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s Failed Me

클레가展 / Klega / painting.installation   2013_0706 ▶︎ 2013_0803 / 일,공휴일 휴관

클레가_종이에 수채_29.7×21cm_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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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13_0706_토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스페이스 오뉴월 Space O'NewWall 서울 성북구 선잠로 12-6(성북동 52번지) Tel. 070.4401.6741 www.onewwall.com

작가 클레가는 도쿄 원더 사이트, 대안공간 루프 등에서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면서도 지적 농담과 아이러니가 번뜩이는 회화 및 설치 작품을 선보여왔다. 큐레이팅 실험실 스페이스 오뉴월이 7월에 개최하는 클레가 개인전『Words Failed Me』는 마치 카툰을 연상케 하는 클레가의 수채화 100여 점을 전시한다. 작가가 2009년 이후 최근까지 작업해온 이 연작은 하나 또는 복수의 오브제로 단순히 구성되어 있으며 전치(轉置), 말놀이(pun) 등을 이용해 시적인 울림과 기이하고도 날카로운 페이소스를 준다.『Words Failed Me』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클레가는 단어와 이미지가 만날 때 일어나는 충돌과 단절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클레가는 이들 작품을 단지「watercolors」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각각의 작품들은 타이틀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그저 '수채화' 작품군으로 존재할 뿐이다. 단어와 이미지의 연결은 분명히 존재하나, 작품에 제목을 붙임으로써 그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작품들은 순서도 없고, 완성이라 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특정 구절이나 단어에서 파생되는 이미지, 오브제의 형상일 뿐이다. ● 또한 이번 전시에서 클레가는 한국에 거주하며 마주친 일상의 물건, 이를테면 젓가락에서 새로운 작품의 매개체를 발견해낸다. 그가 발견한 물건은 현대미술의 틀 안에서 원래의 기능과 용법을 변형한다. 흔하디 흔한 일상적 도구인 젓가락은 마치 모더니즘 조각처럼 기능과 형태를 탈바꿈하고 있다. 살짝 '비틀어진' 클레가의 작품을 통해 일상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것이 드러내는 미스터리와 모험으로 초대한다. ■ 임보람

클레가_종이에 수채_29.7×21cm_2009~11
클레가_종이에 수채_29.7×21cm_2009~11

클레가의 데페이즈망 Klega's Dépaysement ●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악몽에서 깨어났고 꿈속에서 자신이 징그러운 곤충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꿈속에서 그는 바퀴벌레였고 크기도 사람 몸집만큼 컸다. 등을 대고 누운 상태로 그는 자신의 갈색 복부와 가는 다리들을 볼 수 있었다. 옆으로 몸을 돌리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등을 대고 누운 상태로 돌아 가버리곤 했다." (프란츠 카프카,『변신』, 전영애 옮김, 서울: 민음사, 2009.) ● 클레가(Klega)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변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초기 오브제 작업에서 최근 수채화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나 모티브들은 고정된 속성을 지니지 않는다. 상징적 의미에서 정체성이 부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카프카의 주인공처럼 클레가의 오브제들은 끝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실제로 그는 독일의 슈퍼마켓에서 발견되는 포장용기들을 사용하여 조각품들을 완성하였다. 그는 이들 작업에서 주어진 공산품을 예술적인 소재로 '변신'시킨다는 레디메이드 개념보다는 플라스틱이라는 소재 자체에 매료되었다. 일찍이 플라스틱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가 그의 고전『신화들(Mythologies)』(1957)에서 어떤 물건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따라서 재료의 특수한 정체성이 부재하는 포스트모던적 현대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개체로 규정한 바 있다. (Roland Barthes, Mythologies, trans. By A. Lavers (Farrar, Straus, and Giroux, 1972), pp. 118‐119.) 실제로 얇은 스타킹부터 나사의 우주선 부품까지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방식, 형태, 기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다양하다.

