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어

파랑展 / PARANG / painting   2019_0410 ▶︎ 2019_0415

파랑_배 위의 푸른 늑대_종이에 유채_21×29.5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102d | 파랑展으로 갑니다.

파랑 블로그_pa-rang.tistory.com

초대일시 / 2019_041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28 신관 2층 Tel. +82.(0)2.737.4679 www.gallerydos.com

현대의 어느 날, 선량한 남자가 늑대를 만났다. 남자는 길들여지지 않는 이 동물에게 매혹 당했다. 늑대는 신중하고 깊은 시선으로 남자의 눈을 바라봤다. 짧은 순간 둘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자가 물었다. " 나는 네 삶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어. 네 삶을 지키려면 우리 인간이 뭘 해야 할까?" 늑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대답했다. " 나를 잊어."

파랑_여행의 시작_캔버스에 유채_227×182cm_2019

작업을 한다는 건 고통과 끈기와 인내를 수반한다. 그동안 나의 작업은 물 흐르듯 이어져왔다. 특정 주제나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았다. 작업 당시의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단순히 캔버스에 옮기기도 했다. 특정한 무언가를 이미지화하기엔 너무나 많은 상념과 고민들이 끊임없이 머리속을 헤집고 다녔던 것 같다. 더불어 정말로 그리고 싶은 주제를 찾지 못한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수년간 인간 외적인 것, 자연 외적인 것, 암흑, 비현실, 그리고 무의식에 끌리고 혼돈이나 허무에 끌렸다.

파랑_the dinner_캔버스에 유채_162×260cm_2017

나의 유년시절 ● 사람의 유년시절의 추억은 그 사람의 근원이자 뿌리이다. 인간의 삶이란 자신에게 부여된 공간에 시간과 이야기를 채우는 과정이다. 그 공간이 어떠하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숲 속을 거닐며, 산과 강과 들을 뛰어 놀았던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시골에 존재하는 '미물' 들에 남다른 애착을 갖게 하였다. 그러한 경험은 오랜 시간 자연과 인간과의 공존과 화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파랑_물위의 늑대들_캔버스에 유채_182×227cm_2019

예술이란.... ●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그저 실생활의 언저리에서 행해지는 기분전환 행위쯤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예술은 삶의 심혼을 파고들어 가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을 밝혀준다. 또한 가장 비타산적인 고백을 지니고 있기에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솔직하다. 그러하기에 나는 아이디어적인 접근이나 테크닉을 작품화하는 성향을 멀리하려고 한다. 그것은 작품 세계를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나는 너무나 직접적이고 촉각적이고 본능적 이여서, 날카로운 칼끝이 심장에 닿는 듯 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적당한 이해'가 아닌 '감정적 충격'으로 이끄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짙은 감수성과 광란 상태에서 나온, 가장 본질적인 에너지가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예술 스스로는 자신을 찾아가고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대상이 아닌 실체여야 한다.

파랑_눈부시게 살다간다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8

늑대와 나 ● 날 것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순수하기에 잔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냉정한 세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직설적인 삶의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 오직 야생 생물들과 자연만이 그러한 세계를 보여준다. 나의 그림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늑대의 삶이 있다.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본 늑대의 삶이 아닌 늑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작업을 할 때 나 자신이 그림 속의 늑대가 되어야 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고 그들이 보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려고 했다. ● 가장 순수한 자연이라는 것은 오히려 무질서하고, 원소적이고, 꿈이고, 혼돈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자연은 진짜 자연이 아니다. 우리가 눈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이미 인간의 손을 탄 자연이다. 인공적이고 질서정연하며 논리적이다. 어쩌면 자연은 추악하고 무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독립적이고 사납고 때론 잔인하기도 한 늑대라는 존재를 통해, 피비린내 나는 날 것 뒤에 숨겨진 '삶의 실체' 을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파랑_어둠이 내리고 태양이 잠들때면_종이에 유채_90×116cm_2019

늑대에게 달은 그들의 태양이다. 숲에 사는 그들은 사람과 비슷했다. 한때 인간과 더불어 가장 번성했던 포유류인 늑대. 늑대는 개개인이 영리하고 똑똑하며 속도도 빠르고 전투력도 좋고 게다가 집단 생활까지 하기 때문에 인간이 불을 발견하기 이전에는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었다. 달의 여신은 그들에게 인간에 필적 할 만 한 지능을 주었고, 인간은 그들을 두려워하며 미워함과 동시에 늑대를 존경하고 경외시하기도 했다. ● 하지만, 우리 인간의 척도로 늑대를 판단 할 수는 없다. 늑대는 우리 세상보다 더 오래되고 더 성숙한 세상에서 완벽하게 움직이고,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으며, 우리가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럼에도 늑대는 존재와 시간으로 이루어진 그물에 우리와 함께 엮여 있고,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같은 생명체이다.

파랑_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_ 캔버스에 유채_73×91cm_2018

나는 늑대와 내가 어떠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나는 내가 짐승의 눈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방인 같다. 그래서 홀로 작업실에서 늑대가 살아가는 세상을 그릴 때 나 역시 그림 안의 세상으로 깊이 이입되는 것을 느낀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 그들처럼 달리고 그들처럼 사냥을 하고, 날것의 고기를 물어뜯어 삼키고 싶다. 어쩌면 늑대의 삶을 통해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드러내는 싶은 건지도 모른다. 자연에 순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삶과 죽음이 늘 함께 공존하기에 순간에 충실하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가족을 사랑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노는 일에 충실한 삶. ● 늑대의 삶 속엔 잔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그들은 처절하지만 눈부시게 살아간다. 가장 추악한 것 속에 가장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 적당히 예의바르고 적당히 사교적이며 적당히 친분을 쌓는 과정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극단의 날카로움과 투명한 것이 있다.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늑대를 그린다. 걸러지지 않은 야생의 거침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삶 속에는 내가 평생을 두고 표현하고 싶은, ' 시리도록 차갑고 아름다운 삶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 ■ 파랑

Vol.20190410a | 파랑展 / PARANG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