 파프리카,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 오렌지와 레몬 등의 상품을 통해 이들 스스로가 가진 물성-맛, 영양소, 구성성분, 생장모습-을 통해서가 아닌, 색을 통해 규정되는 우리의 인식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며 지각과정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이들 식물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는 분명히 다른 객체로서 인식되고 있다. 각자 다른 이름의 상품으로 팔리고 있으며 세간에서 이야기되는 장단점을 파악해 이들을 소비한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색 이외의 어떤 요소도 이들을 구별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단지 알록달록한 파프리카와 녹색의 피망, 녹색 브로콜리와 흰색 콜리플라워, 오렌지색 오렌지와 레몬색 레몬이라는 기묘한 예민함에 의해 절대적으로 인식되고 분류되어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상품을 소비하는데 사용가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오늘이다. 우리는 기능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한다. 사람들은 상품의 도구적 기능과 유용성에 끌려 지갑을 열지 않는다. 실제로 미네랄워터의 해양심층수의 무기성분이, 알프스의 빙하에 섞여있는 영양성분이 우리의 몸을 눈에 띄게 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굉장히 고농도로 농축된 약을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명확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소비자가 원산지의 차이, 성분의 차이, 그리고 가격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민감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희소성이 발생된다. 내가 이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다는. 실제의 효능이 아닌 차별성의 기호를 소유한다는 감각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노세환_약간 다름_목재, 석고, 타블렛 컴퓨터_60×50×50cm_2014

플루서(Vilem Flusser)는「피상성 예찬」에서 오늘날의 세상을 다툼(datum)이 아닌 팍툼(factum), 즉 주어진 것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인간은 주체에서 기획으로 변화한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해석을 넘어 세상의 제작이라는 지점이다. 진짜던 가짜던, 진실인가 거짓인가이던, 원본과 복제 사이에서던 이제 맞다 틀리다의 태도를 전적으로 고수하는 시기는 지났다. 물질과 비물질, 원자와 비트의 존재를 모두 알고 그 사이에서 공진하는 나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굴 안 그림자라는 플라톤주의적 이데아의 틀에서의 주체(subject)보다는 가상과 현실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 그 상황과 그 현실에 맞는 조합을 통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기획(project)으로서의 나' 라는 존재가 오늘날의 우리인 것이다. 이제 세상은 날것으로 존재하면서 전달되지 않는다. 기획되어 전달되며 그 내용을 기획하여 받아들인다. 작가는 이를 인지하고 이러한 오늘날의 현실을 작품을 통해 기획하여 보여주고 있다. ● 작가는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 바나나, 오렌지, 콜라, 생수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각각의 상품들을 구별할 수 있는 표피적 기호들을 흐린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관람자들에게 건넨다. 각자의 상품은 각자가 가진 성질을 계량된 객관적 지표를 통해 혹은 그 존재 차제로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강조할 부분은 강화시키거나 약한 부분은 제거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가공의 기호가 전달된다. 작가는 이러한 기호들을 비교하고 우위를 가리며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예민함이 시대의 미덕으로 주입되고 있다고 보았다. 사물에 대한 기호가 무심결에 주입되고 받아들여지는 일련의 인식과정을 '현대'예술을 규정하고 대표하는 방식, 낯설게 하기를 통해 오늘날의 기획된 세계에 대한 지각을 재고할 수 있도록 건네고 있다. ● 유의미화와 강의미화.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 비교해 너무나 커지고 너무나 많은 내용들이 떠돌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세상이니만큼 어떠한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힘들어졌다. 결국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이득이 될 만한 것을 골라내어 각자에 맞게 의미화하여 전달하거나 혹은 그 의미를 변형하여 강화한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처럼 되었다. 이런 가공된 콘텐츠 중에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고르고 비틀어 자신에게 맞게 받아들인다. 오늘날의 너무 다양하고 풍부하기에 혼란스러운 정보 사회를 효과적으로 조망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이러한 가공의 구도와 과정, 태도를 인식해야 한다는 지점이다. 생산-소비 시스템 안에서의 우리의 좌표 말이다. 이 자각이 흐리다면 자극적이고 강력한 입장쪽으로 전도당해 세상의 일부분만을 전부라 여기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소비자로서. ■ 허대찬

