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이승현展 / LEESEUNGHYUN / 李升鉉 / drawing   2019_0613 ▶︎ 2019_0714 / 월요일 휴관

이승현_181118_170224_장지에 먹_149×107.5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702f | 이승현展으로 갑니다.

이승현 홈페이지_www.cryptolee.com

초대일시 / 2019_0613_목요일_06:00pm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소 SPACE SO 서울 마포구 동교로17길 37(서교동) Tel. +82.(0)2.322.0064 www.spaceso.kr

차원이 다른 이야기 - 의식과 무의식 ● 이승현 작가의 이번 개인전 『Beyond』는 자신이 그린 드로잉이자 '미확인(crypto-) 생명체'를 통해 작가 개인의 인식과 시선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 생명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괴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승현 작가는 그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는데, 그는 당시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무의식 상태로 몰입했고, 그리는 형태 역시 직관을 따랐던 작업 태도에 기인한다. 그래서 작가는 미확인 생명체가 완성되고 나서야 자신이 이것을 그렸다는 사실에 대해 자주 생경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 미확인 생명체를 만들었지만 자신에게 완전히 편입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손끝에서 생성되는 이 생명체를 점차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무의식 상태에서 발현된 미확인 생명체가 무의식 너머에 있던 작가의 어떤 인식 체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서로써 작용해왔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 간에 상호작용으로 완성된 미확인 생물체는 현재 작가에게 의식과 무의식, 인식과 본질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그 메커니즘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승현_180718_191255_장지에 먹_146×207cm_2019

이승현 작가는 15년 가까이 미확인 생명체를 그리면서 패턴화되어버린 자신의 드로잉이자 생명체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이 있었다. 전시 『반상 변이(盤上變異, 2014)』를 통해 작가의 태도는 본격적으로 달라진다. 작업 과정이 무의식에서 의식의 범위로 전화되는 순간이다. '바둑'이라는 구조 안에 생명체를 가두고 서로 대결을 종용한 것이다. 그 당시부터 미확인 생명체의 이동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거대한 시스템의 구조에서 생명체의 죽음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양극단으로 나뉜 승자와 패자만으로 종료될 거라 예상했던 전쟁터에서, 작가는 죽은 생명체들을 한데 모아 'B-Shadow'라고 명명함으로써 집단 박제화 하거나 애도를 담은 무덤으로 상징화 시킨다. 그는 죽은 개체를 하나씩 그려 바둑판 위치를 나타내는 일련번호를 달아 독립시키고, 바둑판을 넘어서는 더 큰 구조 체계의 여백을 떠돌게 한다.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시스템이자 역할 모델은 다름 아닌 이승현 작가였다. 그때부터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미확인 동물학(2007)』,『미확인 동물원(2008)』,『Crypto-MUSEUM(2010)』 등 과거 개인전에서 미확인 생명체의 창조자이자 탐구자로서의 자세와는 다른 것이었다.

이승현_190219_174411_장지에 먹_207×146cm_2019

작품 제목「181118_170224」. 2018년 11월 18일, 오후 5시 2분 24초. 이승현 작가가 스튜디오 주변 풍경을 촬영한 날짜와 시간이자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게 구분되는 신작이면서 미확인 생명체가 일상에 진입한 첫 번째 장면이다. 수영장과 쇼핑몰 그리고 빌딩 숲을 그린 드로잉 연작 모두 날짜와 초 단위까지의 기록이 작품 제목이다. 장지에 먹으로 그린 풍경 드로잉 연작은 일상의 모습과 생명체가 구분 없이 하나로 엉켜 있다. 언뜻 미확인 생명체가 일상을 점령한 채 폐허화 되고 있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 로맨서』(1984)에 나온 사이버 공간이자 일상 환경을 지칭하는 '매트릭스(matrix)'가 중첩돼 있는 듯하다. 또한 어떤 체계를 빗나간 오류 상태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할지라도, 이 모든 가설의 공통점은 작가의 인식 체계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승현 작가는 관찰자로서 기록하고 의식적으로 감지되는 것들을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은 어쩌면 미확인 생명체와 작가의 시공간이 접점을 이루는 상징적인 순간일 수도 있겠다. 미확인 생명체는 공식적으로 2006년 작가의 무의식에서 원점을 찍고 출현하여 자유롭게 세상을 선으로 유영해왔다. 과거 생명체의 모습은 사진으로 찍은 듯 정확하고 선명하게 떠 있었던데 반해,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생명체는 스스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 심해 생물처럼 숨어 있다가 재빠르게 이동하고 다시 휴지기를 가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새로운 장치로 인해 더욱 선명해진다.

