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걷는 길목에 쌓여있는 쓰레기들

고주안展 / KOHJUAHN / 高主安 / painting   2019_0304 ▶︎ 2019_0314 / 일요일 휴관

고주안_내가 그것을 끊은 이유를 말해줄게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60.5×91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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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ALTERNATIVE SPACE ARTFORUM RHEE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조마루로105번길 8-73(상동 567-9번지) Tel. +82.(0)32.666.5858 artforum.co.kr

작년 초 연고도 없는 부천에 이사온 뒤, 길을 익히기 위해 정처 없이 걷던 길들은, 어느새 습관 이 되어 자주 걷는 길목이 되어버렸다. 공사 중이던 건물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생겨나고, 매일 그 자리에 있던 길 고양이는 어젠가부터 보이지 않는다. 안보겠다 다짐했던 스마트폰을 꺼내어 네비게이션으로 집 주소를 찍고 돌아오던 일도 이제는 제법 괜찮아졌다.

고주안_이제 좀 정리된 것 같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100×100cm_2019
고주안_정리는 되었지만, 이미 깨져버린 조각들.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100×100cm_2019
고주안_감정이 없는 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53×45.5cm_2018

'오늘은 무엇을 먹었을까?', '오늘은 버린 것이 별로 없네?' ● 내가 자주 걷는 길목에 있는 쓰레기 더미들을 보며 갖는 생각이다. 길의 위치는 늘 같지만, 그 안에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들이 흡사 인류가 살아왔던 길처럼 느껴진다.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를 막론한 끊임없는 갈등이, 방식만 다를 뿐 '늘' 있어왔던 것처럼. 끊임없이 쓰레기가 버려지는 현상도 매우 흥미롭다. 버려진 쓰레기는 이 전에 하나의 새로운 음식 또는 휴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무엇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무언가 소비를 하며 살아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렇게 쓰고 버리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주안_넌 참..나도 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53×45.5cm_2018
고주안_다시는 사용 불가능한 것들에 대하여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53×45.5cm_2018
고주안_삶의 지속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53×45.5cm_2018

한반도 분단, 매스미디어의 폭발적인 노출에 따른 이미지과잉 현상들 속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것들이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익숙해진 것이다. 어쩌면 '쓰레기'들은 이러한 익숙함 속에 서 나올지도 모른다. 나 또한 쓰레기일지도. 그나마 재활용품이면 좀 나을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익숙함'이란 것은 결과가 아닌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것이 익숙했다는 점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한 차례 혹은 여러 차례의 충격적인 경험이 동반되어 야 할지도 모른다.

고주안_상이한 감정의 궤적들 No.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53×45.5cm_2018
고주안_상이한 감정의 궤적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90.9×60.6cm_2018
고주안_'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페인트_60.7×60.7cm_2019

나에게 '익숙함'이란 쓰레기를 떨쳐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는 전시다. 작품을 그리는 행위와 매 일을 비슷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들 속에 존재하는 폐단들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다. ■ 고주안

Vol.20190304d | 고주안展 / KOHJUAHN / 高主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