클레가_종이에 수채_29.7×21cm_2009~11
클레가_종이에 수채_29.7×21cm_2009~11

클레가의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도 모든 모티브들은 끊임없이 변모한다. 인간의 신체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로, 비행기는 땅에 곤두박질하는 로켓으로 이내 변신한다. 그리고 일종의 용광로와 같이 생긴 통의 내부로 날아다니는 인간의 형상이 곤두박질치다가 다시금 튀어 올라와 다른 형태로 변한다. 그야말로 그의 캐릭터들은 '플라스틱'하다. 유사하게 최근 수채화 작업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들, 예컨대 동물과 무생물에 해당하는 서로 다른 개체들이 혼합되어 있다.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형태를 지닌 비행기, 그리고 끝에 달려 있는 음모, 감시 카메라가 달린 토끼의 안면, 고무장갑을 입은 멜빵바지,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 기계적이거나 인위적인 것과 물컹물컹한 것과 단단한 것, 서로 다른 요소들이 1920‐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우산과 재봉틀의 기이한 만남"을 연상시키듯 결합되어 있다. ● 여기서 카프카의 변신이 그러하듯,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선호한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이 그러하듯, 변형과 장소로부터의 이탈은 '저항'의 또 다른 전략이다. (Romana Fotiade, André Breton :The Power of Language (Intellect Books, 2000), pp. 93, 129.)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예와 같이 변형은 변형의 주체에게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이 되기도 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자 하는 주체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개체들이 본래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전혀 이질적인 요소들(동물과 기계)과 결합하면서 개체가 이미 지니고 있던 의미나 기능은 소멸된다. 팔인지 다리인지 모르는 형태는 팔처럼 자유자재로 뻗치지도 못하고 다리처럼 중력에 맞서 걷지도 못하게 된다. 제 몫을 못하고 서 있는 한 쌍의 결합된 팔다리는 불안하고 애처롭게 보인다. 뒤집어진 채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서 방에 갇혀 있던 그레고르처럼 그것은 불안정하게 그것의 주체로부터 분리되어 어정쩡하게 서 있다. ●「감시(Surveillance)」라는 테마를 지닌 드로잉에서 토끼, 혹은 정체 불명의 동물 머리에는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다. 자신의 눈이 카메라의 눈으로 대치된 동물이 과연 본래대로 잘 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자세로 앉아 카메라의 다리 역할을 대신하는 듯 보이는 동물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하다. 지팡이를 짚고 머리에 일종의 바가지와 유사하게 보이는 보호막을 쓴 인간의 모습, 거미의 몸을 지니게 된 토끼의 모습은 인간과 토끼의 유동성을 제한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인간은 의미심장하게 '공동체적인 생각(Collective Thinking)'을 암시하는 드로잉에서와 같이 볼 수 있는 통찰력(sight/insight)을 잃어버리고, 벌떼들이 유도하는 대로, 혹은 그들을 피해서 나아간다. 마찬가지로 작은 거미의 몸에 한정된 토끼의 움직임과 그가 경험할 세계는 이제 축소될 수 밖에 없다. ● 하지만 데페이즈망이 부정적인 상황만을 연출하지는 않는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일상적인 개체들을 재맥락화(re‐contextualize) 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발견하게 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미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처럼 기이한 형태들은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암시하거나 적어도 관객이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일상적 리얼리티를 새롭게 보는 데 기여하게 만든다. (실제로 클레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물질주의 철학과 연관해 현대 물리학은 물질을 한정된 본질적 속성을 지닌 분자(atom)의 차원으로 설명하는 데서 더 나아가 분자의 분열(핵)이나 재배치, 변이 등을 거치며 새로운 힘을 얻는 다양한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경향으로 발전해왔다. (Max Born, My Life and My Views,Charles Scribner's Sons, 1968, p. 67.)

클레가_종이에 수채_29.7×21cm_2009~11
클레가_종이에 수채_29.7×21cm_2009~11

예컨대 고목과 거북이 옆에 달린 확성기 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이한 조합이라는 것 외에 말라비틀어진 고목과 거북이와는 달리 확성기는 작은 목소리에도 힘을 실어주는 정치적 발언의 수단이자 상징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클레가는 어르신들이 사용하시는 보행기 위에 확성기를 달아 놓는다. 전혀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곳에 일종의 힘을 상징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치들이 등장한다. 반면에 비교적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이후 불편함의 대상이 되어버린 금융인(banker)이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작가는 '병 은행(bottle bank)'라는 단어를 만들고 술에 취한 사람을 그린다. 단순한 언어 유희지만 우리 시대에는 단순히 보아 넘기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암시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방독면을 쓴 인물상 위로 국제기구 UN의 마크를 암시하는 원형이 그려져 있다. UN은 전지구화 시대에 막중한 임무를 지녔으면서도 정치적으로 무능한 국제기구로 인식되어 왔다. EU의 경우 알파벳 E와 U의 형태를 결합한 방뇨하는 목발로 제시되고 있다. 한편으로 어딘가 기댈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존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잉여물을 다른 곳에 뿜어대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비판적 작업이다. ● 이와 같이 변형, 그리고 재맥락화는 사고의 이완,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물건이나 단어의 결합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온 이미지나 단어의 의미를 교란시키고 이미지나 단어가 의미하는 사회적 가치 체계를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교란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해 관객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클레가의 조합이 대중과 쉽사리 소통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작은 종이에 그려진 정적인 이미지들은 방안에 갇힌 그레고르 만큼이나 무능력해 보이고 자기 세계에 침잠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영국 작가 마크 디온(Mark Dion)이 부시 행정부 8년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작업에서 자족적이면서도 외부로부터 차단된 지식인의「옥타곤(8각형) 방」을 설치한 것과 같이 클레가의 작업에서도 사회 변혁의 의지는 분명히 존재하되 회의적이거나 냉소적이다. ● 그래서인지 클레가의 작업에서 이따금 보이는 사회적인 메시지들은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낯설다. 과연 클레가의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인가? 오히려 확성기 탓을 하기 이전에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는 않을까?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쉽게 설명하고 해결해내기에 현대사회는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비평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이 말한 대로, 수많은 매체와 경쟁하느라 '참여'라는 이름을 단 순수미술들이 지나치게 분주했던 것도 사실이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설정하거나 관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려 점점 더 강력한 미학적 기제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극적인 클레가의 데페이즈망 드로잉은 낯설면서도 반갑다. ■ 고동연

Vol.20130705d | 클레가展 / Klega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