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풀어내다!

2019 서호미술관 기획展   2019_0614 ▶︎ 2019_073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류종대_박보미_박인주_박홍구_이정훈 이종덕_오치규_이혁_정수화_하지훈 픽트 스튜디오

2019 지역문화예술플랫폼 육성 지원사업

후원 / 경기도_남양주시

관람료 / 2,000원 / 단체 1,500원 / 경기도민, 군·경 50% 할인

관람시간 / 10:00am~07:00pm

서호미술관 SEOHO MUSEUM OF ART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로 1344 1층, 한옥별관 서호서숙 Tel. +82.(0)31.592.1865 www.seohoart.com

소반으로 풀어내는 공예전시, '실타래를 풀어내다'에 부쳐: '우리 시대 공예-소반은 어떻게 삶의 방식을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가치와 의미의 표현물로서 보여주고 있는가?' - 1. 일상용품 소반이 이어주는 세계 ●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북한강변에 위치한 '서호미술관'에서 만나는 『실타래 풀어내다』는 소 반(小盤)으로 풀어내는 공예 전시다. 미술관 본관 전시실과 새로 문을 연 서관 한옥채의 여러 방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소반 작업들은 상(床)으로 통칭하여 불리는 넓은 범위를 포괄할 뿐만 아니라, 변용된 쓰임에 깃든 제작의 깊이, 그리고 전통적 기법과 현대적 기법 간의 차이를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류종대_D-SOBAN_호두나무, PLA(옥수수전분)_서호미술관에 가변설치
류종대_D-SOBAN_호두나무, PLA(옥수수전분)_23×28.5×28.5cm_2017
박보미_Afterimage_Soban_스틸, 용접_47×50×50cm_2014
박보미_Afterimage_Jangsiktakjja 02_스틸, 용접_74×55×46cm_2014 박보미_Afterimage_Jangsiktakjja 03_스틸, 용접_111×55×46cm_2014

소반은 음식 또는 다과를 먹기 위해 평평한 반면(盤面)의 통판과 여기에 연결되는 다리로 이루어지는 한국 전래 좌식(坐式) 식탁의 총칭이다. 소반, 교자상, 제사상, 책상, 돌상 등을 모두 통상적으로 '상'(床·牀)이라 불렀지만, 좁혀 보면 상은 소반을 지칭해왔다. 다리가 지나치게 낮거나 없으면 쟁반, 다리가 지나치게 높으면 탁자로 불리는 그 사이, 적정한 높이와 적정한 규모의 상, 쟁반과 식탁이 결합된 상이 소반인 셈이다. ● 예전 시대에는 사용하는 사람의 지위와 신분, 경제적 여건, 의례와 관습, 그리고 쓰임새에 따라 소반에 적용되는 격식과 규격, 재료와 형태가 엄격하게 지켜지기도 했다. 예컨대 궐반이라 불리던 궁궐 소반에는 민가에서는 금지되었던 주칠과 흑칠이 사용되었고, 화려한 조각을 새기거나 화려하게 자개도 박을 수 있었다. 특수성이 강조됨으로써 권위와 상징성을 의도하였던 소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흔치않은 진귀한 궐반이 모든 소반들의 정점을 차지한다고는 할 수 없다.

박인주_책상반_느티나무_31×96×46cm
박인주

소반이 모든 계층과 모든 지역을 막론하여 널리 사용된 일상용품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소반에는 엄격함과 화려함, 정교함의 작위적이고 특수한 미감만이 아니라, 즉흥성과 소박함, 단순함의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미감이 간직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수많은 민가에서는 소반의 좌식 식탁이라는 보편적인 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생활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여 자발적이고 독창적인 통로로 소반을 제작하였기 때문에 보편적 미감을 토대로 개별적인 안목도 배제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물론 이 때의 독창성이란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 유일무이성이나 재료의 특수성, 의도의 탁월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중 어느 것도 제외시키지 않고 서로 융합시키는 삶의 능력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 이러한 점이 소반뿐만 아니라 더 넓게는 공예가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 시대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요소일 것이다. 제작물이 삶과 분리되지 않고 삶의 태도와 양식(또는 문화)을 떠올리게 하는, 또는 관계짓는 공예의 관계미학은 예술적 구조들이 결코 단 하나의 의미 산출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홍구_추상탄화 원형소반_홍자작나무_26×36×36cm×4_2018
박홍구_추상탄화 항아리

2. 다양한 전통장인들과 현대공예작가, 다양한 작업방식들의 차이를 읽게 하는 전시 ● 서호미술관의 기획전 『실타래 풀어내다』는 10명의 작가와 장인 그리고 1개 스튜디오가 출품한 작업들을 통해 '우리 시대 공예-소반은 어떻게 삶의 방식을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가치와 의미의 표현물로서 보여주고 있는가?'의 근원적 질문에 대해 다양한 입장에서 대답을 들려주고 있다.

