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말들 The Unnamable

2019 금호창작스튜디오 14기 입주작가展   2019_0705 ▶︎ 2019_071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0705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무영_김영진_김우진_서윤아 송수민_이민경_장은경_정덕현_최모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2,3층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많은 이름이 있다. 사회에서 우리는 하나의 이름이 아닌 여러 이름을 부여받는다. 각각의 이름은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사회 내에서 위치 혹은 역할에 대한 하나의 정의가 되기도 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고 항상 실행해야 하는 상태에 놓이게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름에 알맞은 역할을 찾아 헤매며, 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애쓴다. ●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 (藤井たけし, Takeshi Fujii)는 2018년에 발표한 칼럼집 『무명의 말들』의 한 챕터인 「무명으로 돌아가기」에서 "주어진 이름을 반납하고 무명이 되기를" 권한다. 그는 1959년 일본 규슈 북부의 한 탄광 지대에서 가부장제에 반기를 들었던 저항적 움직임을 사례로 제시하며, 이들이 주장했던 무명의 상태에 주목한다. 그들에 의하면 "주어진 이름을 반납하고 무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짓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름은 나를 소개하거나 설명할 때 가장 편리한 도구이지만,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어느 누구나 혹은 사회 전체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 명명되는 이름은 개별의 다양성을 제거하고 서류철의 색인처럼 우리를 재단한다. 그러므로 이름을 거부한다는 것은 시대가 발하는 빛에 눈멀지 않고 빛 가운데에 자리 잡은 어둠을 바라보는 행위이다. ● 후지이 다케시가 '이름 없는' 상태에서 전복의 가능성을 찾았다면,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는 부조리한 실존의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로써 '이름'을 지웠다. 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베케트는 주인공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즉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자로 묘사한다. 무한히 분열된 '나'라는 존재와 그 존재를 묘사하는 베케트의 해체적 글쓰기는 불완전한 오류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동적이면서 재생산 가능한 잠재태를 제시한다. 베케트는 무명의 상태에서 실존의 한계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듯하다. 규정되고 구조화된 현상에 균열을 가하는 '이름 없는' 상태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예술과 닮아있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예술 작품은 이름 붙여진 현재의 '나'에서 벗어나 아직 규명되지 않은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하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 금호창작스튜디오 14기 입주작가전 『이름 없는 말들 The Unnamable』은 사회에서 만연하게 나타나는 부조리나 맹목적으로 일반화되는 현상에 대한 인식의 계기를 제공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한 형식적 실험과 탐색을 지속해온 아홉 명의 입주작가, 김무영, 김영진, 김우진, 송수민, 서윤아, 이민경, 장은경, 정덕현, 최모민은 예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익숙함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이념의 문제, 현대 사회의 이미지 소비 방식, 가시적 세계 내 본질 탐구 등 시각 언어로 재생산된 그들의 작품은 너무나 당연해서 포착되지 않았던 기존의 경계를 뒤흔든다. 그리고 이 경계에서 벗어난 개인을 상상하게 한다. '이름 없는' 상태를 호명하는 아홉 작가의 창작물은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언급처럼 "우리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불타오르는 인식"을 제공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보증해준다." 전시 기간에 열리는 「비평워크숍」은 입주작가들과 비평가를 매칭하여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들고자 마련되었다. 전공자 및 관심 있는 관람자 모두 참여 가능하며, 작품에서만 조우하였던 작가들의 고민과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전시와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와 비평가 그리고 관람자들이 함께 공감하고 사유함으로써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름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본다. ■ 한누리

김무영_유튜브 스타의 관점에서_단채널 영상, 설치_00:40:00_2019

김무영 작가는 사회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그 현상을 둘러싼 이념의 문제들을 영상과 설치를 통해 다룬다. 「유튜브 스타의 관점에서」(2019) 작품은 반공주의라는 이념의 영역을 표상하는 매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사람들에게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각인되어 있는 반공주의의 개념은 표상들에 의해 물질적으로 구체화된다. 물질세계 내 구체화된 표상들은 이념으로 통일되어 있던 세계에 균열을 가한다. 김무영은 여기에 주목하여 이념과 물질세계 사이에서 매개적 역할을 하는 요소들, 과거의 프로파간다 영상들과 반공주의 유튜버의 삶을 추적한다. 대상을 따라가는 긴 호흡의 기교 없는 시선은 관람자로 하여금 의식하지 못하고 체화되었던 이념을 포착하게 한다.

