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언어_天上言語

서용展 / SUHYONG / 徐勇 / painting   2019_0529 ▶︎ 2019_0603

서용_동덕아트갤러리_2019

초대일시 / 2019_052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동덕아트갤러리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B1 Tel. +82.(0)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서용의 「천상언어」, 그 내밀한 울림의 의미에 대하여 ● 돈황은 인간이 쌓아 올린 간절한 염원의 탑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의 세례를 거쳐 천상의 언어로 아로새겨 졌다. 그리고 다시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의 강을 건너 천상의 언어는 하늘의 뜻을 담아 인간에게 전해졌다. 그것은 천상의 언어이기에 눈으로 보이는 앎의 교만함을 허락지 않고 단지 마음 속 깊은 곳의 아스라한 깨달음으로 조심스럽게 전해질 뿐이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기에 한없이 크고 넓어 그저 언뜻 드러나는 한 자락의 은밀함을 통해 깨달음을 가늠케 할 따름이다. 그것을 마주하는 인간은 그저 무릎을 꿇고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자신에게 허락된 만큼의 조각들을 주워 모아 조심스럽게 천상의 뜻을 헤아릴 뿐이다. 그 소리를 듣고 모양을 가늠하며 뜻을 헤아려 어슴프레 한 빛을 찾아가는 것은 간절한 순례의 여정과도 같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몸을 지치게 하고, 모양을 더듬어 찾아가며 스스로 마음을 비워나가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것은 채워짐을 통해 순례의 역정을 기록하지만 비워짐을 통해 오히려 충만한 천상의 소리를 울림으로 전한다. 서용의 작업이다. ● 돈황은 시간 저편에서 전해지는 은밀한 빛이다. 그것은 매우 오랜 시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옛 이야기이다. 이미 퇴색하고 박락된 흔적들은 인간의 욕망을 무수한 시간들이 말없이 거둬들이고 남은 흔적들이다. 그 탈각된 흔적들 속에서 빛을 구하는 것은 조형이라는 얄팍한 지식이나 기법이라는 손끝의 재주에 앞서 진정으로 다가가고 정성으로 주워 모아 스스로의 마음을 밝히는 일이다. 그것은 형식적인 종교적 의식이나 문자로 기록되는 허구의 찬양에 앞서 진심으로 갈구하는 또 다른 염원이다. 빛은 스러짐을 통해 빛을 담으려는 인간의 교만을 다스리고, 밝음과 어둠을 통해 순간과 영원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하며 찰나에 집착하며 영원을 가늠하려는 오만을 경계한다. 시간의 조각들과 빛의 부스러기들은 어쩌면 발등을 비추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미망의 시간 속에서 하염없는 부질없음으로 그것들을 수집하고 새기며 어루만진다. 서용의 작업이다.

서용_천상언어1904_건식벽화기법, 목각_200×400cm_2019
서용_천상언어1908_건식벽화기법, 목각_167×132cm_2019 서용_천상언어1907_건식벽화기법, 목각_167×132cm_2019

작가 서용은 어쩌면 이질적인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는 현대라는 시공 속에서 케케묵은 시간 저편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순수예술이라는 장엄한 권위의 뜰에 종교색 짙은 작품들을 거리낌 없이 자신 있게 드러낸다. 실질과 효용을 중시하는 세태에서 육체노동을 전제로 한 원시적인 작업 방식의 아날로그를 추구하며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분명 우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둔중한 울림은 예사롭지 않고, 거칠고 투박한 가운데서 드러나는 감성은 기계문명의 절정에서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는 인간적인 안온함이다. 그에게는 현대라는 시공의 정형화된 해석에 앞서 자신에서 발현되는 신념이 우선하고, 순수라는 예술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가 역력하다. 그리고 이를 드러냄에 거침없음은 자신의 사고와 신념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의 표출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의미 있음은 전적으로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에 대한 것들의 믿음이며, 의미 없음은 형식의 허상으로 전해지는 공허한 것들이다. 그의 이질적임은 그의 특수성이고 그의 정체성이며 그의 차별성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서용의 작업이다.

서용_천상언어1912_건식벽화기법, 목각_140×280cm_2019
서용_천상언어1909_건식벽화기법, 목각_167×132cm_2019 서용_천상언어1911_건식벽화기법, 목각_167×132cm_2019

돈황은 그 자체가 일종의 전범(典範)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배태되고 숙성된 것이기에 그 무게와 권위가 예사롭지 않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를 자신의 것으로 읽고 해석하여 표출한다는 것은 그만큼 버겁고 힘든 일이다. 작가의 작업에서도 이는 여실히 느껴진다. 그는 닮음과 닮지 않음의 경계에서 무수히 방황하고, 전범의 무게를 이겨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아로 새기고자 몸부림친다. 게다가 그것은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이자 시간의 세례를 거친 영물이다. 그만큼 대상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그는 우회하는 편법대신 자신의 육체를 밑천으로 이에 맞서고 자신이 살아 온 삶을 온전히 담보하여 마주함으로써 그 감당하기 힘든 전범의 틈을 파고 든다. 서로 다른 색들을 중첩하는 작업 방식을 통해 다름을 같음의 조화로 수렴해내는 그만의 방식은 전범의 틀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엄정한 형태를 그리고 다시 닦아 내는 반복적인 작업은 채움과 비움을 통해 필연과 우연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말한다. 그리고 바탕의 갈라짐, 선묘의 흐트러짐조차도 고스란히 용인하여 수렴해내는 무작위의 여유는 깨달음의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라 읽혀진다. 그것이 서양의 것이든 전통적인 것이든, 또 종교적인 것이든 세속적인 것이든, 조형적인 것이든 기교적인 것이든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화면과 마주하며 자신이 감내한 세월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한다. 그것은 진지함의 축적이며 그의 작업에서 전해지는 진중한 무게감은 이에서 비롯되는 부수적인 효과일 따름이다. ● 급변하는 문명의 흐름 속에서, 또 날로 진화하는 기계문명의 편리함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아날로그의 둔탁함은 매우 인간적인 것이어서 오히려 소중하다. 획일화된 전형의 범람 속에서 순간 드러나는 그의 개성이 반갑다. 그리고 그것이 익히 익숙한 다분히 전통적인 것을 자신의 것으로 변환하여 현대라는 시공의 허망한 가치와 건강하고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작가의 다음 작업을 기대해 본다. ■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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