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에 대하여

우상호展 / WOOSANGHO / 禹相浩 / painting   2019_0301 ▶︎ 2019_0313

우상호_the crying of silver and gold_패널에 아크릴채색_91×233.6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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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228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쿱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68 2층 Tel. +82.(0)2.6489.8608

나의 그림을 위한 변 ● 나는 그림을 그리며 산다. 내가 그리는 그림 중에는 몇 가지 주요한 소재가 있는데 그 가운데 책이 포함된다. 동서고금 소통의 대표적 상징물로 대변되는 책을 소재로 하여 조형성을 추구해왔었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미사여구가 처음부터 붙어 다니지는 않았었다. ● 대학시절 학교에 가기위해 자취방에서 급하게 나오는데 방문 옆 벽에 주인 할머니가 걸어놓은 굴비가 눈에 띄었다. 그때부터 KARMA에 대한 고민과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애를 썼었던 것 같다. 그 뒤에도 나의 대학원 논문에서 KARMA를 '人間 相互間 循環的 삶의 秩序'로 명명하였고 그 조형적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KARMA를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반복되어 이어온 우리 생활의 질서로 본 것이다. 좋은 일은 선업이, 나쁜 일은 악업이 대를 이어 물려진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이다.

우상호_the crying of Arirang_패널에 아크릴채색_60.6×145.4cm_2018
우상호_the crying of red and blue_패널에 아크릴채색_87×107cm_2018
우상호_the crying of Arirang_패널에 아크릴채색_53×130.2cm_2018

KARMA에 대한 추구는 자연스럽게 역사적 시간성과 연결되었고 그 표현의 소재를 얻기 위하여 고적(古跡)이나 박물관을 주로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KARMA가 박물관과 같은 특정지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있지 않은가 하는 자각을 하게 되고, 나의 주변을 둘러보다 작업실에 설치된 서고의 책을 보게 된다. 처음 책을 그릴 때에는 책의 내용을 중시하여 제목을 보이기 위하여 책을 확대하여 그렸다. 다시 또 표현을 위한 내용의 책을 찾기 위하여 출판사, 서점, 도서관 등지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때엔가 자주 다니던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멀리서 바라본 책들의 향연이 눈에 꽉 차 들어왔다. 그 뒤부터 책의 내용보다 수많은 책들이 어우러진 조형성에 주력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상이 내가 책을 그리게 된 경위이다. ● 이제 그 다음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내 행위의 정당성과 이를 요구하는 갤러리 등의 기관, 전시장 등에서 만난 관객들의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하는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그 뒤로 계속된 고민은 수많은 미사여구 중 '동서고금 소통(疏通)의 대표적 상징물'이란 말을 나의 뇌리에 남긴다. 당시 시대의 화두였던 소통은 끊임없이 계속 된 KARMA에 대한 나의 고민에 대한 약간의 해결의 빛을 주게 된다. 역사를 통하여, 소통의 끊김은 부정적 KARMA를 낳았고 소통의 원활함은 긍정적 KARMA를 낳았음은 인지하게 된 것이다.

우상호_the crying of LIBERTY_패널에 아크릴채색_116.8×91m_2019
우상호_the crying of TRUE_패널에 아크릴채색_50×200cm_2019
우상호_the crying of LOVE_패널에 아크릴채색_50×200cm_2019

'동서고금 소통의 대표적 상징물'이란 뇌리에 남겨진 말만 믿고 그림을 그려오다 2016년부터 23차례나 이어진 촛불집회의 충격을 느끼면서 나의 그림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바뀌어간다. 나의 그림은 단순히 수많은 책을 그린 정물이 아니라, 책이란 개개의 픽셀이 모여 외치는 거대한 외침을 받아내는 공간인 우리의 사회를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그림의 설치 형식도 흑과 백, 홍과 청 등의 색상으로 대립된 캔버스를 나열하여 둘 이상의 이질적 사회의 조화로운 융합의 바람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는 내가 분단국가의 오늘을 살아가며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무의식의 발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이를 표현하는 기법과 방식에서 내가 중국 유학시절 습득한 칠화기법이 응용되었음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KARMA를 표현하기 위하여 시간 축적의 표현에 용이한 기법이기 때문이다. 칠화기법이란 도포와 연마를 수십 번 반복하며 표현하는 동양의 전통 미술기법인데, 현대의 수많은 이미지 매체 중 그림만이 할 수 있는 시간성의 특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통 기법과 아크릴이라는 현대 재료의 융합으로 새로운 통섭의 길로 나아가기위해 노력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 책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나의 정당성을 위한 이론의 현학적 짜 맞춤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리는 일이 즐거워 시작한 그림에 이리 많은 족쇄를 채워놓았단 말인가. 소통을 하려면 당사자인 그림과 해야지 그림 밖에서 소통을 빙자한 분식(粉飾)적 행위는 이제 그만두어야겠다. 나도 이런 자신감을 가져야할 나이가 되었나보다. ■ 우상호

우상호_the crying of Arira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100cm_2018
우상호_the crying of Arirang_패널에 아크릴채색_60.6×100cm_2019
우상호_the crying of Arirang_패널에 아크릴채색_53×91cm_2019

세상살이는 수많은 존재의 무수한 '외침'으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목소리는 크나큰 외침으로 인정받지만, 누군가의 목소리는 들리지 조차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는 소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다 소멸해버리고 만다. 우상호 작가는 소통을 희망하는 존재의 외침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그 소통의 매개체로 선택한 것이 바로 책이다. 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극적인 소통의 매체로 여겨져 오지 않았는가. 수많은 책에 담긴 이야기, 즉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는 칠과 기법을 통해 화면 위에 구현된다. 칠화 기법은 옻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도포와 연마, 즉 물감을 쌓고 깎아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음(陰)과 양(陽), 안과 밖의 조화를 의미한다. 또 옻 대신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것은 과거와 현대의 결합이라는 진정한 소통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 홍지혜

Vol.20190304a | 우상호展 / WOOSANGHO / 禹相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