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Hello! Contemporary Art-기억공작소 10년으로부터 자연설계

김성수_이상헌_신강호_김현준_권효정展   2019_0719 ▶︎ 2019_0810

작가와의 만남 / 2019_0719_금요일_06:00pm

Spot1. 야외원림_권효정 분수 외 / 1층 야외광장(월요일 관람 가능) Spot2. 실내원림_이상헌 / 2층 3전시실 Spot3. 실내원림_신강호 / 3층 2전시실 Spot4. 실내원림_김성수와 김현준 / 3층 1전시실 기록전시. 기억공작소10년-미술의태도 / 2층 로비벽면

전시연계 예술가처럼 생각하기 워크숍 2019_0723 ▶︎ 2019_0808 / 월요일 없음 전화접수 중 Tel. +82.(0)53.661.3526 참가비 / 1회 1만원(가족할인 1회7천원) 내 모습 그대로 나무 조각 / 10:30am~12:00pm 도심에 들어온 힐링 분수 / 01:30pm~03:00pm

이 전시는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 2018 문예회관 전시 기획프로그램 사업의 일환으로 문예진흥기금에서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 받았습니다.

기획 / 봉산문화회관 주최 / 봉산문화회관_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주관 / 봉산문화회관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도슨트프로그램 및 단체관람을 진행하며, 사전접수 받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에는 실내전시 없음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1층 야외광장, 2층 3전시실,로비, 3층 1,2전시실 Tel. +82.(0)53.661.3500 www.bongsanart.org

#동시대미술, 기억공작소, 자연설계, 분수, 나무조각, 물과 나무 ● 'Hello! Contemporary Art'는 2014년부터 동시대성의 참조와 이해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개별적 사실들의 시각적 축적을 선보이면서 세계 인식을 상호 공감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해온 봉산문화회관 기획전시의 이름이다. ● 올해 2019년 전시는 기존의 형식과 내용을 넘어서서 미술의 새로운 가치와 역할을 실험하는 동시대 미술가의 상상과 독자적 설계를 기억하며 이제 10년을 맞는 '기억공작소' 전시의 역사성과 그 태도를 공유하면서 동시대미술의 '원림園林'을 그리려는 '자연설계自然設計'의 호출 장치이다. 이 장치는 1977년5월1일, '제3회 Contemporary Art Festival DAEGU' 전시의 야외 설치행위가 있었던 '낙동강 강정 백사장'에서부터 현재의 이곳에 이르는 대구의 '실험미술Contemporary Art'이 '자연'과 인간의 '예술 행위'가 만나는 기억에 연대하여 야외 공간 Spot1과 실내 공간 Spot2~4, 로비 등의 경계를 드나들며 대중을 향한 예술 소통 인터페이스의 확장과 우리시대 예술의 공감을 다양하게 실험하려는 태도이다. ● 이 전시를 지탱하는 권효정의 '분수'와 김성수, 이상헌, 신강호, 김현준의 '나무조각'에 투영된 '자연설계'의 태도로서 미술 '원림'은 2층 로비벽면에서 선보이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기억공작소 53개 전시의 이미지 기록들을 떠올리면서, 1층 'Spot1.야외원림'에서 권효정과 조각가 4명의 작업을 시작으로, 2층 'Spot2.실내원림'의 이상헌, 3층 'Spot3.실내원림'의 신강호, 'Spot4.실내원림'의 김성수와 김현준 전시로 이어지며, 인위적인 조경보다는 자연 상태의 균형과 변화, 순리의 질서에 기대어 배치하고 머무르며 감상하는 다양한 경험의 확장 공간으로서 '명원名園'에 관한 것이다.

2019 Hello! Contemporary Art-기억공작소 10년으로부터 자연설계展_봉산문화회관 1층 야외광장_2019

Spot1. 야외원림 권효정의 '분수' 설계와 '나무조각' 한여름, 대구 도심의 야외 광장 중심부에 설치한 권효정의 분수 'Fountain of life; WaterPark'는 삶 속의 예술과 도시생활에서 잊고 지냈던 자연의 초월성을 기억하도록 설계한다. 층층이 쌓은 스텐그릇의 꼭대기와 샤워헤드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플라스틱 생활용품과 드럼통, 저울, 비닐 공 사이로 떨어져 흐르면서 경쾌하고 시원한 시청각적 감성을 자극하고, 자연과는 무관한 공산품 오브제에도 불구하고 물의 생명성과 에너지의 순환에 관한 '자연설계'를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작가는 자연을 대체하는 인공 분수를 영위營爲하며 위안을 삼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물의 본성을 확인하고, 자연에 반하는 인간 행위들에 대해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는 발언을 담아낸다. 그리고 '분수'의 주변에는 자연 원림의 풍경인 듯, 실내원림으로 진입을 연결하는 장치로서 건물 입구에 매단 김성수의 '꽃과 새', 춤추는 사람을 조각한 이상헌의 'dance', 굵은 나뭇가지로 만든 인체를 연결한 신강호의 'Link-나무정령', 거대한 나무를 무릎 꿇은 인체로 조각한 김현준의 '나를 너라고 부르는 너는 누구니?' 등이 연대하고 있다. 이 야외 '분수'와 '나무조각'은 주변의 거리와 건물, 자동차, 행인, 날씨, 시간 등 상황과 환경 전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거대한 작업이며, 주변 여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있는 자연설계의 미술 원림이다.

