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이맛이야~

권기철展 / KWONKICHUL / 權基喆 / painting   2019_0501 ▶︎ 2019_0628 / 일요일 휴관

권기철_어이쿠_한지에 혼합재료_91×53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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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501_수요일_06:00pm

갤러리 더키움 개관 기념 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수_02:00pm~07:00pm / 토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더키움 Gallery The Keum 대구시 서구 서대구로 74 3층, 5층 Tel. +82.(0)53.561.7571 www.thekeums.com

권기철(權基喆)의 작업은 한지(韓紙)와 먹이 만나 한데 어우러지는 인연(因緣)으로 시작한다. 벼루와 먹, 그리고 붓과 종이로 대변되는 선비의 정서(情緖)를 느끼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 먹물이 내뿜는 포말(泡沫)과는 전혀 다른 물성을 뽐내며 그의 아크릴은 밝고 선명한 대비(對比)를 자랑한다. 나노(nano)의 탄소(炭素) 알갱이를 듬뿍 머금은 한지의 섬유질(纖維質) 위로 미끄러지듯이 달려가는 원색(原色)의 향연(饗宴). 그 거침없는 채색(彩色)과 선조(線調)는 작가의 몸짓 그대로를 각인(刻印)한다. ● 그리고, 마침내 숨막히는 절정(絶頂)으로 내달려 이윽고 터트리는 한 방. 통렬(痛烈)한 그의 한 방은 절묘(絶妙)한 색채(色彩)와 그 균형(均衡)에 있다. 그의 말처럼 삶의 불화(不和)에 대한 호쾌(豪快)한 대응(對應)이 아닐 수 없다. ● 권기철의 화면 구성은 참으로 절묘한 데가 있다. 절제된 선과 색면(色面)이 가져다 주는 균형감 너머로 툭툭 던지는 포치(布置)의 파격(破格)을 보라. 둥글거나 뾰족한, 때로는 뭉툭한 선과 면을 통해 그는 늘 적절한 긴장(緊張)과 균형의 조화를 이끌어낸다. ● 그리고 나서 슬쩍 얹어주는 그만의 은유(隱喩), 바로 오늘의 추상화가(推象畵家) 권기철이 써내려가는 운문법(韻文法)이다. ● "어이쿠, 이 맛이야!" ■ 금주섭

권기철_어이쿠_한지에 혼합재료_91×53cm×36_2019
권기철_어이쿠_한지에 먹_212×155cm×13_2017

고(苦), 삶의 불화와 결핍이 배태한 정체성 ●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예술이란 세계를 탐구한 결과이며 우리에게 단순히 보는 법이 아니라, 본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는가를 가리킨다고 썼다. 예술이란 결국 '세상과의 반응', '지각의 감응'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권기철의 작품에서도 세상을 통한 반향을 본다. 시대와 현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거름망처럼 걸러낸 채 예술이 삶으로부터 이탈한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미적인 것은 물론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모든 관계의 원천으로서의 예술임을 그의 30년 화사가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 '삶의 불화에 대한 호쾌한 대응'을 내세운 전시는 거칠면서 담담한 삶, 결핍과 고뇌, 불편과 부정에서 노획한 예술임을 천명한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작들은 가히 고(苦)라 해도 그르지 않을 법한 삶의 경험과 기억, 그것을 위로했던 음악(소리), 사람 등을 기의(記意)로 한 삶을 토대로 다져진 내공부터 눈에 띈다. ● 그의 작품들은 일반적 편영의 틀을 깨뜨리고, 장르와 분야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태도 아래 밀착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집약된 에너지는 '눈비음'이 존재치 않는 내면의 완성을 향한 희구(希求), 우연적 마찰과 인위적 충돌, 점과 선이라는 조형요소들을 일궈낸다. 그야말로 이 거침없이 공간을 메우는 그만의 언어들은 삶과 '불화(不和)'의 틈에서 개간한 자신만의 화법임을 지정한다. ● 실제로 드리핑(dripping)을 이용한 「어이쿠-획획획」(2016)은 폼(form)에 앞서 '그리다'라는 행위를 강조하면서 전통적 작화의 의미에 균열(crack)을 만든다. 이때 논리와 지각작용은 날것으로 전환되고, 우연성과 자연성이 물성과 서로 상보적 작용을 거치며 시공의 틈을 와해시킨다. 또한 신문지로 중첩을 이룬 설치작품 「어이쿠」(2016)는 집약된 시간의 궤적과 결의 함축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재발견된 재료들로 구성적인 요소에 기인하는 대비위에서 명사화된 구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 「어이쿠-동파」(2016)와 같이 분야 간 경계를 무력화한 실제 크기와 관계없이 매스로 나아가는 일련의 설치작업들 역시 회화에서 파겁(破怯)된 필과 획, 준법의 장과 단, 혹은 뭉툭하거나 날카로운 여백이 버무려진 시공을 함축한다. ● 이밖에도 전시장에 내걸린 일련의 작품들은 시각화라는 의미에 앞서 인유된 개념이 강할 뿐더러, 가시적 그라피즘(Graphisme)과 문자화의 확대는 기지(旣知)를 전복하며 낯선 공명을 생성한다. 특히 작가의 다양한 청음의 발화와 불화를 잇는 내부의 마찰음은 시공을 파각시키고, 이 파각은 한 순간의 구속과 속박마저 단호하게 외면한 채 명시성을 배척하기 힘든 파열음을 낳는다. 물질과의 격렬한 대화 속에서 존재는 오브제와 맞서고 재료의 자율성은 한국화라는 도그마(dogma)를 해체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 사실 그의 모든 작업들은 구성되어질 수 있는 어떤 형태를 빗대더라도 그것은 구체적 사물로부터 시작된 재현이 아닌, 작가의 정신세계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감각적, 직관적 흐름이 다분하고, 애초 계산적인 밑그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형태는 불안정하지만 되레 관자들의 가치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격정적 시상(詩想)을 제공하기 위해 항상 개방된다. 이를 미학적으로 해석하면, 권기철의 작품들은 삶의 여정에서 거둬들인 가시적인 것과 감추어진 것,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비동일성을 연주하는 것과 갈음된다. 이는 마치 무정형의 악보 위에서 무한 확장을 거쳐 미의식의 연역마저 탈구축시키는 방식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 이처럼 권기철에게 예술이란 미학적인 차원에서 변형되고, 새로운 의미를 형성할 따름, 이성에 준하는 표현이 아닌 순간적이고 날카롭고 뾰족한 직감으로 완성된 표현에 가깝다. 이는 권기철의 작품이 분석적, 논리성에 우선해 간결한 시적인 형용으로 거론되는 중요한 단초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이 바로 '삶의 불화'로부터 발화된, 내재율의 완연한 옹립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권기철 작업의 중요한 변별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식을 내용에 맞추기 위한 틀, 대상의 외면에 나타난 꼴에 불과한 형식은 언제나 후순위요, 그 보다는 삶 속에 담긴 것, 든 것, 일구어낸 것들에 가치를 부여함을 읽도록 하기 때문이다. ■ 홍경한

