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꼬, 어에

김일지展 / KIMILCHI / 金日知 / painting.installation   2019_0716 ▶︎ 2019_0726 / 주말,공휴일 휴관

김일지_푸르른 가창창작스튜디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4.5×227.3cm, 가변설치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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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716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가창창작스튜디오_스페이스 가창 SPACE GACHANG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795번지 Tel. +82.53.767.6727 www.gcartstudio.or.kr

'무엇을' '어떻게'의 경상도 방언인 '뭐꼬, 어에'에서는 가창창작스튜디오에서 꿰어낸 작가의 소리를 회화, 조형, 설치로 풀어나갈 것이다. 그 중심에는 떨어져 나간 간판에서 찾은 이응이 있다. 도심에서 떨어진 가창창작스튜디오에서의 생활은 마치 이 떨어져 나간 '이응'과도 같았다. 이 '이응'은 본래 자리에서 탈락했지만, 오히려 단일한 객체로서 자신을 증명하게 된다. 문명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진동으로부터 멀어진 가창에서는 작은 소리에도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 시간은 작가로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이었다. '뭐꼬 어에'에서는 작업의 전개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펼쳐 나갈지 집중해보는 자리이자, 맥락에서 탈락한 것에는 '무엇'이 있으며 또 그것들이 '어떻게' 다시금 자신의 소리와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지 탐구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 김일지

김일지_드리운 스페이스 가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4×141cm, 가변설치_2019
김일지_탈락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10×10cm, 가변설치_2019

ㅜ리는 ㅓ디서 ㅘ서 ㅓ디로 가는가? ● 오늘날 '노마드(Nomad)', '노마디즘(Nomadism)'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유목민, 유목생활이라는 직접적인 의미를 넘어, 현대를 비추는 지표로 작동한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1943~)는 『호모 노마드 : 유목하는 인간』에서 노마드에 대해 '하나의 가치관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와 도전, 모험을 하며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유형을 자발적 유목민이라 칭한다면, 반대로 비자발적 유목민들도 존재한다. 비자발적 유목민이란 어쩔 수 없이 유목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계약기간 만료에 의한 이사나 진학 또는 정년퇴직 등의 이유로 하나의 거처에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을 말한다. 현대인들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다양한 형태로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

김일지_가창창작10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193.9×130.3cm, 가변설치_2019
김일지_뭐꼬, 어에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9_부분

김일지 작가는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유목생활 방식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작가의 이력을 보면 너무나 다양한 곳을 유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한국으로의 귀국 이전에 미국, 유럽, 오세아니아 그리고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학업과 작업을 하였고 이후에는 서울, 경기도 수원, 고양, 화성, 전라북도 부안군 등 다양한 곳에서 작업 및 전시를 이어왔다. 2019년 현재는 대구에 소재한 가창 창작스튜디오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일주일의 절반은 대구에서, 절반은 서울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작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목적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삶 속에서 스스로가 속했던 장소와 집단을 배회하며 끊임없이 창조적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 작가의 이러한 생활방식은 한글 '이응'이라는 요소를 통해 작업으로 연결된다. 최초에는 '○'과 같은 단순한 원형의 형태를 모색하는 것으로 시작된 작업은 최근 한글 '이응'의 개념적이고 은유적인 속성을 토대로 작업이 이뤄진다. 이러한 소재 선택의 이유는 작가의 끊임없는 유목적 생활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속했던 집단에서는 항상 이방인의 위치로 분류되었고, 그 속에서 '이응'은 작가의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 '이응'은 스스로를 구축하여 존재하기도 하고 모음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하며 받침으로써 작동하기도 한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쓸모는 어떤 집단이(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작가에게 요구하는 위치였을 것이다. 또한 잠시 머물다가 떠나거나 혹은 떠나게 되는 상황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작가의 생활방식은 작업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번 스페이스 가창에서의 전시 『뭐꼬, 어에』는 작가의 유목적 작업방식(생활방식)의 흔적들이다.

