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분명한 small but obvious

이상미展 / LEESANGMI / 李尙美 / printing   2019_0626 ▶︎ 2019_0701

이상미_Small but Obvious - Rosy nourishment_콜라그래프, 친꼴레_58×47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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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6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2층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본인은 2009년부터 '관계'라는 키워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오고 있다. 작품은 시각적으로 일상의 사물과 선, 그리고 텍스트로 압축되어 보여진다. 그리고 심층적으로 그 속에서 일어난 관계를 설명하고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의 '관계'에 대한 사유와 새로운 실험들을 선보인다. 초기 모노톤의 작품들은 형상보다 심층적인 선에 더욱 집중된다. 이것은 곧 선=관계를 말하며, 사물은 흔적 이미지로 표출된다. 최근작품들은 사물들이 부각되면서 다양한 컬러로 표현된다. 줄곧 표현해왔던 관계의 표상으로서의 선과 그 흔적, 그리고 텍스트는 개인의 사적인 기억, 감정으로 연장된다. 본인의 주관적인 인상과 감정은 내면의 색으로 표현된다. 특히 금박의 표현은 일상의 유약한 사물의 강한 내면의 힘, 그 안의 "반짝임"을 발견하고자 함이다. 사물의 외면과 내면의 기억, 그리고 낙서같은 흔적들은 눈과 감각을 통해 심층적인 확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 이상미

이상미_Small but Obvious - Greenish Nourishment_콜라그래프_141.2×107.8cm_2019
이상미_Small but Obvious-Golden nourishment #Ⅱ_콜라그래프_95.5×77.8cm_2019

누들과 노드, 비정형 정보 ● 이상미는 파리 유학시절 자신의 방 벽면을 선의 드로잉으로 채웠다. 꾸불꾸불한 선은 서로 겹치고 엉키며 이 벽면에서 저 벽면으로 뻗어나갔다. 그 선은 나중에 누들(noodle) 그림으로 구체화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누들과 누들이 얼기설기 엮이면서 사건성의 노드(결절 node)를 만들어 나가는 일, 이게 그녀의 초기 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 작가 자신이 정리한 연대기적 포토폴리오로 따르면 그녀의 작업은 1) 누들-관계(Noodles-Relationship Series 2009-2014) 2) 다중의 선-존재하는 것(Multiple Line-Being Series 2016-2018) 3) 작은 음식(영양분), 힘 염원(Nourishment-Energy, Wish Series 2019- ) 등의 3단계로 대별된다. ● 1)과 2)는 일견 별개의 작업으로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동일한 조형적 집요저음(執拗低音 basso ostinato)이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누들-관계' 시리즈에서 보여준 조형적 문법의 구조는 어휘와 대상만 바뀐 채 '다중의 선-존재하는 것' 시리즈에서도 유효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작은 음식, 힘, 염원' 시리즈는 1)과 2)에서 보여준 조형적 실험에서 감지한 미술의 근원적인 생명의 힘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개인의 삽화적 심경을 맡기는 작업들로 보인다. ● 이상미는 판화가다. 판화가의 관점으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대부분의 사물들은 판화적 세계 속에서 거주하고 생장한다. 동판이나 목판의 평평한 판이 담은 조형의 원형을 종이에게 충실하게 전달하듯, 하나의 생명은 자신의 정보를 유전자의 형태로 충실하게 후대에게 전해 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공산품 역시 생명체의 유전자에 비견되는 설계도를 구체화시킨 목업(mock up)과 금형에 의해 다량 생산된다. ● 회화의 경우 그 원형이 관념 속의 이데아로 존재하지만 판화의 경우 현실 속에서 판이라는 구체적이고 유형적인(tangible) 원형을 가진다. 판이 이데아의 역할을 맡는다고 해도 좋다. 그 판은 대개 평면적이다. 평평한 원형의 판에 담긴 정보를 종이에 전사하는 일을 반복하며 그 결과물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일, 이게 고전적인 판화의 임무였다.

이상미_Small but Obvious-Reddish nourishment #Ⅰ_콜라그래프, 친꼴레_141.2×107.8cm_2019
이상미_Close Relationship #Ⅰ_콜라그래프_104×75cm_2017

