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유화원 別有花園

박민희展 / PARKMINHEE / 朴敏喜 / painting   2019_0705 ▶︎ 2019_0716 / 월요일 휴관

박민희_모란새_F.R.P에 채색_35×43×21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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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70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자유로운 정신세계로의 비상 ● 「별유화원(別有花園)」의 주제로 2019년 7월 금호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박민희의 전시에서는 그동안 꾸준하게 진행해 왔던 한지 콜라주 작업의 다층적인 궤적을 심층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이전의 평면 작업을 통해 심화해 온 작가적 성찰에 근거하여 평면적 표현이라는 과제를 공간으로 확장하여 새롭게 다루고 있음이 흥미롭게 주목된다. 투명하고 반투명한 한지와 천의 겹침, 그리고 민화적인 소재를 통해 개인적인 서사를 담아 관람자에게 조용하게 말을 거는 작업을 통해 박민희는 누적된 기억, 경험, 감각, 시간에 대한 성찰을 섬세하게 다루어왔다. 마치 양피지에 쓴 고문서(palimpsest)와 같이 여러 층으로 중첩된 기억과 시간의 단위들이 무의식의 저변에 깔려있으면서도 같은 시간대에 공존하는 상태를 연상시키는 화면 구성은 관람자로 하여금 의식과 기억의 심연을 되돌아보게 한다. ● 박민희가 자주 다루는 만개한 모란이나 연꽃, 거북이, 가을 낙엽과 같은 소재들은 얼핏보기에 주변의 소박한 것들로 화면 안에서 자율적인 조형 질서를 찾아가는 부단한 과정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형화되어 반복되는 듯한 소재들은 모순이 공존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암시한다. 세속의 부귀영화와 안위를 상징하는 만개한 꽃은 단명하는 화려함을 빗대어 인간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바니타스(Vanitas)의 전형적인 소재이다. 꽃잎과 같은 화사한 한지에 중첩되어 제시되는 거북이의 형상은 유한함에 대항하려는 영원에 대한 염원을 표상한다. 그리고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화면 안에 부유하는 상형문자와 같은 기록의 흔적, 가을 낙엽으로 암시되는 시간의 흐름 등은 갈등과 모순이 공존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민희는 상이한 욕망과 관심들이 충돌하는 삶의 한복판에서 현재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 안에서 안고 있는 상충하면서 공존하는 기억들을 콜라주라는 방식으로 분절적으로 제시해 왔다.

박민희_별유화원_한지에 혼합재료_155×200cm_2019
박민희_별유화원_한지에 혼합재료_170×120cm_2019

작가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번 전시를 통해 실재와 표상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모색을 시도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관심을 끄는 요소는 새이다. 확장된 규모의 화면을 지배할 정도로 생동감있게 그려진 로즈핀치(rosefinch)와 극도로 단순화하여 만들어진 새 조각의 대비가 눈에 띈다. 작가가 여러 종류의 새 중에서 핀치를 선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핀치는 경쾌하고 사교적이고 보기에도 아름다워 사랑받는 새이다. 작지만 거인처럼 힘차게 날아다니는 핀치는 활력이 넘치는 상서로운 새이며 앞으로 있을 좋은 일을 예견한다고 여겨진다. 핀치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는 사람의 마음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핀치는 자연의 요소 중 공기와 가깝다고 여겨져 정신성을 고취하는 상징성과 연관되며 영혼을 천상으로 이끈다고 여겨진다. ● 한지 콜라주 작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로즈핀치는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한 생동감을 보여주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시장에 함께 제시된 조각은 최소의 형태로 단순화된 형상으로 마치 알의 형태를 연상시킬 정도로 추상화되어 있다. 박민희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보여주는 새 조각은 화면 안에서 화려하게 우리의 감각적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핀치와 대조되는 대응체이다. 색이 배제된 단순한 형태의 조각은 새에 연계되어 온 상징적인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새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불변하는 영혼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공중을 나는 새는 새장에 비유되는 육체의 제약을 벗어나 영혼이 자유롭게 날아 천상으로 향하는 것을 상징한다.

