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타임아웃

d/p 기획지원프로그램 03展   2019_0312 ▶︎ 2019_0413 / 공휴일,일,월요일 휴관

김시훈_TEMP=homeostasis_패널에 유채, 아크릴채색_193×330cm_2019

초대일시 / 2019_0315_금요일_06:00pm

Neo Seoul: Time Out d/p curator support program 03

참여작가 김시훈_김용관_이홍민_최재훈

기획 / 천미림(d/p 기획지원프로그램 03 선정) 주최 / d/p

관람시간 / 01:00pm~07:00pm / 공휴일,일,월요일 휴관

d/p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 낙원악기상가 417호 www.dslashp.org

미래 없는 미래 ● '세계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경험적으로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세계는 인식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그것이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존재의 불확실성과 이로부터 동반되는 인식적 가능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에 관한 수많은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안다는 것은 어쩌면 신념과도 같다. 우리는 세계가 시간 축과 공간 축의 교차로부터 형성된 3차원이라는 사실을 '안다'. 칸트적 의미의 인식적 세계는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된 선험적 인식의 틀에 우리의 경험을 집어넣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하는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인지할 수 있는 인간 능력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척이나 자연적인 것이기에 우리는 이러한 인식적 틀에 관하여 어떠한 의심도 갖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이란 그런 것이다. 존재로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으며 오직 그 부재로부터만 우리에게 메타적으로 '인식'된다.

김시훈_기대와 다른_캔버스에 유채, 종이_162×112cm_2018
김용관_미메시스의 폐허들, 폐허들의 미메시스_비트맵 애니메이션_2019
김용관_미메시스의 폐허들, 폐허들의 미메시스_비트맵 애니메이션_2019

『네오서울: 타임아웃』은 「서울」이라는 현실공간에 대한 SF적 상상력을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조형적 시도다. 기획은 문학, 영화 등 텍스트와 서사에서만 주로 다루어졌던 SF를 시각예술의 범주로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전시적 경험을 제안하는데 있다. 이제껏 예술에서 과학기술이 미디어 아트 혹은 체험전 등 그 형식과 표현에 다소 집중되었다면, 이번 전시는 기존 맥락에서 벗어나 그 내용적 구성에 관심을 둔다. 프로젝트는 동일한 과학적 세계관을 설정하고, 이로부터 참여 작가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설정은 「우주의 용량이 초과되어 우주가 멈추었다」는 특수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정지로부터 발생하는 세계의 변화된 양상은 서울이라는 특수한 물리적 공간과 결합되어 질서와 문화, 삶의 형태와 일상의 뒤섞임으로서 드러난다. 특히 우주의 멈춤이 야기하는 시간의 부재는 서울을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집합으로 뒤바꾼다. 설정은 좀 더 나아가 「용량이 꽉 찬 서울을 그대로 복제하여 백업시킨 뒤 이를 관찰한다」는 구체적 상황을 상정한다. 그리고 작가들은 이러한 공통의 화두로부터 각자 이미지의 서사를 제시하고 있다. 김시훈은 서울의 초상을 컴퓨터 디렉토리의 'Temp' 폴더로 은유한다. 문화, 경제, 정치, 기술 등 서울을 구성하는 모든 다양한 요소들의 부산물들이 폴더 속 데이터로 병치된다. 정보처리 후 남은 부산물들이 사용자의 시야 밖에서 일시적으로 자동 저장되고 삭제되며 때로는 무한히 자가증식하는 'Temp' 폴더만의 순환구조는 한국이라는 특정한 현상의 '항상적 임시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데이터는 잠시 폴더에 머물지만 여전히 새로운 정보로 대체되며 그 양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는 사회의 형상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작가는 이 부산물들이 축적되고 사라지는 순환적 현상에 관심을 둔다. 시간축이 삭제된 서울은 더 이상 시대적 스펙트럼에 놓이지 않으며, 단지 수많은 정보와 그 부산물들로 구성된 하나의 개체일 뿐이다. 이렇게 압축된 상징들은 추상적 기호들을 통해 평면 위 이미지로 변환된다. 뒤엉킨 경험과 사건, 물질과 비물질은 조형적 구성을 통해 가시화 된다. 김용관은 원형(原形)과 모방, 추상의 연속되는 관계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작가 특유의 은유로 드러난다. 기존의 서울로부터 백업된 또 다른 서울은 원형인 서울의 모방이다. 그는 물리적 현실을 원형으로 두고, 3D조각(모델링) 프로그램을 물리적 현실의 모방으로서 구성된 가상의 세계로 여긴다. 이 두 세계는 독특한 상호관계를 형성한다. 3D조각(모델링) 프로그램은 물리적 현실의 추상이며 동시에 물리적 현실은 3D조각(모델링)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구체화시킨 반(反)추상이다.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상호관계를 다시금 물리적 현실과 그 이전, 플라톤적인 원형의 세계와의 관계로 확장시킨다. 이데아와 현실, 현실과 3D조각(모델링) 프로그램으로 분할되었던 관계는 '물리적 현실'을 공통분모로 삼아 '이데아-현실-프로그램'이라는 넓은 범주로 포개어진다. 이 때 프로그램과 이데아는 현실을 모방하고 또 모방된다는 점에서 밀접하게 맞닿아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미메시스의 원(圓)은 이러한 방식으로 무한히 순환하는 듯 보인다. 『미메시스의 폐허들, 폐허들의 미메시스』는 이러한 세계 안에서 방황하는 조각가의 움직임을 따라감으로서 작가의 생각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홍민_정의를 위하여-3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19
이홍민_정의를 위하여-5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19