권기철_어이쿠_한지에 혼합재료_123×245cm×2_2018
권기철_어이쿠-뾰족하거나 둥글거나_한지에 혼합재료_91×53cm_2018

나의 수묵작업은 몸으로 그리는 몸 그림이고 작품은 선이 변주되는 추상이다. 대상을 이미지로 읽고 몸의 제스쳐로 변환시킨 것이 그것이고, 오직 직관과 몸짓만 남도록 한 배설 또한 그것이다. 서체에서 출발한 타이포가 드리핑 된 의성어 '어이쿠'란 표제는 시간이 공간의 개념으로 옮겨 가는 작업 즉 순간과 행위를 의미한다. ● '어이쿠'는 한일자 (一) 선으로 시작해서 하나의 상징이 되고 때로는 여러 다양함으로 변주된다. 일테면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一卽多는 多卽一'(일즉다 다즉일)의 함의를 가진다. ● 작위와 무작위가 엄밀히 구획되는 작업에서 도구는 마치 몸과 같아 붓과 물감은 이와 다르지 않다. 삼투압 작용의 한지는 발묵과 번짐, 흘러내리기, 튀기기 등의 팽팽한 긴장의 순간이 최대치로 구현되며 그 위에 얹힌 형상들의 포치는 밀고 당기는 내밀한 에너지로 균형 분배된다. ● 몸과 마음이 온전히 무아지경으로 몰입되는 지점, 거기에는 몸의 관성이 작동하는 행위는 남고 생각이 분화하는 작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해서 나의 그림 나의 작품은 혹독하게 체득되고 육화된 몸의 행위만 남는다. 곧 나의 행위와 나의 그림은 온전한 동의어가 된다. (2019) ■ 권기철

권기철_어이쿠-뾰족하거나 둥글거나_한지에 혼합재료_97×190cm_2018
권기철_어이쿠_한지에 혼합재료_91×52cm_2018

The work of Kwon, Ki-Chul, starts when he touches his brush on the hahnji, the Korean traditional paper. This is why we can feel the spirit of sunbee, the Korean traditional scholar; which has been represented by ink stick (먹 muk), inkstone (벼루 byeoroo), brush (붓 beut), and paper (종이 jongwee or 한지 hahnji). ● However, his work does not remain there. The primary colors of acrylics bravely display a bright and clear contrast eliciting a totally different feeling from the inky water (먹물 muk-mool) on the hahnji paper. It is because muk-mool, is easily absorbed, the acrylics are rather slippery over the fibrous material and dries fast. ● By moving his brush cheerfully, Ki-Chul wants to record not only his gestures but his feelings at every moment also. Closing to the climax of his actions, he prepares for his finishing touch. ● "It is a large-hearted response to the discord of life," he always says. ● Ki-Chul's drawing composition is really unique; the very exquisite colors and their ratios of distribution. It is the tucking solecism (inconsistency) on the well-balanced screen filled with controlled lines and color surfaces. Using lines and faces which are rounded or pointed, blunt or sharp, he seeks a harmony between proper relational tensions and compositional balance. ● Finally, here comes a metaphor, the last touch; this is the way Ki-Chul, an abstract painter of today, writes his own poems on the screen for us to taste. ● "Oh, this taste!" ■ Keum, Joo-Seob

Vol.20190505h | 권기철展 / KWONKICHUL / 權基喆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