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展 / KIMJIHEE / 金智姬 / painting   2019_0704 ▶︎ 2019_0725

김지희_Sealed smile_장지에 채색_100×10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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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홈페이지_www.kimjihee.net

초대일시 / 2019_0704_목요일_06:00pm

후원 / 오픈스페이스바_10AAA

관람시간 / 11:00am~05:00pm

오픈스페이스바 SpaceBA 서울 종로구 장사동 116-4번지 세운상가 가동 메이커스큐브 2층 서201, 10AAA Tel. 070.8822.2701 www.spaceba.org

골든에이지, 을지로 ● 을지로는 다만 오래된 삶의 현장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한가지 일을 파고든 장인들의 성실한 노역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세월의 흔적을 만들어 온 곳. 미대를 다니던 내게는 온갖 재료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스틸이나 아크릴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 볕이 뜨거웠던 날 온종일 금속 집 문을 두드렸던 적이 있었다. 조소과 친구들은 난해한 문제에 봉착하면 탱크도 만든다는 을지로 박사님을 만나러 간다 하곤 했다. ● 지난 겨울, 오랜만에 을지로를 찾았다. 작업을 위해 배회하던 을지로에 크고 작은 공간들이 조심스럽게 들어서기 시작한 이후, 한창 공간들이 입소문을 탈 무렵이었다. 후배가 알려 준 장소를 향해 여러 번 지도를 뒤적이다 찾은 곳은 간판 조차 없는 작은 파스타집이었다. 겉으로 드러나길 꺼려하는 듯 옛날 간판이 그대로 걸려있는 외관에 당황하며, 시간에 묵은 계단위에 늘어 선 사람들 뒤로 어색하게 줄을 섰다. ● 한참 뒤 앉은 공간에는 모던한 인테리어 대신 새 것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궁핍한 사물들이 시선을 채웠다. 이내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물들의 수런거림에 오랜 기억들이 기지개를 켰다. 자리를 옮긴 곳 역시 흔한 간판 하나 없는 불친절한 와인바였고,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하는 5층 높이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 비밀스러운 장소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숨겨진 공간을 찾는 데서 오는 작은 욕망의 충족인 것 일까. 유행처럼 과거가 소비되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전시로 연결시켜야 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날 이후였다. ● 그 겨울부터 나는 틈만 나면 소셜미디어에서 오르내리는 을지로의 카페와 레스토랑, 바를 어정거리며 수개월의 시간을 소요했다. 여러 차례 을지로 땅을 밟는 동안 매일 한 줌의 낱말과 한 줌의 오랜 공기를 채집해 드로잉북에 옮기고 사진으로 남기곤 했다. 시간을 그리워하며 그리는 것, 예술의 본령이 결국 그리움이라고 믿어왔듯 시간의 그리움이 깃든 사물을 그려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김지희_Sealed smile_장지에 채색_30×100cm_2019
김지희_Sealed smile_장지에 채색_50×50cm_2019
김지희_Sealed smile_장지에 채색_30×30cm_2019
김지희_Sealed smile_장지에 채색_30×30cm_2019

어느 가게의 투박한 조명 갓은 화려한 꽃무늬였다. 화려한 무늬 사이를 비집고 철 지난 시절들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던 날은 스물 두 살 여름이었다. 익숙했던 할머니 품을 찾아 다 커서도 할머니 방 이불속을 파고들어야만 잠이 잘 오곤 했을 만큼 할머니와의 사이는 각별했다. 할머니 이불에도 꼭 그런 화려한 꽃무늬가 있었다. 어릴 적 종종 할머니는 자기 전 산에서 호랑이를 잡은 동네 아재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들으면 졸음이 쏟아지곤 했다. 여전히 숨 가까이에서 나를 안아주던 이불의 따뜻한 품과 할머니의 체취가 잊혀 지지 않는다.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조금이라도 화려해 보이려는 서글픈 욕망의 투영이었는지 그 시절의 물건들은 참으로 화려한 패턴이 많았다. ● 한해 한해 목적을 잃고 줄어들던 할머님의 유품은 이제 작은 화장대 하나가 남았다. 젊은 날부터 수도 없이 들여다보셨을 거울을 전시공간으로 들고 가야겠다고 먼지를 닦았다. 이내 가슴에 내려앉는 눅진한 덩어리에 저릿한 절망감을 느꼈다. 그 따뜻했던 숨결이 소멸하였음이 새삼 손끝으로 전해졌다. 할머니의 작은 화장대처럼 지난 시간이 남긴 것이라고는 몇 가지 사물들 뿐임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다행이 그 사물들 덕분에 다시 그 시절의 온기를 더듬을 수 있었다. 나의 모체가 된 시간들을 을지로의 오랜 사물과 함께 차근차근 복원해 나가는 동안 잊고 있던 기억들과 조우했고, 사물이 열어 준 추억의 문으로 들어가 잠시 쉬곤 했다. 너무 오래되지도 않은 풍물들은 어렸을 때 함께 하던 것들이라 자연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일 때가 많았다. ● 어느 날은 오랜 친구를 노포가 가득한 을지로 골목으로 불러내기도 했다. 해가 길었던 날 한낮의 열기가 긴 이야기 속에 사위고, 맥주잔 위에 펼쳐진 휘황한 만국기가 가로등 빛에 반짝이는 동안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친구와 해묵은 시절을 주고받던 그 밤은 잔잔한 기쁨을 주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가장 행복감을 크게 느끼는 순간은 좋아하는 사람과 한끼 식사를 할 때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평범한 시절의 기쁜 일상은 자극적인 기억에 밀려 금세 사그라드는 것 일까. 어떠한 빛나는 순간보다 사실은 더 평안했을 이 저녁이 곧 기억에서 스러져버린 폐허가 된다면, 나는 그 기억으로 들어가 어떠한 사물을 꺼내어 나의 세계에 수집하게 될까.

김지희_Sealed smile_장지에 채색_30×30cm_2019
김지희_Sealed smile_을지로 타일에 페인팅_각 15×15cm_2019

을지로의 새로운 공간들은 비로소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사람들은 투박한 손길의 흔적과 불편함과 켜켜이 쌓인 시간의 더께를 소비한다. 가게마다 줄 지은 손님들이 증명하듯 익숙한 낡음은 그렇게 재조명 받는다. ● 이 전성기는 화려하기보다 따뜻하다. 시간에 풍화되고 남은 궁색한 사물들이지만 날긋하게 닳아버린 표면에서 어렴풋한 나의 시절을 발견할 수가 있다. 가장 포근한 잠을 잘 수 있었던 할머니 방 이불 속과 호랑이 이야기, 꽃무늬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의 가족 식사, 자개장농에서 새어 나오는 시간의 냄새, 최초의 사회를 겪기 이전 투명한 유희를 주던 크고 작은 경험들. ● 지금도 여전히 따뜻했던 사물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싶어 종이 위로 정돈되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을 흩어 놓는다. 특별하지 않은 오늘을 작은 별처럼 기억에서 명멸하게 해줄 무언가가 있다면. ● 주머니 속의 손난로처럼, 그 사물의 온기가 때때로 차가워지는 마음을 덥혀 줄 수 있는 피안이었으면 한다. 소중한 안식처였으면 한다. ■ 김지희

Vol.20190704b | 김지희展 / KIMJIHEE / 金智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