Spot2. 실내원림 이상헌의 설계 이상헌의 자연설계는 전시실을 가득 채운 나무의 짙은 향으로부터 감지된다. 입구에서부터 가슴에 못을 박은 채 둔중한 대형 망치를 끌고 있는 '못을 박다', 2점의 평면 드로잉, 거꾸로 된 팔 다리와 함께 길게 늘어진 넥타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실감나게 살려주는 '떨어지다-두 번째', 가위에 눌리는 몸부림을 표현한 '가위눌림', 억압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는 'Flying man' 조각 등이 전시되어있다. 6.75m 높이 천장의 3전시실에 순차적인 서사를 담은 연극 무대를 연출하듯이 슬픔이나 절망, 불안, 희망, 꿈 등 순수한 인간의 정서들을 시각화하려는 이상헌의 나무조각들은 나무에 투영된 작가 자신의 불안한 현실적 삶을 담고 있다. 나무와 일체가 되면서,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시간 속에서 잊고 있던 자신을 직면하게 된 작가는 자신의 삶과 예술 사이의 괴리 속에서 경험한 심리적인 정서들을 드러내고 나무의 결을 살리거나 전기 톱날 조각의 거친 자국이 느껴지도록 조각한다. 나무를 깎는 작가의 조각행위와 나무의 질감, 향에서 거대한 자연의 설계와 치유에너지를 엿볼 수 있다.

Spot3. 실내원림 신강호의 설계 1층 'Spot1.야외원림'에서 광장에 서있는 가로수를 잡아당기는 인체형상의 나무조각 군락은 작가 스스로의 고정 관념 때문에 자연의 설계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씨름하는 신강호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 같은 자연과 사람의 관계성 탐구는 2전시실의 실내원림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자연과 사람 사이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관계성을 'link'로 지칭하고 그 매개체로 '나무 정령'을 설정하여 작업의 개념으로 도입하였다. 작가는 자연의 숲이나 군락을 지은 나무를 관찰하면서 도시와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하고, 자연과 사람의 'link'에 대하여 나뭇가지 그대로의 형태를 따르는 인체조각을 연결하는 군상을 설계하였다. 그리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의 성장 줄기를 따라 자라는 나무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선을 주목하고, "나는 그저 잘 빚어낸 선들을 선택하고 조합할 뿐이다."라는 자신의 말처럼 자연이 설계한 나무 본연의 자연스러운 선과 생태적인 형태, 감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인체의 군상을 조각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독특한 방식을 통하여 서로 연결되어 변화와 균형, 조화로 순리를 따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시각화한다.

Spot4. 실내원림 김성수와 김현준의 설계 1전시실은 김성수의 투박한 나무 꼭두와 김현준의 나무 자각상으로 구성한 실내원림이다. 출입구에는 실제 사람 크기로 조각한 김현준의 'somewhither'가 대뜸 관객과 마주 서있다. 낯선 당혹감도 잠시, 부드러운 자연의 질감과 결, 향으로 인해 이내 호감으로 바뀐다. 작가에 의하면, 이 조각은 해답 없는 오랜 질문으로부터 현실 삶에 관한 조금의 실마리를 풀고 어딘가로 가려는 움직임의 표현이라고 한다. 김현준은 자기 스스로를 향해 이어지는 해답 없는 질문과 자극에 갈등하고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이 답답한 상황들이 동시대인의 고민이라고 생각했고, 동시대인의 심리적 혼란의 순간을 자각상으로 표현한 '응시', 갈등의 몸부림을 표현한 '60 상념', 누워서 공중에 부양하는 인체로 혼란의 외부 대상을 표현한 'Who', 시간과 공간이 멈춘 명상의 상황을 표현한 '?' 조각 등을 통하여 그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의 기준에 맞추려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며, 세계와 연결된 자신의 감각을 차단하여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게 자신을 맡기는 상태를 나무조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또 작가는 스스로와 대화하는 신중한 시간을 통하여 자신에 관한 또 다른 가능성의 싹을 틔우는 상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불분명하거나 소외되어 설명되지 못한 것들을 드러내어 이해하려는 공정하고 평등하며 균형 잡힌 자연설계의 시각화이다. ● 전시실 중간 벽에 걸린 '꽃을 든 남자'의 우측부터는 나무조각으로 자연설계를 읽어내는 김성수의 태도가 엿보인다. 그것은 한 덩어리의 나무가 작가의 손을 거치며 완벽하고 매끈하기보다는 거칠고 무심하지만 나무 본연의 생김새를 따라 모자라고 비어있는 대로 자연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설계이며, 중심이 아닌 주변과 소외된 것, 설명되지 못한 것들을 존중하여 사실과 진실을 회복시키려는 균형 감각이다. 김성수는 시대의 현실에 대응하는 서민의 해학을 담았던 '꼭두'의 조형성과 강한 원색, 회화적 감수성에 주목한다. 전통 장례의 상여를 장식했던 '꼭두'는 죽은 자의 영혼을 보호하고, 생로병사, 희로애락 등 고단한 현세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서민들의 욕망을 담아 내세의 이상세계로 이어주는 매개였다. 작가는 이 '꼭두'로부터 시작하여, 목적 없이 걸어가는 무표정한 인물, 꽃을 들고 서있는 남자, 바쁘게 걷는 남자, 꽃바구니를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 멍하니 서있는 사람, 말을 탄 여자와 어디론가 새를 타고 날아가는 남자, 300개의 '사람을 만나다' 군상 등 현대인의 상처와 긴장을 다독이며, 그리운 사람과 소시민의 일상들을 시각화하여 우리들 자신의 삶과 꿈을 돌아보게 설계한다.

