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인생 Perfect Life

손선경展 / SONSEONKYUNG / 孫仙鏡 / animation   2019_0614 ▶︎ 2019_0714 / 월,공휴일 휴관

손선경_완벽한 인생 Perfect Life展_아웃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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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614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아웃사이트 out_sight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가길 12 GF (혜화동 71-17번지) www.out-sight.net

Perfect Life ● 반복은 늘 일어난다. 그것은 알아차리거나 말거나 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예컨대 한번 손뼉치기를 시작하면 영원히 멈출 수 없다. 다만 손뼉과 손뼉 사이의 더 긴 간극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삶의 첫 손뼉을 치기 전부터 누군가 손뼉을 쳐왔다. 물론 누가 제일 먼저 손뼉을 쳤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 공백에 관하여 혹자는 그것은 신이다! 너희들의 비천한 손이 그 신성한 행위를 모사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지만, 자체적으로 공중부양이 가능해진 요즘의 사람들은 동물원의 원숭이들에게서 더 많은 가능성을 얻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 원숭이들이 전 인간적 시대를 담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어떤 허상이며 물개에게 박수를 가르치고 그 반복의 전이에 더없이 즐거워하는 우리들(인간)의 어떤 욕망이다.)

손선경_Long Play1_4채널 연속 애니메이션 비디오_HD (1920×1080)_스테레오 사운드_2019 (사운드: 정상인)
손선경_Long Play1_4채널 연속 애니메이션 비디오_HD (1920×1080)_스테레오 사운드_2019 (사운드: 정상인)

그러나 반복은 잘 인지되지 않는다. 반복은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행복한 이들은 서른 살이 되도록 자신이 약 32850번 이상의 식사를 반복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니까 그런 이들은 매일 아침 식탁에 앉아 또 빌어먹을 아침 식사인가?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단 말이다! 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오히려 오 놀라운데! 그래서 오늘 아침은 뭐지? 라고 말하며 반복 그 자체보다는 매번의 반복이 가져오는 그 소소한 차이의 쾌락 혹은 쾌락의 차이에 몰두한다. 게다가 이 반복은 저 반복이 필요하고 저 반복은 그 반복이 필요하다. 아침은 밝았는데 해가 없거나 사람은 있는데 머리가 없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은 계속해서 연쇄돼야만 하며 끊임없이 현실을 직조해 나가야만 한다. 아무도 그 반복에 대해 의식하지 않도록 그리고 질문하지 않도록. 반복이라는 틀보다는 그 안에 담긴 내용만을 바라보도록.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반쯤 맞는 이야기만을 할 수 있도록. 아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건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 같은 거라고.("이보게 어린 친구 저건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야. 자넨 이 일과 관련해서 아무 것도 할 수 가 없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중 주인공이 떠올리는 어느 영화의 대사이다.)

손선경_Long Play2_2채널 연속 애니메이션 비디오_HD (1920×1080)_스테레오 사운드_2019 (사운드: 정상인)

손선경의 작업은 그 틀에 대한 집착적 의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 속에서 이 틀은 분석되고 심판되기보다는 응시되고 관조된다. 모든 것은 반복하고 있기에 그녀는 그저 그 반복을 덤덤히 관람하고 있는 것이다.작가는 2017년 개인전 I'm not involved, but I'm observing. 에서 선보인 물거품으로 표현한 파도가 반복되는 THE SCENERY : WATER, 2015 나 하루 동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반복시킨 WINDOW AND SHADOW, 2014 등의 작업을 통해 자연의 반복을 관조적으로 응시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물론 들뢰즈가 정확히 설명했듯이 반복이란 애초에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반복한다'는 역설을 가진 언어적 개념이다. 분명 첫 번째와 완벽히 동일한 두 번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 우리는 그 무겁고 거대한 형이상학적 도식 이외에 반복이라는 말을 대체할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곧 일상에서 반복이라는 개념을 폐기할 준비라도 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라면 어쨌든 우리는 그것이 설령 절름발이라도 지금 헤어질 수 없다. (어쩌면 언어적 불완전성은 다시 언어를 통해 지적될 뿐이다.) 사실 그 헐벗은 반복은 당장 발 디딘 이곳의 모든 것을 구성(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눈을 감거나 눈을 뜨거나. 망각하거나 의식하거나. 혹은 그것을 괴로워하거나 즐기거나. 그녀는 조금 무표정해 보이는 후자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 전시장의 한 방에서 인물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다. 작가는 원형의 시간과 원형의 물리적 궤적을 일종의 아름다운 반복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평온한 음악 속에서 반복은 원형을 그리며 스스로를 부드럽게 지탱한다. 아 인생이 끊임없이 이러한 평온의 연속이기를! 이러한 놀이의 연속이기를! (한편 그리하여 평생을 권태 속에서 살아가기를!) 하얀 영상 속의 표정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반복에 몸을 싣고 계속해서 놀이를 즐긴다. 이 디지털 화면 안의 반복들은 재현 장치의 하드웨어적 차이를 제외하면 조금도 수축하거나 팽창하지 않는 이진수 열의 반복이므로 들뢰즈가 말하는 헐벗은 반복의 형식(재현의 층위에서 벌어지는 표면적 반복) 중에서도 가장 헐벗은 반복을 수행한다. (게임 속에서 반복된 패턴으로 움직이는 배경 캐릭터들을 떠올려보자. 그 가상의 세계를 구성하는 기괴한 반복의 장치들을) 그러나 이 장치들은 외부와의 인과성이 대부분 절연된 하얀 공간 속에 인간의 유희(놀이)라는 망아의 형식을 반복에 중첩시킴으로써 정합의 반복이 가지는 시간적 연쇄성(자연스러움)을 회피(혹은 도피)하기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이 평화로운 장치들은 반복을 지속하고 스스로의 연쇄 성을 서서히 축소시켜 반복 그 자체의 틀(혹은 그로 인해 드러나는 묘한 공백감)을 슬며시 드러낸다.

