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이유미展 / LEEYOUMEE / 李裕美 / sculpture.installation   2019_0510 ▶︎ 2019_0609 / 월,공휴일 휴관

이유미_그들의 서사-나의 왼쪽_종이_114×24×9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1209d | 이유미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류병학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 2ND AVENUE GALLERY 서울 중구 필동로8길 22 Tel. +82.(0)2.593.1140 www.gallery2ndave.com

"지난 몇 년 동안 작업에서 조심스럽게 비극의 시대에 소리 없이 사려져간 많은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에 대한 고통과 슬픔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족사 특히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생각과 삶과 죽음의 의미와 다양한 삶의 번뇌를 작업으로 표현해 보고자 애썼다. 하지만 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불운의 시대에 봉인 된 그들의 삶과 슬픔을 간음할 수 없었다. 가볍게 입 밖으로 낸다는 것도 뭔가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고 사실 두려웠다. 상처를 헤집어 놓는 것이 아닌가하는 무서움이었다. 너무도 무거운 이야기 그럴수록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더욱 애잔해졌다. 하지만 그 얘기를 떨쳐 낼 수 없는 것은 내 어린 아들로 인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깨닫게 되고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인간의 깊이를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도 할 수 없고 얼마만큼 깊숙이 들어갈 자신도 없다. 그저 그리운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막연히 짐작해 본다. 과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이유미의 '작가노트' 『누구라도...』(2019) 중에서) ● 당 필자, 지난 4월초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한 이유미 작업실을 찾았다.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인 이유미 작가의 개인전에 출품될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그녀의 작품을 보자마자 감동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품은 필자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녀의 작품을 분석하기보다는 오히려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까닭일까? 그녀의 작품은 필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필자의 마음을 격하게 흔들어놓았다. 지금도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전율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녀의 작품이 필자의 심장에 꽂혀 있는 것이다. ● 이유미의 '인체조각'에서는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녀의 '인체조각'은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밀도감 있게 표현되어져 있어 마치 삶의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녀의 '인체조각'은 청빈과 정결 그리고 순종을 서약하고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따라 수도 생활을 하는 수도자(修道者)나 불도를 닦는 수행자(修行者)로도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의 '인체조각'은 필자의 눈에 고행과 명상을 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필자는 그녀의 작품 앞에서 숙연해진다. 왜냐하면 필자는 그녀의 작품에서 숭고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작품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필자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라기보다 차라리 '못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품은 '수다'스런 필자의 입을 마치 미싱으로 박아놓은 듯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말문을 막아놓기 때문이다.

이유미_그들의 서사-불후(不朽)_종이_32×90×7cm_2019

그들의 서사 ● 자,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5월 10일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서 오픈 예정인 이유미의 개인전 『누구라도...』말이다. 이유미는 이번 개인전에 신작 29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물론 29점은 작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올해 완성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29점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해 보도록 하겠다.

이유미_기다리다._종이_153×26×15cm_2019

이유미의 「기다리다」부터 보도록 하자. 그것은 벽면에 설치되는 종이죽으로 제작된 '종이-인간'이다. 그것은 성이 해체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나가면서 이유미의 작업노트에서 언급된 '샴쌍둥이'에 대해 읽었다. 그녀는 샴쌍둥이를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보며 천개의 눈과 손으로 모든 어려움과 위험에서 보살펴 주고 감싸 안아 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천수천안의 관세음보살을 떠올렸다"고 적었다. ●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 그것은 몸에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지닌 관음보살을 뜻한다. 따라서 천수천안관음은 천개의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응시하고 천개의 자비로운 손으로 중생을 제도한단다. 물론 여기서 1천이란 숫자는 무한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천수천안관음은 한 마디로 '무한한 자비'를 뜻한다. 이를테면 천수천안관음은 1천개의 눈과 1천개의 손으로 중생들의 상처 난 몸과 마음을 아물게 해 주는 자비로운 보살이라고 말이다. ● 머시라? 이유미의 「기다리다」 '종이-인간' 몸에는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아니라 두 얼굴이 있을 뿐이라고요? 우선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에 대해 알아보자. 천개의 눈은 얼굴이 아니라 천개의 손바닥에 각기 하나의 눈을 지닌 것을 뜻한다. 그리고 얼굴은 본 얼굴과 좌우에 2면 그리고 머리 위에 5면·2면·1면의 얼굴이 3단으로 이루어져 모두 11면을 이루고 있단다.