생명체의 유전자이든 공산품의 금형이든 판의 역할은 동일성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원형, 이데아로서의 판은 영원불변토록 손상이 가지 않는 단단한(solid) 것일수록 좋다. 이상미가 택한 판화의 기법은 콜라그래피가 주를 이룬다. 콜라그래피는 판화의 결과물의 동일성을 반복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매우 불리한 판화기법이다. 다량의 에디션을 낼 만큼 판이 견고하지가 않다. 한 판 한 판 찍을 때마다 색감의 동일성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 원형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판화의 고전적인 임무에서 보자면 불리한 판화기법인 콜라그래피의 이런 속성을 이상미는 역이용했다. 누들이라는 소재와 관계라는 주제를 택함으로써 기법의 불리함을 창작의 유리함으로 역전시키고 있다. 동일성을 무시하고 에디션마다 전혀 다른 색채가 과감하게 동원된다. 장 미셸 바스키아가 자주 구사했듯이 판화적 기법이 더해진 현대미술로서의 회화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전통적인 판화기법에서는 판을 이데아의 위치에 배치한 다음 솔리드한 원형A에 대한 충실한 유사성(resemblance)의 구현물인 a1, a2, a3 ,... 을 기대한다. 물론 a1, a2, a3는 에디션의 순서만 다를 뿐이지 그 형태는 같은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콜라그래피 같은 연약한 판에서는 대문자A가 굳건하게 존재하기 힘들다. 여기서는 유사성보다는 상사성(similitude)이 우선이다. A의 지위는 불안하다. A의 부재(不在) 속에서 a1, a2, a3 ....가 생성된다. 물론 a1, a2, a3 등은 엄격한 동일성을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다. ● 상사성의 판화적 세계로 들어가면 유사성의 판화적 세계에서 강조되던 원형의 충실한 재현으로서의 동어반복은 무의미해진다. 원인으로서의 솔리드한 판이 결과물인 리퀴드한 판화를 만든다는 식의, 정보의 일방적인 전달이나 배분이 아니라 결과물인 판화가 거꾸로 유약한(리퀴드한) 판의 변성을 가져와 다음 단계에서는 동일성이 살짝 변형된 예측불허의 피드백을 초래하는 판법을 생각해볼 수가 있다. 이 경우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정보의 교환으로 보아야 한다. 생명체에 비유하자면 다음 세대를 향한 유전자의 충실한 전달이 아니라 동일한 세대의 개체와 개체 사이의 정보의 교환 혹은 개체 내부의 세포와 세포 사이의 정보교환으로 볼 수도 있다. ● 유사성의 판화는 a1과 a2 사이의 시간은 무시된다. 시간을 초월한 대문자 A가 영원불멸하게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판화를 공간성의 미술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상미가 구사하는 상사성의 판화는 시간에 따른 피드백의 변화를 대담하게 수용하므로 오히려 시간성의 미술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 시간성의 판화는 판화의 규범인 동일성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첫 에디션과 마지막 에디션이 동일하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 동이반복(同異反復)의 세계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난측불허의 세계다. 이런 불안의 양상은 그의 작업 '다중의 선-존재하는 것' 시리즈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이상미_Rusty Relationship_콜라그래프, 프린트 스크린_76×64cm_2016
이상미_A two-sided Relatonship_콜라그래프_107.8×77.8cm_2017

이상미는 누들을 사람과 사람의 사이, 사람과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상징으로 보았다. 한 사람, 한 사물의 정체성을 사람과 사물이 지닌 정보의 종합으로 보는 최근의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관계를 이어준다는 것은 정보를 곧 이어준다는 의미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이다. 전통적인 판화에서는 정보가 판 위에 유형적인(tangible) 형태로 배치되었다. 최근에는 디지털 판화가 그러하듯 정보가 USB 속의 어딘가에 무형적으로(intangible) 선형의 질서로 배치된다. 정보의 전달과 평평한 판을 함께 떠올렸던 과거의 발상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맞게 선형적 질서의 정보로서의 판화적 세계를 누들로 은유한 발상은 참신하다. ● 그런데 누들은 정보를 정확하게 보관하고 전달하기에 너무나 물렁해 보인다. 관계를 맺고 나서 다시 관계 이전으로 환원하거나 복원하기에는 너무나 끈적거리는 물성이다. 불어터진 누들에 이르러서는 요령부득이다. 점착성의 정보교환은 정보의 변형과 혼란을 야기한다. 상처와 흉터가 생기는 변형도 발생한다. 잘 정리되었던 정보도 독해불능의 애매모호한 정보가 되어버린다. ● 그림이 정보의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판화는 회화에 비해 훨씬 더 정제된 정형정보(structured information)를 전달해왔다. 판이라는 간접적 장치에 의해 정보의 욕망이 절제되고 정보의 전달방식이 정형화되기 때문이다. 같은 판화라 할지라도 동판이나 목판처럼 솔리드한 원형으로서의 판이 비교적 잘 보장되는 판화기법과는 달리, 판의 원형이 변형되기 쉬운 콜라그래피 기법은 회화와 마찬가지로 비정형정보(unstructured information)의 전달에 더 적절해 보인다. 여기다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물성의 느낌을 가진 누들이 관계를 맺어주는 정보의 전달과 교환의 상징으로 등장하면 그 양상은 더욱 애매모호해진다. ● 애매모호함, 정체불명, 비정형정보 교환의 양상은 '다중의 선-존재하는 것' 시리즈로 연결된다. 이 판화 시리즈의 화면은 동영상을 방불케 한다. 과거, 현재 등 여러 개의 시점(時點)을 한데 모아 대상의 본질을 향한 집중력을 무산시킨다. 이 시리즈의 작품들은 매우 현상적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들에서 중력, 접점, 탠션, 밀도의 반복적인 변화가 등이 감지된다. 사물의 정체가 감지되고 포착되려는 순간, 사물은 자신의 모습을 흔들면서 다른 장소의 중력과 밀도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 개념화와 환원을 거친 사물은 시간이 정지한 관념의 공간에 재배치될 수가 있다. 정지영상은 동영상보다 더 개념적이고 환원적이다. 일상의 동영상에서 특장과 요체를 뽑은 것이 정지영상이기 때문이다. 그림이란 애매모호한 동영상을 명약관화한 정지영상의 형태로 표현하면서 개념과 환원을 동반하는 법인데, 이상미의 '다중의 선-존재하는 것'에서는 정지영상을 거꾸로 동영상으로 되돌림으로써 개념과 환원의 동반을 무력화시킨다. 공간 속의 재배치를 거부하고 장소와 시간 속에 사물을 불안하게 존속시키려 한다. ● 질서정연하고 솔리드한 정보의 선 대신에 축축하고 끈적한 리퀴드한 누들을 등장시키거나 콜라그래피와 같은 유약한 판화기법을 택함으로써 정형정보를 비정형정보로 돌려 미술의 본령을 불가해한 물성의 어떤 상태에 두려는 것과 같은 전략이다. 이상미의 조형적 집요저음은 불안한 사람과 사람, 불분명한 사물과 사물 사이를 낮고 깊은 데서 연결 시켜주고 있다. 불안과 불분명함을 즐기는 힘, 여기에 그녀의 조형적인 역량이 있다. ■ 황인

Vol.20190624b | 이상미展 / LEESANGMI / 李尙美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