김영진_인공 파편_유리에 프린트_가변크기_2019

김영진 작가는 경험을 통해 인식되는 공간을 언어로 구조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실제 머물렀던 건물의 구조를 드로잉과 글로 기록한다. 언어 혹은 선과 면으로 재해석된 공간은 각각의 요소들로 파편화되면서 본래의 물리적 부피감과 가시적 이미지를 잃게 된다. 우리의 몸을 둘러쌌던 3차원의 공간이 손으로 넘겨볼 수 있는 2차원의 평면으로 변환되면서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행위 혹은 상상을 유도하는 작업을 통해 김영진은 머릿속에서 구축될 수 있는 '정신의 공간'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설치 작품 「인공 파편」(2019)은 공간을 구성하는 기본 구조물들을 이용한 작업이다. 벽과 천장, 바닥, 기둥 등을 지시하는 유리 위에 프린트된 드로잉과 텍스트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겹쳐지면서 한정적 범위에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을 구축한다.

김우진_무너지는 기호들_2채널 영상, 설치_00:05:20_2018

프로젝트 기반으로 작업하는 김우진 작가는 리서치와 인터뷰를 통해 우리 주변에 가려지고 잠재되었던 이야기들을 끌어낸다. 현재 진행 중인 「메모리즈」 프로젝트는 언어를 보이지 않는 틀을 구축하는 하나의 장치로 보고,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언어에 대한 기억들을 수집한 작업이다. 다양한 언어가 공존했던 아시아는 두 번의 세계 대전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언어들이 사라졌다. 「무너지는 기호들」(2018)은 전쟁 이전 대만의 주 언어였던 민난어와 객가어, 그리고 홍콩에서 사용되는 광둥어가 점차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변해가는 과정에 주목하고 이러한 현상 이면에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통제들과 개인의 기억을 표상한다. 언제 쓰러질지 모른 채 해체와 구축을 반복하는 젠가와 자막 없이 흘러나오는 민난어∙객가어 민요와 홍콩 영화 노래는 언어와 함께 사라져가는 삶의 기억, 지혜 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서윤아_남자의 초상_리넨에 오일바_ 72.7×60.6cm_2019 서윤아_길을 찾는 사람_리넨에 오일바_162.2×130.3cm_2019

서윤아 작가는 실재와 실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며, 이를 회화적 언어로 표현해왔다. 작가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무엇, 즉 어떤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 대상을 감싸고 있는 상념들을 포착하여 이를 시각화하는데 집중한다. 눈앞에서 직면하게 되는 수많은 실체들 사이로 실재하는 감정, 사유, 분위기 등과 같은 현상은 회화 속 대상들의 형체를 빌어 관람자에게 다시 제시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은 사물을 주로 대상화한 이전 작품과 달리 인물의 모습을 담았다. 서윤아는 사고의 표면에서 가져왔던 오브제와 상징, 그리고 단서들이 결국 자신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파생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과 주변 인물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같은 세대로서 삶의 굴곡을 함께 살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보이는 세계의 한계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본질에 더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송수민_하얀자국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0×140cm×6_2019

송수민 작가는 인터넷에서 목격한 사건 및 일상의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저장한다. 사건이 일어났던 혹은 대상을 바라보았던 시점으로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고 작가는 이 이미지들을 다시 꺼내어 처음 발견했을 때 느낌과 감정의 변화를 해체와 조작 그리고 재편집을 통해 회화에 담아낸다. 특정 시점과 맥락에서 벗어난 이미지는 본래의 이야기가 휘발되면서 하나의 조형적 언어로서 그의 회화에 묶인다. 출품작 「하얀자국」과 「Empty Flower」 시리즈는 다른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는 작품들이다. 온천, 군사훈련, 불이 난 자리 등에 나타난 연기와 봄날의 꽃은 그것이 함의하는 내용이나 분위기는 상반되지만 송수민의 회화 속에선 하얗고 '뭉게뭉게'한 이미지로 연결된다. 유추 가능하지만 명확하게 파악될 수 없는 풍경을 통해 작가는 우리 세대들이 미디어에서 쉽게 소비하고 버리는 이미지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민경_이름 없는 말들-2019 금호창작스튜디오 14기 입주작가展_금호미술관_2019

이민경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하고 평범한 사물과 공간이 지닌 표피에 의문을 던지며, 그 이면에 대한 우리의 인지를 작동시킨다. 작가는 가구의 일부분이나, 먹고 남은 과일 껍질, 낡은 수도 호스, 녹슨 밸브, 폐기된 스티로폼 박스 등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물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의 기본적 성질을 해체하면서 다른 촉각적 상태로 변환시킨다. 이렇게 탈구조화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낯선 감각을 입게 되는 조형물들은 고정된 기능과 의미에서 벗어나 다르게 인식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사물의 표면에 쌓인 시간과 흔적들을 단서 삼아, 사물에 반영된 개인적 혹은 사회적 가치와 역사성을 드러내어 미시적 이야기가 아닌 공통의 감각과 그에 대한 사유를 끌어낸다. 이처럼 관습적인 이해 방식에서 벗어나 다르게 인식되는 이민경의 작품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해석을 확장시킨다.