손선경_Dogs Bark 연작_멀티 채널 연속 애니메이션 비디오_HD (1920×1080)_스테레오 사운드_2019 (소프트웨어: 이우춘)

다시 개가 짖는다. 인간은 여전히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심지어 그것이 언어라는 인간의 낱말로 표상가능한 사태인지도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왜 짖는지를 오직 유추해 볼 따름이다. 그런데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계속 짖는다. 어릴 적 뛰어다니던 골목에서도 짖고 있고 길거리의 애견 샵을 지날 때도 짖고 있다. 큰 개도 작은 개도 늙은 개도 어린 개도 짖고 있다. 공격 하려는 걸까? 아니면 그들도 두려운 걸까? (이렇게 우리는 그 어떤 날 것을 우리의 일반적 감정의 양태들로 번역하여 그것들을 스스로의 세계 안에 봉인하려 애쓰곤 한다) 이제 여기 검은 개가 짖고 있다.(검은 개는 작가가 과거 폴란드 교외에 있는 레지던시에 몇 달 동안 체류할 당시 건물 입구 길목에 있던 이웃집 담장에서 매번 그녀가 레지던시를 출입할 때마다 그녀를 보고 늘 짖곤 했던 개라고 한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몸짓으로 움직이며 짖는다. 나무들 사이로 수풀 사이로 뛰어다니며 짖는다. 그렇다. 불행하게도 이 세계에서는 아름다운 원형의 궤적도 아니며 이해되지 않는 이러한 '날 것의 짖음' 또한 반복되고 있다. 방을 점령한 이 낯선 장치들은 (실제로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영혼을 부여하기 위해 동물을 영혼 없는 기계 - 오토마타(자동기계)의 개념으로 추락시켰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늘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어떤 '날것' 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전략을 통해 관객을 다시 어떤 망아의 층위로(그것은 마치 비바람과 번개가 치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게 하는 그러한 망아와도 흡사하다) 거칠게 유혹한다. 그리고 반복의 시간적 연쇄 성은 이 기습적 반복에 의해 기이한 방식으로 찢어져 버린다. 이제 태고부터 짖어 오던 개들은 저 이진법의 기호에 봉인된 개들과 함께 짖어대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저 재생 장치의 플러그를 뽑을 수 있다면 저 영원한 짖음의 반복을 끝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저것은 화면 속의 일개 허상일 뿐이고 어차피 개들은 또 짖어댈 것이니 전원을 끄고 그저 데이터 속에서 영원히 짖어 대도록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 TV 속에서 매일 짖어대는(개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인간들을 아름다운 반복인 것 마냥 편안히 바라보며 살아 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아마 우리는 단지 견딜 수 있는 반복들만을 곁에 두고 살아가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진짜 헐벗은 반복들이 직조해내는 허상 속에서 반복을 영원히 망각하기를 기도하면서. ■ 김상진

손선경_Dogs Bark 연작_멀티 채널 연속 애니메이션 비디오_HD (1920×1080)_스테레오 사운드_2019 (소프트웨어: 이우춘)