이홍민은 현실로서의 서울이 붕괴되면서 대체된 새로운 서울을 웹(web)에서 찾아낸다. 웹은 시간이 허물어지고 무한히 증식 가능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또 다른 서울이다. 작가는 동시대 인터넷 문화 속에서 형성되는 독특한 형태의 한국적 집단성에 주목한다. 개인이 갖는 신념 혹은 믿음의 개별들은 각자의 다양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경향성들을 통해 군집되고 집단성을 획득한다. 그는 웹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현상들이 개체들의 은폐와 망각, 분열과 생성의 지속적 갱신을 바탕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군상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정의를 위하여」 연작과 「엄연히 다른 것」 시리즈는 가상공간에서도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되는 차이와 위계, 갈등과 사회구조에 관한 감정적 서사들을 다루고 있다. 작업은 비물리적 세계의 연장선 위, 여전히 공고화된 물리적 서울의 현재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면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최재훈은 물리적 공간을 만화의 형식인 '칸'으로 병치시키는 실험적 시도를 보여준다. 만화에서 칸이란 정지된 화면이지만 그 배치와 나열을 통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인식적 시간성을 획득하게 만든다. 작가는 멈춤이라는 가정을 역이용하여 칸의 특질을 통해 새로운 시간의 움직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에게 칸이란 각자 시간의 흐름이 멈춘 정지된 세계이자 동시에 배열과 결합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 사건의 경우의 수를 지닌 잠재태로 해석될 수 있다. 최재훈은 정보를 통해 형성된 인간의 사고(思考)체계를 모든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본다. 개인적 가치관의 충돌은 세대, 계급, 이념 등 구조적 갈등으로 확장된다. 그는 이러한 현 상황의 혼란을 만화적 서사로 풀어내고 있다. 「fragments of Walking on chaos to mandala」은 모든 것이 멈춰버린 칸 들 사이를 배회하는 유일하게 시간성을 획득한 한 인물을 따라간다. 그리고 주인공의 자취를 쫓다보면 분열된 사건과 양상으로부터 조합되는 거대한 단일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파편적인 사건들은 주인공이 지닌 시간들을 중심으로 한 덩어리로 엮이고, 이는 「Walking on chaos to mandala」를 통해 완성된다. 관객들은 책에서 전시장으로 꺼내온 만화적 형식들을 통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서사의 흐름들을 읽어낼 수 있다.

최재훈_fragments of 『Walking on chaos to mandala』008_종이에 펜, 잉크_12×30cm_2019
최재훈_fragments of 『Walking on chaos to mandala』010_종이에 펜, 잉크_12×30cm_2019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신(新)서울의 초상은 미래이자 동시에 미래일 수 없다. 시간의 부재는 과거-현재-미래의 순차적 모나드(Monad)의 결합을 무효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미래'에 관한 특정한 '미래상'들은 그 모순의 틈으로부터 비집고 나온 '오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언제나 현재의 반영이다. 등 뒤를 더듬어 숨기고 싶은 현실들을 꺼내는 손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지금 여기, 바로 그 미래 없는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 ■ 천미림

Vol.20190312d | 네오서울: 타임아웃-d/p 기획지원프로그램 03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