이유미_무섭지 않어_종이, 현무암_130×30×22cm_2019

자, 이번에는 이유미의 「무섭지 않아」를 보자. 그것은 현무암 위에 서있는 '종이-인간'이다. 그것은 몸을 측면으로 하고 얼굴만 정면을 보고 있다. 그런데 관객이 '종이-인간'을 정면으로 보려고 움직이면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 그렇다! 그녀의 「무섭지 않아」 역시 샴쌍둥이의 모습으로 제작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교묘하게 제작해 놓아 한 면에서 볼 경우 두 얼굴인지 알 수 없게 했다. 덧붙여 이유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한 몸에 두 얼굴의 샴쌍둥이의 형상을 빌려 왔을 뿐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이며, 인간적인 고뇌의 표현이며, 천수천안의관음상처럼 내안에 나를 보호해주는 또 다른 나의 존재가 있는 거 같아요. 어쩌면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서부터 내려온 할머니에서 할머니로 내려온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내안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유미_하고픈 말은 많지만..._종이_122×50×36cm_2019

이번에는 이유미의 「하고픈 말은 많지만...」을 보자. 그것은 여섯 개의 팔을 지닌 '종이-인간'이 백색 받침대 위에 서있다. 이 조각작품 역시 「무섭지 않아」와 마찬가지로 측면을 향해 연출되어 있다. 따라서 관객이 그녀의 「하고픈 말은 많지만...」을 정면에서 보고자 하면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 그것은 '입체-조각'이라는 특성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여섯 개의 팔은 무슨 의미일까? 이유미의 답변이다. "인도에서는 팔이나 다리가 여럿 있는 샴쌍둥이들이 태어나면 신의 아이라고 생각하며 각별히 보살핀대요. 천수천안관음도의 수많은 손과 눈은 자비와 지혜로 중생을 어루만져 준다고 해요. 제 작업의 손들도 위로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일상의 번뇌의 흔적이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어요." ● 문득 신영복 교수의 「나무야 나무야」가 떠오른다. 신 교수는 천수관음보살의 손을 자세히 보고 깜짝 놀란다. 왜냐하면 천개의 손바닥에 천개의 눈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수천안(千手千眼)이 그냥 맨 손이 아니라 눈이 달린 손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이 달린 손은 맹목(盲目)이 아닙니다. 생각이 있는 손입니다. 마음이 있는 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 수많은 손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있는 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미_잠들지 못한 날들_종이, 철_30×130×12cm_2019

이유미의 「잠들지 못한 날들」은 '종이-인간'이 누워있는 모습의 조각작품이다. 그런데 '종이-인간'은 바닥이 아닌 (벽면에 설치되어) 공중에 누워있다. 더욱이 눈을 감고 있다. '종이-인간'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잠들고 싶지만 잠이 오지 않아 불면증이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종이-인간'의 손은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하듯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종이-인간'은 잠 못 이루는 괴로움을 넘어선 상태란 말인가? ● 머시라? 이유미의 「잠들지 못한 날들」이 신작이 아니라 구작 「잠들고파-불면증」(2006)이 아니냐고요? 그런데 구작 「잠들고파-불면증」의 공중에 부유하듯 떠있는 '종이-인간'은 지나가면서 보았듯이 벽면에 반짝이는 금빛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신작 「잠들지 못한 날들」의 '종이-인간'은 텅 빈 밤에 홀로 외롭게 있다. 그렇다! 구작의 '종이-인간'은 눈을 뜨고 있는 반면, 신작의 '종이-인간'은 눈을 감고 있다. 아니다! 신작의 '종이-인간'은 왼쪽 눈은 감고 오른쪽 눈은 뜨고 있다. 오잉? 구작은 한 얼굴이었는데, 신작은 두 얼굴이 아닌가? ● 도대체 '종이-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구작의 그/녀에 대해 '밤하늘에 반짝이는 금빛의 별들을 보면서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중얼거렸다. 필자는 그 사례로 그녀의 「불랙 독 - 그와 함께 가기...」로 들었다. 기억하시죠? 그러면 신작의 '종이-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 그/녀는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유미_그들의 서사-나의 왼쪽_종이_114×24×260cm_2019