노세환_약간 다름_목재, 레진_110×100×100cm_2014

학습된 예민함 ● 학창시절의 시험들을 돌이켜보면 문제들은 객관식 문항들이 주를 이루고, 이것들은 다른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사지선다형 문제의 경우 4개의 항목 중에 2개 정도는 명확히 구분되나, 남은 두 가지는 고르기에 애매한 항목들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험문제라 생각된다. 이들은 학생들의 교과과정 이행상황을 점검하는 방법으로는 이상적이라 사려되지만, 이것들이 갖는 부작용들은 고려되지 않았다. 나의 과장된 예민함을 학교교육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다소 옹졸하고 무책임한 변명일지도 모르나, 혹시라도 나의 의견에 동의하는 교육학자 혹은 심리학자가 있다면, 나의 변명이 그럴듯해 보이도록 조금 더 과학적인 접근을 통한 근거를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러한 교육이 과장된 민감함의 시작이라면, 또 다른 과장된 민감함의 학습은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듯이 많은 식품브랜드들이 서로 비슷한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코카콜라-펩시콜라, 짜파게티-짜짜로니, 심지어 비빔면은 농심, 팔도 두 큰 식품업체가 같이 만들고 있다. ● 자이리톨 껌과 초코파이는 역시 롯데, 해태, 오리온 모두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각각의 브랜드에서 나오는 비슷한 제품들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는 예민함을 자랑이라 여기던 나는 군대에서도 초코파이는 오리온 제품만 취식했고, 콜라는 코카콜라, 소주는 참이슬, 비빔면은 역시 팔도 비빔면이라는 주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의 차이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것이 1년여 전이지만, 이 프로젝트를 전시로써 보이려고 하는 지금의 나는 내가 가진 민감함이 생각보다 무디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민감함이 오만이라고 결론 내며, 알게 모르게 주입되어진 고정관념이 문제라고 핑계대고 있다.

노세환_똑같이 만드려고 최선을 다한 바나나_Mono Edition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220cm_2014

서른 일곱해 동안 나를 미식가로 키운 것은 8할이 메스미디어였다. ● 시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면 가장 많이 하는 가벼운 이야기 주제 중 하나는 아마도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었는데 맛있더라'고 누군가 화두를 던지면, 그 뒤를 잇는 것은 '그 음식은 어디에 무슨 식당이 맛있다, 그것의 가장 맛있는 곳은 여기라며 자신이 아는 맛집들을 주문을 외우듯 읇곤 한다. 또한 인터넷에 맛집 검색을 하면 블로그 조회 건수가 3,732,256 건이나 되니 자신이 경험한 맛있는 집을 자랑삼아 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일이 되어버렸다. 입맛 까다로운 부친을 둔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맛집이라 불리는 음식점을 두루, 자주 많이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덕분에 또래 중에는 미식가로 통하게 되었다. 어디 가면 무엇이 맛이 있느냐는 친구들의 전화를 자주 받는 편이고, 맛있는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생수를 마실때도 몇 백원이 더 비싼 '삼다수'가 최고라 여기며 이를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먹은 음식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중저가 식당의 음식수준이 상당이 낮은 런던에서도 나는 잘 살아 왔으며, 어느 식당에서나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맛을 평가하는 민감함을 부리곤 하지만 음식을 잘 남기는 편은 아니다.

노세환_똑같이 만드려고 최선을 다한 사과_Mono Edition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220cm_2014

30개가 넘는 생수 브랜드 ● 생수의 맛을 구분한다는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은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어린 시절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 어린 시절 국내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고급생수의 대표브랜드인 에비앙을 파리에서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 비릿한 맛에 고개를 저었었다. 그때부터 나의 의식 안에는 나의 입맛이 생수를 구분할 정도로 예민하다 여겼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그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면 비행기에서 막 내린 후 미지근한 에비앙을 마셨으니 당연히 비릿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의 판단은 부적절한 조건을 고려하지 못한 채 섣불리 단정지은 결론과 그 인상이 현재까지 남아있었던 것이다. ●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생수브랜드는 과연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물들의 산지와 그 물을 위생적으로 담아내는 기술, 물의 품질 유지를 위한 노력들을 각각 달리 할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큰 차이를 갖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생수들은 각각이 가진 브랜드인지도와 매출로 증명된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각자 다른 가격을 가지고 있다. 대형 마트의 깜짝 세일을 감안하면, 가장 고가제품과 저가제품의 차이는 거의 두배에 이른다. 생수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있었던 나는 이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장난스런 시작이 진지함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들을 구분해내는 재간이 나에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 이번 작업을 위해 나의 입맛에 대한 의구심을 시작으로 쉽게 실험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생수를 구입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내가 최고의 물이라 여겼던 삼다수를 골라낸 적은 아직 없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카스와 하이트, 참이슬과 처음처럼 등 비슷하지만 다른 것들로 구분지어 놓은 것들, 특히 광고에 의해 상대방의 제품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범인들에게 쉽사리 구분되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물론 소주와 콜라 등의 특유의 맛이 존재하는 제품들의 경우는 둘을 번갈아 마시는 상황에서는 확연히 구분된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두 제품을 마시는 경우에는 역시 구분이 어렵다. 또한 코카콜라는 그 제품 특유의 화학적 배합을 절대 노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범죄수사에서 물방울 하나와 피 한방울로도 범인을 찾아내는 놀라운 과학발달시대에 시료들이 넘쳐나는 콜라의 배합을 알아내지 못한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두 대형콜라업체들은 서로의 배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사려되고, 단지 그들은 서로 다른 맛을 만들어 내고 있고 계속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콜라 맛에 발전에 쏟는 노력보다도 광고나 제품 디자인 등 맛 외적인 것에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점이 실제 매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학습된 대중들은 자신이 선택한 콜라들이 우수하다는 각 회사의 주장에 별로 다르지 않은 두 콜라의 차이를 억지로 구분하고 있지는 않은가?

