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Drawing 26_White-시선 White-Line of Sight

하태범展 / HATAEBUM / 河泰汎 / mixed media   2014_1009 ▶ 2014_1026 / 월요일,추석당일 휴관

하태범_Camp1_피그먼트 프린트_90×115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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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범 홈페이지_www.hataebum.wo.to

초대일시 / 2014_1008_수요일_05:00pm

주최 / 국민체육진흥공단 후원 / 서울문화재단_큐브원

관람료 성인, 대학생_3,000원(단체 1,500원) / 청소년(13-18세)_2,000원(단체 1,000원) 어린이(12세 미만)_1,000원(단체 500원) / 단체_20인 이상 『Water_천진난만』展 관람시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추석당일 휴관 *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소마드로잉센터 SOMA DRAWING CENTER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24(방이동 88-2번지) 제5전시실 Tel. +82.2.425.1077 www.somamuseum.org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장화진 명예관장)은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드로잉 전시를 지속적으로 이슈화하고자 매년 작가공모를 실시하여 최종 선정된 작가들의 전시회를 "Into Drawing"이란 이름으로 개최합니다. 올해는 2013년도 드로잉센터 작가공모에 선정된 작가 3인의 개인전으로 진행됩니다. 금년 두 번째 전시로 10월 9일부터 10월 26일까지 개최되는 "Into Drawing 26는 "White-시선 (White-Line of Sight)"라는 부제로 하태범의 평면, 입체, 영상작업을 선보입니다. 하태범은 사건, 사고, 전쟁, 재해의 현장을 포착한 보도사진을 이용하여 그 현장을 작은 모형으로 재현합니다. 사진을 모형으로 다시 사진이나 영상으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형태의 단순화, 색의 삭제, 사건의 가감을 통해 또 다른 가상의 현장을 생산하게 됩니다. "White-시선"에서는 지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매체를 통한 '이미지 과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며, 조상(凋傷) 작업 및 레이저컷(lasercut) 등의 형식을 도입한 신작을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드로잉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개성과 상상력 그리고 드로잉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과 실험정신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본 전시는 소마미술관 메인 전시(Water_천진난만)와 함께 관람 가능합니다. ■ 소마미술관

하태범_Boy_혼합재료_215×70×70cm_2014

시선의 무덤 : 하얀 풍경 ● 하태범은 2008년부터「White」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이 작업은 각종 매체에서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사건, 사고, 전쟁, 재해의 현장을 포착한 보도사진을 골라 그 현장을 작은 모형으로 재현한다. 그리고 모형을 이용하여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함으로써 현장을 재구성한다. 사진을 모형으로 다시 사진이나 영상으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형태의 단순화, 색의 삭제, 사건의 가감(加減)을 통해 또 다른 가상의 현장을 생산하게 된다. 완벽한 흰색으로 통제된 가상의 현장은 실제 사건의 현장에 남겨진 모든 부정적인 요소가 제거된 채 고요하고, 폭력의 잔해(殘骸)라고 하기엔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이렇듯 그의 작업에서 현실은 여러 겹의 전략적 장치에 가려지고, 여러 단계로 각색된 하얀 풍경은 초현실적인 영역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하태범_Camp2_피그먼트 프린트_90×115cm_2014
하태범_Camp3_피그먼트 프린트_90×123cm_2014

「White」작업은 앞서 설명한 기본적인 작업 방식을 유지하는 가운데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하태범은 이전 작업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첫째로 사건의 현장에 주목하여 사람의 흔적을 모두 지웠던 지난 작업과는 달리 인물을 부각시키고 있는 점, 둘째로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조각 작품을 전시했다는 점이다. 근래의 작업방식이라면 그 조각상들은 그대로 전시될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남겨져야 했을 것이다. 아니 애당초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졌어야 맞다. 물론 종이로 만든 실물 크기의 모형, 흰색으로 칠한 기성품 등을 전시한 적도 있지만, 커다란 좌대 위에 올려진 인물 조각상의 등장은 파격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작업을 위해 사진과 영상을 독학으로 익히고, 학창시절에도 해본 적 없다는 조상(彫像) 작업에 이어 레이저컷(lasercut) 등의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의 행보를 지켜보며, 하태범의「White」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갈 지 흥미진진한 기대를 가져봄직하다.