이정훈_양반 소반_지름 40cm
이정훈_양반 소반_보상화문_부분
이종덕_화형 개다리 소반_은행나무_26×39×39cm

작가 선정은 주로 소반을 제작하는 공예가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구성은 1) 4인의 전통공예의 장인들(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본태공예 대표 박인주,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칠장보유자인 정수화, 국가무형문화재 소반장의 전수조교인 이종덕, 거창유기 전수자로 입문한 이혁)과, 2) 6인의 현대공예작가들(국내 뿐만 아니라 영국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있으며 예술성 추상 탄화 원형소반을 내놓은 박홍구, 공예트렌드페어 해외 순회전을 통해 호응을 얻고 있고 철 재료와 용접을 통해 '이후의 소반'을 보여주는 박보미, 디지털 소반을 통해 현대 기술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접목하고 있는 류종대, 예술과 공예의 구분을 뛰어 넘으며 가로지르기를 시도해 온 오치규, 포스트모던 시대 부상한 혼용의 방식을 토대로 새로운 감각으로 양반 소반을 보여주는 이정훈, 아크릴 재료로 전통 소반의 현대적 변용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하지훈), 3) 그리고 공예계에서는 드물게 개인 작업으로서가 아니라 팀 차원에서 협력적 생산 작업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픽트 스튜디오FICT STUDIO 가 포함되었다.

오치규_이유없는 집합(앞)_41×41×6cm_2017
오치규_이유없는 집합(뒤)_41×41×6cm_2017

재료를 다루는 높은 기술과 정확성, 기능의 충만함, 절제된 장식성이 돋보이는 전통장인들의 작업들( 박인주의 책상반/ 정수화의 나전원반/ 이종덕의 화형 개다리 소반 등), 그리고 익숙한 실용적 기능에 갇히지 않고 상식의 차원을 넘어 시적 직관력에 기대어 표현주의적 오브제로 이동한 공예작가들의 작업들( 박홍구의 원형소반 외/ 박보미의 애프터이미지 소반/ 류종대의 D-SOBAN, 하지훈의 12각 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는 듯 마찰 지점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마찰은 갈등과 충돌로써 드러나지 않고 차이와 다름이 공존할 때 느껴지는 생동적인 긴장, 즉 두루뭉술한 수용이 아니라 자각된 상호이해로 다가온다. ● 뿐만 아니라 전통장인들 내에서나, 현대공예작가들 내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우선 현대공예작가들 내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보자. 박홍구의 작업들이 보여주는 개인의 창의성 강조와 예술수공예적 이상은, 3D 프린터로 제작된 다리와 호두나무 재료로 만든 원형 반면(盤面)을 이은 류종대의 합리적이고 산업화된 접근방식과는 매우 다르다.

이혁_거창유기_수 1인반상기_유기
이혁_유화접시(그린)

전통장인들 내에서도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오랜 기술의 축적과 절제된 표현, 간결한 선과 명확한 면에서 우러나오는 구조적 안정감을 보여주는 박인주 명장의 책상반은 높은 완성도 때문에 오히려 생활용품임에도 모든 이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못한다. 번잡함과 화려함, 기이함 등을 기피하고 있는 책상반의 품격에서는 무변과 항상성을 견지하려는 일종의 일상생활과의 '거리 취하기'도 느껴진다. 반면, 소반장으로 국가무형문화재 99호가 된 이인세 선친으로부터 소반기술을 전수받고 전수조교로 지정된 이종덕은 이번 전시에서 완성된 화형 개다리 소반 외에도 칠이 안 된 여러 점의 미완성 소반들을 함께 보여 주었다. 완성품에서는 보이지 않던 은행나무의 결과 마무리 안 된 거친 상태의 반면(盤面)은 여러 단계에 걸쳐 이루어지는 매 작업과정의 일시성을 미숙하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충일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전통에 관한 역사주의적 태도와 현재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한 역사성의 이해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여겨진다.

정수화_나전원반_동선 자개 대모_20×40×40cm
정수화_나전일주반
하지훈_12각 소반_아크릴_29.5×42×42cm_2019

이렇게 다양한 층위에서 보이는 차이들을 잘 드러내 준 전시의 백미는 그룹 이름으로 출품한 픽트 스튜디오FICT STUDIO의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훌륭한 소수의 작가와 장인들 또는 소수의 완결된 독자적인 작품들이 공예와 예술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는 상황에 반기를 들고, '노 네임', '노 브랜드', '언리미티드' 등의 수식어를 달거나, 작업장이나 그룹의 이름으로 제작활동을 펼치는 이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는 뛰어난 개인의 이면에서 도움과 협력의 관계를 형성하였으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실제적 힘들에 대한 존재론적 각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점과 명망의 환상을 넘어 생활세계에서 공유와 협력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이런 추세들이 창의적 제작의 민주성과 대중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우리 사회에 굳게 자리잡은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제작환경에 균열을 낼 수 있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시도들은 삶과 밀착적 관계를 맺어 온 공예의 존재의미를 다시 성찰하게 하는 계기인 것은 확실하다.

픽트 스튜디오_Nacre soban_황동, 자개, 크리스탈 레진, 황동, 자개, 크리스탈 레진_17×25×25cm
픽트 스튜디오_Nacre silver series_black 01

마지막으로 서호미술관의 이번 기획전시 『실타래 풀어내다』가 지닌 미덕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전시는 관람자들에게 작업의 결과물만이 아니라 작업의 전 과정을 유추케 하고, 전시회라는 공론장에서 '우리 시대 공예-소반은 어떻게 삶의 방식을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가치와 의미의 표현물로서 보여주어야 하는가?'의 보편적 질문에 대해 관람자들도 답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작가'들을 선정하고, 숙의가 요구되는 지점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작업'들을 수평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차이의 공존이 세계의 이해를 넓히고, 삶의 열린 태도들을 응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전시였다. 전문적이되 전문성이데올로기를 벗어난, 공예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이어준 '아름답고 좋은' 기획이었다. ■ 임정희

Vol.20190614f | 실타래~풀어내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