이유미의 「그들의 서사-나의 왼쪽」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작년 갤러리 세인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한 「그들의 서사」 시리즈를 암시한다. 지나가면서 보았듯이 그녀의 「그들의 서사」는 머리와 팔 일부 그리고 다리 일부가 잘려나간 형상이었다. 「그들의 서사-나의 왼쪽」 역시 머리와 팔 일부 그리고 다리 일부가 잘려나간 형상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필자는 머리뿐만 아니라 사지가 절단된 '종이-인간'들을 보고 울컥했다. ● 이유미의 「그들의 서사」와 「그들의 서사-나의 왼쪽」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점들도 있다. 우선 「그들의 서사」가 2점으로 이루어진 반면, 「그들의 서사-나의 왼쪽」은 10점의 '종이-인간'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더욱이 이유미의 「그들의 서사-나의 왼쪽」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종이-인간'의 왼쪽 몸이 절단되어 벽면에 설치되어 있다. 와이? 왜 그녀는 인체의 왼쪽 몸을 절단한 것일까? 그녀는 단순히 벽면에 작품설치를 위해 몸의 한쪽을 절단한 것일까? 이유미의 답변이다. "한쪽을 잃어버린 몸은 내안에 다양한 감정의 절제이며, 다양성의 거세이며, 부정하고 싶은 부분의 지워 버림이며, 내 안의 뿌리에 대한 잊고 있음이며, 내안의 존재에 대한 부정인 모습이며, 잃어버림에 대한 것예요. 근대부터 현대를 관통하는 삶을 보면 늘 한쪽으로 치우쳐서 사람들을 편가름하고 줄서기를 강요했던 거 같아요. 개인의 경험이나 가족, 친구의 경험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부끄럽게도 자기당착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집단 갈등의 정도는 시대가 달라도 점점 심화 되고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 세대 갈등부터 빈부갈등 등등 너무도 많은 것들로 인해 개인의 삶이 더 고단하고 힘든 것 같아요. 그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슬픔과 고통 그리고 많은 희생이 따랐고요. 다양성에 거세된 이들의 모습이며, 갈등으로 인해 희생된 모습이며, 갈등의 주체가 된 사람들의 온전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고 슬펐던 것이 이번 작업에서 반쪽 자리의 자아의 모습으로 표현한 거예요." ● 작가는 몸 왼쪽이 절단된 '종이-인간'들을 마치 사열하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벽면에 설치해 놓았다. 따라서 관객이 그들을 정면에서 보면 단 하나의 '종이-인간'만 보게 된다. 그러나 관객이 자리를 조금만 옮겨도 10점의 '종이-인간'들을 보게 된다. 물론 10점의 '종이-인간'들은 각기 조금씩 형태적 차이를 지닌다. 따라서 '그들의 모습'들은 '그들의 서사'를 암시한다. '그들의 서사'는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이야기를 은유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서사(敍事)'는 사건의 진행 과정이나 인물의 행동 변화 과정을 시간의 앞뒤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는 서술 방법이다. 하지만 이유미의 '그들의 서사'는 어떤 특정한 사건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 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그들의 서사'는 일종의 아날로그식 '하이퍼 서사(Hyper Narrative)'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유미_그들의 서사-불후(不朽)_종이, 금박_122×47×12cm_2019