하태범_Pieta_혼합재료_155×110×110cm_2014
하태범_Pieta_혼합재료_155×110×110cm_2014_부분

「피에타」,「소년」,「소녀」등으로 명명된 이들 인물상은 언뜻 그리스·로마시대의 고전적 조각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인물들은 앙상하게 마른 두 모자(母子), 곡괭이를 든 소년, 채집 주머니를 멘 소녀 등 가난하고 남루(襤褸)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여기에 고전 시대의 영웅적 모습이나 장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아크릴판 표면을 레이저로 얕게 깎아 만든「얼굴」드로잉 연작은 여느 집에 쭉 걸어놓은 가족들의 기념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흰색 바탕에 희미한 요철(凹凸)로 겨우 구분할 수 있는 그 얼굴들은 우리의 어떤 시선이나 관심도 붙잡아두기 힘들만치 존재감이 없다. 작가는 고전적 조각상이나 기념사진이 가진 상징성과 기념비적 형식을 그의 작업에 예술적 장치로 차용하고 있다. 작가는 구호 단체의 이념적 목적하에 매체를 통해 전세계로 전해지고 있는 생존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의 참담한 실상이 "우리의 슬픔과 연민을 자극하는 매개체로서의 상징물" (작가노트)로 전락해버렸음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태범_필리핀톤도_피그먼트 프린트_90×127cm_2014

이처럼, 그의 작업에는 매체를 통해 언론이 조장하는, 사회가 대중에게 강요하는 목적성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즉, 그 목적성으로 인해 가려지고 변질되는 진실에 대한 의문,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인간성에 대한 각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미디어 문명은 전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해 줄 뿐 아니라 첨단 테크놀로지로 생생한 현장감까지 부여하고 있지만,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 거리는 오히려 더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 언론매체는 내성이 커지는 병에 더 강한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더욱더 자극적인 정보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소위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작가의 눈에는 구호 단체의 의도가 어떻든지 간에 그들이 공개하는 정보들 역시 이념을 전파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며, 거기엔 개개인의 존재의 의미는 없이 하나의 상징물로 전락해버린 허상만이 남게 된다. ● 그의 작업은 참혹하고 폭력적인, 안쓰럽고 참담한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반복된 유사 정보에의 노출로 인한 학습 효과로 이러한 허상에 익숙해진 대중은 현실 감각에 무뎌지는 부작용을 앓고 있다. 전쟁과 테러, 각종 사건과 재해, 빈곤과 소외는 지금도 진행중인 현실이지만, 너무나도 많은 폭력들이 미디어를 통해 익숙해져서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폭력에도 무감각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하태범의 작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냉정함으로 점철된 그의 '하얀 풍경'은 감정·표현·사고의 절제로 인해 숨막힐 듯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온통 하얀 풍경을 눈으로 쫒다 보면 목적과 이유를 찾던 맹목적인 시선은 흩어지고 공허함과 비장함만이 남는다. 시선을 거둔 그 곳에서 우리는 오롯이 진실을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 정나영

드로잉 단상 ● 드로잉의 영역은 재료나 기법을 기준으로 정의 내리는 것도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하고, 단지 접근 방법과 자세에 따라 구분 지을 수 있으며, 결과로서가 아닌 과정의 단편을 표현하는 행위로서 드로잉을 바라 볼 수 있겠다. 작가가 전시를 통해 응축된 사고의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선보이지만 삶 전체를 보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다음에 또 다른 변화된 작품을 고민하고 기대할 수 있기에 또한 모든 작품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 바라보길 바란다. ● 이번 전시에서는 'White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이미지의 과잉'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지구 어디에선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십 년 전에 같은 역사를 갖고 있었으나 경제발전으로 어느 정도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자 기부문화와 구호단체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방송에서 이러한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음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거기엔 굶주리고 핍박을 받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유명한 배우나 저명인사가 나와 우리에게 그들을 도와 달라 호소한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느 흑인 아이는 굶주림의 상징이고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된다. 하지만 그 아이가 누구고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은 없고 우리의 슬픔과 연민을 자극하는 매개체로서의 상징물로만 남아있다. 마치 과거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기념비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들은 사진가와 기자들의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 파리가 눈가에 붙어 있는 얼굴이, 반쯤 벗겨진 옷 사이로 비치는 가슴 그리고 슬프고 괴로워 일그러진 표정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이런 그들의 모습을 기념비로서의 인물상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누군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세우는 조형물이다. 그러나 정작 기념비의 주인공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며 그들에게 어떤 의미도 되지 않는다. 단지 남은 사람들의 이념이나 목적, 연대감 등등을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면에서 굶주린 아이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구호단체의 광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하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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