노세환_36개의 생수를 구분할 수 있다는 미감을 믿는 오만함_Mono Edition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100cm_2014

미디어에 의한 세뇌 ● 미디어의 형태는 매우 많이 바뀌어 왔지만 아마도 인간이 정상적인 언어생활을 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입소문이라는 미디어는 존재했을 것이다. 어디 뭐가 좋더라 어딜 가야 뭘 얻을 수 있더라는 일명 "카더라통신"은 인류와 같이 발전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먹는 방송 대세인 요즘 TV를 보면 어느 지역에 뭐가 맛있는 집인지에 대한 생활정보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는 전시를 위해 케이블 방송과 종편을 포함해 맛집 코너가 속해 있는 프로그램들을 세다가 결국 포기했다. 맛집이라고 방송하는 미디어에 세뇌를 당한 뒤 그 음식점을 찾아갔을 때, 과연 우리는 객관적으로 이 맛집들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일단 맛있는 집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찾아간 채로 맛보기 시작한 점이 객관적인 시야를 가릴 것이고,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누군가도 자신의 까다로운 입맛을 과시하기 위한 편협한 생각에서 나온 의견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 얼마 전 토요일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의 눈을 가린 채 인스턴트 냉면과 유명 맛집의 냉면을 구분하는 방송편이 있었는데, 멤버들은 화학조미료가 더 들어간 인스턴트냉면을 유명 냉면집의 냉면이라도 판단했던 방송분도 역시 같은 맥락이라 생각된다.

노세환_바나나가 노랗다는 것은 나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_Mono Edition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100cm_2014

나는 생각보다 예민하지 않다. ● 이런 저런 생각들과 그 실험 후 내린 나의 결론은 어떤 부분에서 나는 생각보다 예민하지 않다. 하지만 상업적인 결과, 혹은 학습의 결과로 민감을 요구하는 사회는 나를 민감하게 하다. 여기게 만들고, 예민함이 남들과 다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찌 생각하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도한 민감함이 학습되어지며 많은 분쟁이 야기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둥글둥글하게 세상을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민감함을 학습시키고 있는 것, 또한 남들에게는 모나지 않은 인간관계를 요구하면서도 나 자신은 예민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남들은 일반적이고 자기 자신은 평범한 그들에 비해 예민하고 민감한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인 것일까? ● 이전 프로젝트 'Meltdown'에서 사람들이 잘 아는 오브제를 선택하여, 내가 제시하는 이미지와 감상자의 습관적 기억속에 있는 시각과 촉각과의 비교를 관객들에게 요구했었다. 그들이 가지는 관념이 고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비교대상을 계속적으로 제시한다. 대상들을 최대한 똑같이 제작하도록 노력하거나, 혹은 다르게 표시되어 있지만 구분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사물들을 비교할 수 있게 제시하고, 그것들이 같은 것이 아님을 표시하는 언급만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예민함에 대한 존중이다. 다만, 이번 작업 이전의 나의 예민함의 정도는 높은 수준이라 생각했는데, 작업을 한창 진행중인 지금은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내 작업을 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예민함은 그다지 날카롭지 않습니다." 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은 전혀 아니다. 그저 가지고 있는 예민함의 근원을 한번쯤 생각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세상을 너무 예민하게 사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 노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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