김일지_뭐꼬, 어에(튜브단추)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9
김일지_뭐꼬, 어에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9

전시장의 벽면에 위치하는 회화 작업은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다양한 문화 및 집단과의 만남, 헤어짐, 그리고 작업할 때의 즐거움들이 작가의 캔버스에서 흔적으로써 남겨져 있다. 그 이미지는 '이응', '패턴', '비정형' 등 작가의 감정이나 작업 공간 등 다양한 요소의 차이로 달라진다. 마스킹 플루이드(Masking Fluid) 기법을 이용하여 칠하고 뜯어내 사라진 흔적을 그대로 두거나 그 위에 다른 흔적이 지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로 캔버스에 보이는 붓의 움직임들은 공간과 공간을 이웃시키기도 하고 단절시키기도 한다. 또한 두 개의 작은 의자 위에 캔버스를 올려놓는 것으로 디스플레이가 마무리되어 있는 모습은 작가가 작업을 하는 과정 그대로를 보여준다. 이처럼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디스플레이 방식은 작가의 작업(유목적 생활방식)이 아직은 완성된 것이 아닌 진행 중임을 암시한다. ● 회화가 있는 벽에서 한 걸음 나오면 '고추노리개'와 '튜브단추'를 이용한 설치작업이 있다. 일반적으로 '고추노리개'는 다산과 다복을 상징하는 혼수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고추노리개' 작업의 재료로 불법 아파트 분양 광고 현수막을 사용한다. 또한 단춧구멍을 이용하여 찢고 뒤틀고 왜곡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의 관례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 '튜브단추'는 일렬로 천정에서 바닥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다. 단추는 장식적인 심미적 역할도 하지만 면과 면을 이어주는 기능적 역할도 한다. '튜브단추'를 제작하기 위해 기관 및 관련 업체와의 협업 그리고 공공 미술적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는 일반 대중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도를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른 전시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두 작업의 설치가 한 공간에 공존한다. '고추노리개'와 '튜브단추'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을 상징한다. 고추노리개는 갈등을, 튜브단추는 이웃함을 뜻한다. 작가는 이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한 공간에 설치함으로써 동전의 양면과 같던 삶의 경험들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김일지_Rotten Ieu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19

설치 작업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응'이다. '이응'을 닮은 '원형'이 아닌, '이응'으로써 사용되었던 '이응'이다. 작가는 간판에서 떨어진, 게다가 불에 타다 남은 '이응'을 가창 창작 스튜디오 주변을 산책하다 발견하였고 전시장으로 가져왔다. 원래의 글이 어떤 글이었는지, 자음이었는지, 받침이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 '떨어진 이응'은 이번 전시에서 코어의 역할을 한다. '떨어진 이응'은 기표나 기의로 작동하던 기존의 맥락에서 떨어져 다른 맥락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회화작업', '튜브단추', '고추노리개'는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떨어진 이응'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즉 작가의 생활방식이 다양한 위치에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하듯이 '떨어진 이응'은 하나의 맥락에서 다른 맥락으로의 유목을 통해 작업 간의 유기적 관계를 구축하며, 스스로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실험한다. ● 우리는 사회적 관계 혹은 상황과 범주들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며 자신의 존재 방식을 규정한다. 그 위치는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배회한다. 작가도, 작업의 '이응'도,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기를 거부한다. 이처럼 위치하는 곳 또는 위치되어지는 곳 그리고 위치할 곳은 공간, 장소, 계급, 인종 그리고 성별 등의 경계를 넘어 제도적 영역과 사회문화적 담론의 장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거대 담론 속에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번 전시 『뭐꼬, 어에』에서 작가는 어떠한 위치를 탐색하는 듯하다. 경상도의 방언으로 '뭐꼬'는 '무엇'을, '어에'는 '어떻게'를 의미한다. 작가는 삶의 방식을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예술을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 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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