자, 이번에는 이유미의 「그들의 서사-불후(不朽)」를 보자. 그것은 머리와 팔 일부 그리고 다리 일부가 절단된 '종이-인간'들을 벽면에 설치한 작품이다. 그것은 크기가 서로 다른 2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서사-나의 왼쪽」 10명 '종이-인간'들의 피부가 진한 회색에 가깝다면, 「그들의 서사-불후」 2명 '종이-인간'들의 피부는 새하얗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서사-불후」 '종이-인간'들의 백옥 같은 피부 곳곳에 작은 상처들이 있다. ● 그런데 거대한 '종이-인간'의 배꼽 밑 허리쯤에 대각선 방향으로 난 상처는 '금(박)'으로 치료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유미는 이번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 개인전에 전시할 32점 조각작품들 중에 금박을 입힌 작품은 단 한 점이다. 「그들의 서사-불후」 2점 중 한 점이 그것이다. 와이? 왜 그녀는 이번 개인전에 금박 사용을 절제한 것일까? 이유미의 답변이다. "사실 금박을 입히는 것에 고민이 많았어요. 금박을 사용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조심스러웠어요. 유행처럼 금박을 사용하는 작가들도 많아졌고요. 작업이 너무 설명적이며 또 장식적인 것처럼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뜬금없지만 진정한 빛은 번쩍이지 않는다는 말을 좋아해요. 그래서 장식적인 요소를 빼고 더 담백하게 작업 만으로의 힘을 가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금박이 주는 장점과 인간의 본질이 우주와 연결되는 내용적인 면에서도 금박 사용은 계속 고민 중예요. 이번 개인전에 출품될 32점의 신작들 중 한 점에만 금박을 입혔어요." ● 금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변색되거나 부식되지 않는 일종의 '불후의 금속'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불후(不朽)'는 썩지 아니함 혹은 썩어 없어지지 않음을 뜻한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것의 가치나 의의가 언제까지나 길이 전하여 없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천주교 및 정교회에서 불후(incorruptibility)는 특정한 인간인 성자나 복자의 육신이 죽고서도 신의 개입에 의해 생물학적 분해를 거치지 아니하는 성스러움의 징표를 뜻한다. 그래서 불후체에서 꽃향기와 비슷한 '성스러운 향'이 난다고도 한다.

이유미_우주진 宇宙塵_종이_가변설치_2019

이유미의 「우주진(宇宙塵) Star dust」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벽면에 12점의 크고 작은 원형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따라서 12점의 조각들은 마치 공중에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관객이 그 작품들로 한 걸음 걸어 들어가면 그 원형의 조각들이 인간의 얼굴 형태를 한 두상임을 볼 수 있다. 더욱이 그 두상들은 모두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지나가면서 보았듯이 이유미의 두상은 '눈물'이기도 하고 '우주'이기도 했다. ● 이유미는 12점을 두상들을 '우주진'으로 명명한다. '우주진'은 우주 공간의 미세한 입자들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의 눈에 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주진'은 별들이 폭발하거나 암석 천체들이 충돌할 때 발생된다고 한다. 그리고 우주진 대부분은 결국 새로운 별이나 태양계가 생성될 때 재사용된단다. 필자는 그녀의 '우주진'을 보면서 또 다른 '그들의 서사'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그녀의 '우주진'은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서사를 생성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미_그지없이_종이_58×45×43cm_2019

마지막으로 이유미의 「그지없이」를 보도록 하자. 그것은 새하얀 화강암을 정과 망치로 두드려 조각한 마치 거대한 알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객이 벽면에 설치된 조각작품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 인간의 두상을 조각한 것임을 볼 수 있다. 더욱이 그 두상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두 얼굴에 눈은 세 개다. 그런데 세 개의 눈은 뜬 것인지 혹은 감은 것인지 불명료하다. 백옥 같은 두상 이곳저곳에 상처들이 나있다. 머리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상처들이 나있다. 살점이 뜯겨나간 곳은 속살을 드러낸다. 백옥 같은 피부의 속살은 검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필자가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이유미의 작품들은 인간의 죽음과 삶에 대한 우리들의 서사였다. 누군가 말했듯이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이름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만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유미는 그녀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를 은유한 상상력으로 1995년 제작한 일명 '인중천지(人中天地)' 시리즈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작업해 오고 있다. 그녀의 사적인 이야기는 차츰 역사적 사건이나 주변의 인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점차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녀는 마치 새롭게 거듭나고자 한다면 상징적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듯이 말이다. ● 필자가 본 이유미의 '그들의 서사'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녀의 '종이-인간'들은 상처받고 음울한 영혼들이다. 그녀는 예술의 진정성과 왜곡에서 오는 좌절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드러낸다. 말하자면 그녀는 도달하지 못할 것을 예측하면서도 끊임없이 욕망을 성취하려고 하는 인간을 작품'들'로 드러낸다고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고 관객인 우리를 뜻한다. 필자는 그녀의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작가의 끊임없는 성찰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했다. 왜 필자가 그녀의 작품을 보자마자 감동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 류병학

Vol.20190510f | 이유미展 / LEEYOUMEE / 李裕美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