박민희_별유화원_한지에 혼합재료_170×120cm_2019
박민희_파란새_한지에 혼합재료_82×89cm_2019

한편 골드핀치는 가시관을 쓰고 십자형을 당한 예수의 머리에서 뾰족한 부리로 예수의 이마에 박힌 가시를 제거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과 연계하여 중세와 르네상스 화가들은 예수의 고난을 담은 회화에서 골드핀치를 종종 다루기도 하였다. 이러한 종교적인 상징성과 더불어, 현대 추상 조각가인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가 극도로 단순한 형태로 추상화한 조각으로 통해 사물의 근원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을 되돌아보게 된다. 「공간의 새 Bird in Space」에서 보여지듯이 브랑쿠시의 날아오를 듯이 날렵하고 단순한 새의 형상은 새의 비상이라는 개념을 구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물질적인 세계와 그 안의 많은 한계들을 초월하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 박민희는 새 조각을 단지 화면에 구현된 핀치의 조각적 대응체로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새 조각은 그림자를 다루는 평면 작업과 함께 제시되며, 이것은 사실상 실재와 표상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새 조각이 그림자로 비쳐지는 상황은 로마의 역사학자 플리니(Pliny the elder)가 『자연사 Naturalis Historia』 에 기술한 회화의 시원을 되돌아보게 한다. 코린트 지역의 한 여인이 자신을 떠나갈 연인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등불에 비쳐 벽에 비친 그 청년의 윤곽선을 그린 것이 회화의 시작으로 기술되었다. 현존-부재-재현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된 구조, 혹은 욕망의 대상-상실-대체라는 정신분석학적인 가장이라는 맥락에서 그림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벽에 그린 드로잉은 사랑과 상실의 경험, 즉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가 이 교차하는 점에서 만들어졌다. 에로스는 불가피하게 타나토스를 직면해야 한다는 현실의 원칙이 회화를 탄생시킨 배경이다.

박민희_별유화원_한지에 혼합재료_80×60cm_2019
박민희_별유화원_한지에 혼합재료_170×105cm_2019
박민희_알수없음님_한지에 혼합재료_144×74cm_2019

이미지는 죽음의 현존(특히 타자의 죽음)과 협상해야 하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하였다. 이미지는 부재하는 것을 대체하고 기억과 연관됨으로써, 완전히 망각되는 것을 극복하고 상실된 것이 현재에 존속하도록 한다. 이렇게 이미지는 욕망, 상실, 기억이라는 주체에 대한 세 가지 측면과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다. 부재하는 것을 나와 함께 현존하게 하려는 욕망에 기인하여 회화의 재현이 시작되었다. 다른 시간대 혹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과 함께 있음을 확인하려는, 혹은 공존의 환영이라도 잡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술의 역사 안에서 지속되어 왔다. ●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라는 인간이 살지 않는 현세와 구별되는 이상향을 칭하는 '별유'에 대해 성찰하는 이번 박민희의 전시는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동시대의 모순과 충돌을 경험하고 직시하면서 한편으로는 개념적, 경험적, 실질적인 갈등 너머의 세계를 추구하는 부단한 정신적, 미학적인 노정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로즈핀치는 이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는 전령으로 제시된 듯하다. 듣는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핀치는 한편으로는 매우 예민하여 속박이 되거나 주변의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면 견디지 못하는 치명적으로 연약한 존재이다. 핀치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마음껏 노래하는 곳, 이 곳은 아마도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파괴된 곳이 아닌 육체적 한계와 속박을 벗어나 정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서로 다른 것들이 모순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자유를 향한 예민함이 억압되지 않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계를 모색해 가는 작가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 김희영

Vol.20190705f | 박민희展 / PARKMINHEE / 朴敏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