이승현_Untitled_벽면에 페인트_가변크기_2019

큐브 속 큐브 ● 큐브가 등장했다. 이 큐브는 전시장에 직접 마카로 그린 대형 벽화와 연필로 제작한 소품에서 볼 수 있는데, 미확인 생명체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큐브 속에 존재한다. 큐브 안에 갇혀 있기보다는 그들만의 생태계를 조성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큐브 밖으로 나와 다양한 형상으로 응집하고 분화하면서 일정한 궤도를 그리며 속도를 가진다. '속도'는 앞으로 이승현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거라 예상한다. 스스로 속력을 낸다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 미확인 생명체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자립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정육면체 큐브 장치를 설정한 것은 미확인 생명체가 지각이나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계와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음을 작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단, 이 모든 상태가 작가의 인식 체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승현_Cube 06_종이에 연필_56×41.5cm_2019

이 과정은 작가 자신의 시각과 인식의 메커니즘을 밝혀 나가는 추적과도 연결된다. 이 시선의 태도와 강도는 매우 차분하다. 미확인 생명체는 큐브를 기준으로 안팎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현재 의식은 무의식의 관계에서 의식이 무의식을 보다 많이 점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큐브 도식 자체가 작가의 인식 체계를 설명하는 기작으로 작용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식의 차원에서 미확인 생명체는 큐브로 상징되는 인식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기거하고 있다가 작가의 손을 통해 발현되는 시점에 큐브를 이탈하는 시나리오를 갖는다. 이렇게 한 때 무의식에서 존재한 미확인 생명체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행동 기작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고민은 또 다른 도식에서 드러난다. 큐브 속에 또 다른 작은 큐브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미확인 생명체의 미스터리한 생명의 기원과 연결될 수도 있고, 작가가 관찰자로서 지치지 않도록 최후의 보루로 설정해놓은 판도라의 상자일 수도 있다.

이승현_회전증식_회전원판에 페인트_39×39×4cm_2019

작가에게 이미 익숙해진 미확인 생명체의 존재는 현재 잠정적으로 작가의 무의식이 아닌 의식 상태에 포섭되어 있는 것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작가는 관찰자로서 생명체를 보고 있는 이상, 미확인 생명체를 통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의식적으로 포착하려는 의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추정은 다음의 작품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흑백 원판에 그린 드로잉은 돌아가기도 하고 벽에 부착했을 때 서로 높낮이가 달라 중첩하여 설치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원판이 설치된 한 벽면에 그려진 벽화에서 이 생명체의 사회화 조짐을 목도할 수 있다. 원판 안에 그린 원형 드로잉처럼 벽화 드로잉의 형상 중에 원형 틀 없이 원형의 모습을 따라 탈바꿈한 생명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승현 작가가 원형 틀에 생명체를 그리기 위한 준비 과정은 이미 인식 상태로의 진입 단계이며, 더 이상 무의식 상태에서 미확인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로잉 이전, 즉 의식화 단계를 준비하는 그 이면의 세계에서는 이미 그 틀에 맞춰 형태를 원형으로 만들고 있는 생명체를 보게 된다. 이것은 작가의 인식 구조화에 대한 도식을 보여준다.

이승현_Untitled_오브제에 페인트_73×60×60cm_2019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작가와 미확인 생명체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하는 동일한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당시 작가가 가졌던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과정과 상당히 비슷한 지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미지가 인식되는 과정은 무의식만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으며 무의식과 의식의 상호작용 사이에 진통을 겪는 사회화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승현_Beyond展_스페이스 소_2019

한 인간을 둘러싼 미확인 생명체와 미확인 생명체를 둘러싼 인간의 태도는 현재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이승현 작가가 확실히 자신이 펜을 쥐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지의 생명체를 묘사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태도가 변화하는 지점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 미지의 생명체는 지금도 끊임없는 분화를 거치고 이동하며 진화하고 있다. 본 글에서 시종일관 생명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비슷한 종의 시료를 채집하거나 DNA 서열과 같은 분석 가능한 물리적 요소는 전무하다. 이 생명체의 미래에 대한 단서는 오직 백지 앞에 선 작가의 투명하고 날선 평정심에 있다. ● 앞으로 지금까지 철저하게 타자화된 채 살아온 미확인 생명체는 결국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작가 이승현임을 인정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작가 정신의 이중성을 의식적으로 유지한 채 매번 의식을 원점화하여 새로운 무의식에 도전할 것인가. 그 어떠한 방향이라도 진화하는 단계로 진입하는 것임이 자명하다. 단, 이승현 작가는 이 "진화는 발전과는 다른 개념"임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 박정원

Vol.20190613e | 이승현展 / LEESEUNGHYUN / 李升鉉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