장은경_달과 땡땡이_책 2권, 스티커, 아크릴 프린팅_가변크기_2019

장은경 작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혹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가시화하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언어나 자연 형태와 같은 지시적 표현들을 빌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흔적들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한다. 출품작 「달과 땡땡이」(2019)는 자연물인 달과 그 달을 복제한 인공물인 땡땡이의 관계를 그려낸 설치 작품이다. 책에 담긴 땡땡이는 페이지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무한히 증식된다. 이러한 땡땡이는 실제로 변화와 이동을 반복하지만 언제나 존재하는 달의 절대적 위치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복적인 이미지를 통해 이 확실한 지점은 본래의 의미에서 미끄러져 예술의 언어로 포섭된다. 서로 다른 완전함으로 서로를 지시하는 달과 땡땡이를 통해 작가는 자연과 인공의 언어 그리고 예술과의 관계를 살펴본다. 이처럼 장은경의 작품은 자신이 체감하는 삶을 어떻게 예술로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그의 진지한 고민과 조형적 실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정덕현_A씨_종이에 연필, 먹, 주묵, 호분, 아크릴채색, 겔 미디엄_91×91cm_2019 정덕현_데자뷔_종이에 연필, 먹, 호분, 아크릴채색, 겔 미디엄_91×91cm_2018 정덕현_차례_종이에 연필, 먹, 호분, 아크릴채색, 겔 미디엄_91×91cm_2019

정덕현 작가는 회화 속에 사물들이 맺는 여러 관계를 통해 우리 세대가 겪는 고민과 오늘날의 단상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개인적으로 마주했거나 사회적 사건에 얽힌 사물들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캔버스 화면에 등장시킨다. 각각의 용도나 기능은 서로 다르지만 한 화면 안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사물들은 사회와 현상에 대한 작가 특유의 시선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스틸 라이프」 시리즈는 작가가 자신의 스튜디오 혹은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사물들을 소재로 삼았다. 사진이 아닌 실제 사물을 직접 관찰하며 그려내는 정덕현의 정물화는 사실적인 묘사와 상상력이 더해져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관람자에 따라 여러 가지 갈래의 이야기로 파생될 수 있는 정덕현의 작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보편적으로 인지했던 현실에 잔잔한 파장을 가져온다.

최모민_새벽 물주기_캔버스에 유채_193×259cm_2018 최모민_생각하며 걷기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9

최모민 작가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 어딘가에 위치한 풍경을 그린다. 허공에 떠있는 손목들과 수상한 얼굴로 보도에 물을 주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등장하는 작품 「새벽 물주기」(2018), 무성한 풀숲으로 향해가는 한 인물과 그의 머리 부근에 맴도는 작은 크기의 동일한 형상을 그려낸 「생각하며 걷기」(2019) 등 설명하기 힘든 부자연스러운 상황들이 그의 회화에서 연출된다. 이처럼 「식물 극장」 시리즈 속 장면들은 현실에 얽매이는 상황인지 아니면 일탈을 모색하는지, 불길한 조짐인지 미약한 구원에 대한 예감인지 분명하지 않다. 풍경을 무대 삼아 인물이 펼치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는 듯 모호하고 흐릿하지만 동시에 일인극과 같은 희극적 행위로 보이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식물은 선연한 모습을 드러내며 회화의 전경으로 부각된다. 회화적 표현 아래 제거된 이야기의 개연성은 서사의 틀을 벗겨내고 일상적 풍경 속 존재들의 생명력을 끌어낸다. ■ 금호미술관

비평워크숍 - 일정: 2019년 7월 13일(토요일) 오후 3시 ~ 5시 30분 - 장소: 금호미술관 3층 세미나실 - 진행: 작가 3명의 프레젠테이션 후 비평가의 코멘트, 관람자 질의응답 - 참여비평가: 이사빈(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작가_김영진(설치), 김우진(영상, 설치), 정덕현(회화) 임진호(아웃사이트 큐레이터) / 작가_서윤아(회화), 이민경(설치), 최모민(회화) 황신원(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 작가_김무영(영상, 설치), 송수민(회화), 장은경(설치) - 참여방법: 전문가, 미술 전공자 및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 누구나 참여 가능 무료 (당일 선착순 40명 제한)

Vol.20190705i | 이름없는 말들 The Unnamable-2019 금호창작스튜디오 14기 입주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