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점 Dot in a Flow

최영빈展 / CHOIYOUNGBIN / 崔永牝 / painting   2019_0320 ▶︎ 2019_0412 / 일요일 휴관

최영빈_선명한 얼굴 A Clear Face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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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팩토리 ART FACTORY 서울 중구 퇴계로22길 11-11 Tel. +82.(0)2.318.1054 www.artfactory4u.com

작가란 어디로부터 작업에 대한 욕구를 취하는 것일까? 점,선,면이나 색, 재료와 같은 것들로부터 충동들일까? 아니면, 상황, 사건, 이야기로부터 발생하는 느낌, 감정, 생각과 같은 것들로부터 일까? 예술의 근원이란, 형이상학적 존재로 인간 존재에 대한 미(美)와 진(眞) , 미(美)와 선(善)의 일치된 관계의 추구라고 한, 하이데거의 말들은 과연, 진실일까? 그것이 작가들의 예술 충동이 될 수 있을까? 더욱이 추상을 그리는 작가 최영빈에게 그것들은 예술 창작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 나의 비평적 시선이 작품 분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질문들을 맴돌고 있을 때, 그녀의 확연히 달라진 추상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자유로운 점, 선, 면들과 다채로운 색들로 그려진 작업은 무언가를 연상하게 하는 처참한 얼룩에서 벗어나는 시기로 보였다.

최영빈_찾았다 Turned Up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7
최영빈_기억해줘 우리를, 말 못할 이들에게 Remember Us To the One's Who Couldn't Speak_ 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8

새로이 그려진(현재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은, 서로의 상관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화폭 속에, 조화로운 색 조화로 그려져 있다. 나는 그녀의 새로운 추상그림들이 무언가를 내포하는 듯한 형상(想)들의 변형일 것이라는 추리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추상 그림에 시간의 단위들을 가제로 부쳐 놓은 채, 자신이 그린 추상에 어떤 정의를 뚜렷이 내리지 않고 작업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을 그린 것도, 그렇다고 사건과 현상의 인과적 관계로 만들어진 추상적 귀결도 아닌 것들... 그녀의 그림은 매일 변하는 마음처럼, 형식은 머무르지 않고, 내용은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을 닮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과 같은 것도 아니다. '충분한 자유' – 그녀가 작품들을 앞에 두고 쏟아낸 말들은 매우 적었으나, 추상의 쾌는 바로 이것에 있다. 작가가 자신이 그려낸 그림이 비-진리(환상), 비-형상(추상)이라는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미와 진은 대립적 관계로 미는 세상의 진리가 더 이상 아니다. 더욱이 진리가 아닌 것은 세상에서 선한 것이 될 수 없다. '충분한 자유'를 그녀가 말했을 때, 그녀는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잘 모른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것은 '추상의 쾌' 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최영빈_희망Hope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8
최영빈_다시 다른 것이 되기 위해 2 Back Again to Be Something Else 2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6

작품은 옳고 그름의 판단의 척도가 될 수 없다. 때로는 환상, 추상이라는 想들 속에서 관객들은 쾌의 느낌을 찾아내고, 나름의 질서들을 쫓아, 눈앞의 대상이 외치는 진리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추상의 쾌'는 그리는 자에만 있지 않고, 보는 자에게도 있다. 알 수 없는 진리의 근원보다, 알아챌 수 없는 세상의 이치들이 있듯이. 그림에서는 그것을 그리는 자, 보는 자라는 두 자리의 시점들이 맞부딪쳐서, 서로 다른 환상-추상의 想을 만들어 낸다. 형상의 무너짐과 흐트러짐, 그리고 우연히 등장하는 얼룩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허공의 붓질들이 충분히 자유롭다. 작품 속의 얼룩을 따라 그렸다는 붓질이 눈에 띄었다. "어색한 가요?" 그녀는 나에게 물었고... 나는 다시 눈 여겨 얼룩을 다라 붓질을 보았다. 사유의 자유로움보다, 보는 것의 자유로움을 획득하고 싶은 미련한 비평가의 눈길을 알아차렸을까? 흔히 회화를 감상하는 법, 그림 읽는 법, 비평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는 자들의 관습적인 보기의 방법들, 그것들로부터 충분한 자유, 작가가 나에게 요구한 것들은 그것이지 않았을까? 질문해본다. 그리고 또 질문해보자,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들이 바로 현재의 진리를 그대로 세상이라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사건과 현상만큼, 현실과 꿈만큼, 지구와 우주 만큼이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우연한 충동들', 예술, 그것의 근원인 '충분한 자유' 그리고 그리는 자 만큼이나 보는 자의 '추상의 쾌'는 그녀의 작품을 서술하는 나의 단상들이다. ■ 성원선

최영빈_흐르는 점 Dot in A Flow_캔버스에 유채_138×80.3cm_2017
최영빈_너로 차려입고_Dress Up In You_캔버스에 유채_43.5×75.5cm_2018

익숙함을 거짓으로 여겼지만 다른 것이 되지는 않았다. 사라지며 나를 살린 것들이 그림이 되었다. ■ 최영빈

Vol.20190324a | 최영빈展 / CHOIYOUNGBIN / 崔永牝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