Perfect Life ● Repetition happens all the time. It happens whether we notice it or not. So, for instance, once you start to clap, you will never stop clapping. There would only be a longer pause until the next one. However, it is not merely a one person conundrum. Someone must have been clapping before anyone has started her very first clap. Of course, nobody remembers who clapped the first clap ever. About this gap, some have claimed, "it is God, and your lowly hands are only imitating his holy action!". But people living in today's world, where self levitation is generally feasible, find more possibility from monkeys in zoos. (Nevertheless, it is but a fantasy based on the fact that monkeys underlie the pre-human stage of evolution, and it is merely our desire to train seals to clap and be pleased by the transferal of the repetition.) ● However, repetitions are not much well noticed. It is because repetitions look natural most of the times. Thus, average people aren't really conscious of the fact that they each had about 32850 meals in their lives until they have reached their thirty. So these people won't shout every morning facing their breakfast, 'god damn, another breakfast! I just can't stand anymore!'. They would rather say, 'what a surprise! By the way, what do we have this morning?' while focusing on the trivial differences and enjoying the pleasure of the differences that every repetition delivers. Moreover, this repetition relies on that repetition, and that repetition relies on another repetition. After all, it is not natural to have no sun when the morning comes and have no head where a person stands. Therefore repetition must be continuously concatenated, ceaselessly weaving the reality. So no on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repetitions, and no one should cast doubt. So everyone should stare at whatever is being repeated in the pattern of repetition, instead of paying attention to the frame itself. So everyone would talk vaguely true stories lethargically; for example, "oh, it's not a problem I can deal with, it's just a sound of a press rotating". ("That's the press, baby, the press, and there's nothing you can do about it" is a quote from a movie that Giambattista Bodoni, the protagonist of Umberto Eco's novel The Mysterious Flame of Queen Loana, recalls in the book.) ● Seon Kyung Son's works start from her obsessive awareness on that very frame. The frame in her work, however, is gazed and contemplated rather than being analysed and judged. Since everything is repeated, she views the repetitions somewhat placidly.(In her solo exhibition in 2017, I'm not involved, but I'm observing, Son employed a strategy of contemplating repetitions found in nature, such as looping foamed waves repeatedly coming in and out (THE SCENERY : WATER, 2015) or sunlight through a window and its shade repeatedly moving forward and backward throughout a day (WINDOW AND SHADOW, 2014).) Of course, as Deleuze has precisely defined, repetition is a contradictory linguistic concept implying starting over what cannot be started over. Clearly, there is no second iteration that is exactly identical to the first. But what else do we have to replace the word 'repetition' other than that heavy, humungous metaphysical diagram? Are we somehow ready to discard that idea of repetition from our daily lives? If not, then we can't break up with it, even if it were crippled. (Perhaps only language can point out a linguistic imperfection.) It is because, in fact, that naked repetition constitutes (rules) every single thing in this world on which we stand. So, we can rather close our eyes, or open our eyes: we forget, or we be aware. Otherwise, we may suffer from it, or take pleasure of it. It might be the latter in Son's case. ● In a room in the gallery, figures circle around in this and that movements. The artist once stated that circular time and spatial traces are examples of the most beautiful repetition. Cuddled by the peaceful music, the repetitions draw circles to gently sustain themselves. May life be a continuum of such tranquilities! May life be a continuum of such amusements! (And may life be lived in such tedium!) Expressionless people in the white screens enjoy the amusements of the ceaseless repetitions. These repetitions in the digital displays are the binary repetitions that are immune to contractions and expansions (except for the differences native to the hardware of the displays), thus they perform the most naked repetition of all forms of naked repetitions as defined by Deleuze (the superficial repetitions happening on the stratum of representation). (Think of those characters on backgrounds of video games, stuck in the repeated choreography of moves: the eccentric device of repetition constructing the virtual world.) However these devices, by overlapping forms of self-surrender (or play) on the structure of repetition in the white space disconnected from most of the causalities from the outside, attempt to evade (or flee) from temporal continuousness of the repetition of conformation (the naturalness). Accordingly, these peaceful devices unveil the pattern of repetition itself (or the vacuum revealed by it) by sustaining the repetitions while gradually curtailing their own continuousness. ● Again, dogs bark. Because we don't understand their language (we don't even know whether the bark is something to be represented in our vocabulary 'language'), we can only assume why they bark. Yet whether we assume or not, they keep on barking. They bark on the alley I used to play as a child, and they bark in a pet shop by a boulevard. Big dogs, small dogs, old dogs, young dogs, they all bark. Will they attack? Or are they also afraid? (We try as such to translate the rawness into the modes of our general emotions, to seal them within our own world.) Now here, the black dogs bark.(The black dogs refer to a dog that used to bark at her every time she walked by a neighboring fence near her place in a suburb in Poland where she stayed couple of months for a residency program.) They bark as they move in confused moves. They bark running among the trees and bushes. Yes. Unfortunately, in this world, these 'raw barks', which are neither beautiful in circular traces nor understandable, are also being repeated. These unfamiliar devices (truly, Descartes had animals fall to the idea of automata - the soulless machines, in an attempt to assign soul to human), with the strategy of repeating something raw (something never understood and thus always misunderstood), fiercely entice the viewers to a stratum of self-surrender (self-surrendering as in interminably gazing at a thunderstorm). And the temporal continuousness of repetition is ruptured in an eccentric way by this repetition of raids. ● Now, the dogs that have been barking from the origin is barking with those dogs sealed in these binary codes. If we can unplug the displays, does it mean we can terminate that eternal repetition of barks? Or, since they are mere mirages on the displays, are we just to unplug them, knowing that they should bark forever in the data? However, haven't we all been living peacefully gazing at the people bark (from dogs' point of views) in TVs every day; as if those barks are beautiful repetitions? Does it mean that we were trying to live only with the repetitions that we can stand? Praying to be oblivion of the repetitions in the illusion provided by those really naked repetitions? ■ Sangjin Kim

Translated by Jinho Lim (out_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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