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현실의 공존

고은주展 / GOEUNJU / 高銀主 / painting   2019_0417 ▶︎ 2019_0423

고은주_추억과 현실의 공존_천연염색과 혼합재료_36.5×74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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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H GALLERY H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0 제3관 Tel. +82.(0)2.735.3367 blog.naver.com/gallh hongikgalleryh.modoo.at

오래된 그릇의 형상에 담긴 삶의 울림 ● 언제나 어머니의 부엌은 요란하다. 그릇들이 달그락대는 소리, 아궁이에서 반쯤 타서 타닥거리는 잔 나무가지들 소리, 어디에 숨겨뒀는지도 몰랐던 음식재료들이 도마 위에서 시끄럽게 툭탁거린다. 이것들 모두가 어우러질 즈음, 나는 뿌옇게 스며오는 갓지은 밥내음을 맡으며 문지방 너머에서 헛기침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왔어요"라며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 꼬질 꼬질하게 때 뭍은 손을 뒤로 하고 풀물들어 얼룩해진 치맛자락에 급히 손을 닦아 낼세면 "오늘도 뒷산가서 놀다 온게냐" 하시며 밥상을 차리던 손을 앞치마에 얼른 닦고 하나하나 들풀을 떼어주시던 어머니의 무심한 손끝너머, 천천히 돌아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꽃뭉치를 힘껏 쥐곤했다.

고은주_추억과 현실의 공존_천연염색과 혼합재료_27×48cm_2019
고은주_추억과 현실의 공존_천연염색과 혼합재료_24.5×34cm_2019
고은주_추억과 현실의 공존_천연염색과 혼합재료_25×52cm_2019

무엇에 쫓기듯 쉴세없이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쓴 웃음뒤에 찾아오는 아쉬움처럼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 버렸다. 작가의 하루 역시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보다는 너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덜어내는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다.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못하는 일상의 고단함을 작가는 말없이 건네줬던 부모님의 사랑 그리고 유년시절속 추억의 시간대로 회귀시켜 치유하고 있다. ● 작가는 "추억을 그린다. 그리고 현재를 그린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원적 시간의 공존은 작품의 motive로서 간직되고 있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에 의해 축출되어졌다. ● 화면에 나타나는 무수한 선의 중첩은 자신의 추억을 상징하는 꽃의 형상들이며, 이 반복된 형상들이 부모님 그리고 현재 자신의 가족을 표상하는 그릇 주변에서 미세한 운율을 생성해 내고 있다. 선과 면이 대비되어 만들어내는 화면의 이중적 대비와 한지의 요철지가 만들어내는 질박한 감성은 화면안에서 추억과 현재라는 두 시간대를 적절하게 연결시키는 표현언어로 활용되고 있다.

고은주_추억과 현실의 공존_천연염색과 혼합재료_25×55.5cm_2019
고은주_추억과 현실의 공존_천연염색과 혼합재료_26×48cm_2019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이상향적 시간대를 화면 속에 담긴 그릇의 형상을 빌려와 '비워짐'이란 심미언어를 드러내고 있다. ● "無用의 用" 장주와 혜시의 대화에서 나온 이 문구는 쓸모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것들이 진실로 쓸모있는 것임을 의미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묵자 역시 인간에게 쓸모없음을 쓸모로 삼아 살아가는 상수리나무를 빗대어 인간에게 쓸모 있는 능력(用)들을 겉으로 드러나지(無用) 않고 안에 감추어 두고 있는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 그릇은 그 속이 비어(無用)있기에 어떤것을 담아 낼 수 있다. 수레바퀴의 굴대 구멍과 같은 이 無用의 즉 비워짐이란 역활이 작품 속에서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주요한 도구가 된 것이다. 즉 그릇에 내포된 비워짐의 속성이 작가에게 이입되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삶의 가치를 담아내는 새로운 의미체계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삶의 진정한 가치가 우리가 유용하다 생각하는 물질적인 어떤것보다 유용하지 않다 생각했던 비물질적인것들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고은주_추억과 현실의 공존_천연염색과 혼합재료_26×47.5cm_2019

일반적인 채색화 방법과 다르게 '한번그음' (一劃)의 속성으로 완성되어지는 작가의 작품은 그려내는 대상의 완성체가 마음에서 손으로 바로 이어지는 卽發的 성향으로 현대 문인화 형식과 가깝다. 통상적인 법에 구속되지 않는(不拘常法) 이러한 작화방식은 작가의 방일(放逸)한 심미태도에서 기인 되었다. ● 동양의 화론에서 放은 '멋대로 하다' 또는 일종의 절제되지 않는 감성의 표출 고정된 틀이나 규칙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으며, 逸은 일탈이나 탈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법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의미는 "일정한 감성형식으로부터 벗어난 창작주체의 자유로운 감성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방일한 심미태도는 창신의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것"('장자 미학 사상 - 임태규 著') 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비워짐, 벗어남을 통해 만들어 낸 작가의 새로움 작가만의 추억과 삶의 공존적 동시성은 꽃과 그릇이라는 심상의 표현도구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키는 공명적인 매개체로 활용되어 멋(形)과 맛(味)을 아우르는 공감각적 울림(聲)으로 다가서고 있다. ● 비워져 있지 않으면 담을수 없는 것들에 대한 삶의 이야기들 '울림을 담은 그릇' 작가의 작품이 드러내는 공명안에는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추억과 사랑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차 있다. 이렇듯 작가에게 그 무언의 공간속에는 말하지 못한 그리움, 그리고 다하지 못한 사랑, 잊을 수 없는 행복감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우리들에게 그것을 말없이 나누어 건네 주고 있다. ● 어느덧 아찔하리만큼 향긋해진 봄날 이렇게 말없이 건네주는 작가의 작은 울림을 가슴에 담아 소리내어 그들에게 말해보려 한다. 고맙습니다.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 장태영

Vol.20190414c | 고은주展 / GOEUNJU / 高銀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