기록전시. 기억공작소10년-미술의 태도 2층 로비 벽면에 설치한 53점의 전시기록은 2010년부터 시작해서 10년을 맞는 기억공작소전 기록 포스터 이미지들의 전시를 통하여 기존의 형식과 내용을 넘어서서 미술의 새로운 가치와 역할을 실험하는 동시대미술의 태도를 소개한다. ●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자연설계의 태도는 세계와 인간 정서에 대한 관찰, 진실과 사실의 탐구, 허위와 가식의 부조리不條理를 꿰뚫는 직관적 인식을 시각화하여 동시대미술의 공감과 경험의 지평을 확장시키려는 자연으로서 '물과 나무'의 탁월한 정치성이다. 따라서 미술가의 작업 모태로서 이번 자연설계에 대한 공유는 명확하고 새로워질 동시대미술의 어느 순간을 위한 우리들의 'Hello!'일 것이다. ■ 정종구

권효정_Fountain of life; WaterPark_혼합재료_350×440×440cm_2019
권효정_Fountain of life; WaterPark_혼합재료_350×440×440cm_2019

삶 속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은 현재의 나와 과거의 경험과 지식들을 통해 새롭게 관계되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매 순간 변화를 느끼고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 낸다. 예술가가 삶 속에서 예술을 마주하는 이러한 태도 속에서 Fountin of life는 탄생했다. 이제 삶의 터전인 광장(미술관)에 자리 잡은 예술품인 분수(Fountain of life)는 삶 속의 예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 모습은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내는 생명력과 시원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솟아오른 물은 다시 떨어지며 순환한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 되는 것은 그 원천이 물이기 때문이다. ■ 권효정

이상헌_못을 박다_은행나무, 느티나무, 먹감나무_163×50×90cm_2018 이상헌_가위눌림_느티나무, 은행나무_70×220×90cm_2018 이상헌_Flying man_편백나무, 은행나무, 소나무_110×510×450cm_2019 이상헌_떨어지다-두번째_느티나무, 먹감나무_195×90×61cm_2018
이상헌_Flying man_편백나무, 은행나무, 소나무_110×510×450cm_2019 이상헌_가위눌림_느티나무, 은행나무_70×220×90cm_2018

확실치 않은 미래, 불안한 현실, 작가의 삶과 가장의 삶 사이에서 겪는 딜레마, 이제 익숙한 생활이라 여겼는데 그러한 삶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 그 모든 무게를 나무를 깎듯이... ■ 이상헌

신강호_Link-나무정령들_나무_높이 210cm 내외×8, 가변설치_2019 신강호_Link-나무정령들_나무_높이 100cm 내외×15, 가변설치_2019
야외원림 출품작 / 신강호_Link-나무정령_나무_315×480×120cm_2019 야외원림 출품작 / 신강호_Link-나무정령_나무_345×240×230cm_2019

나무는 사람과 참으로 닮아있다. 작업실에 쌓여져 있는 나무를 무심히 바라다본다. 저 나무들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나무들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오늘도 난 나무들과 끊임없이 씨름한다. 나무의 선과 형태들은 내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형상을 하고 있다. 나는 그저 잘 빚어낸 선들을 선택하고 조합할 뿐이다. ■ 신강호

김성수_새를 탄 남자 외_나무에 채색_82×150×130cm_2019
김성수_사람을 만나다 124_나무에 채색_30×222×45cm_2010~9 김성수_사람을 만나다 176_나무에 채색_30×260×51cm_2010~9 김성수_꽃을 든 남자_한지에 아크릴채색_78×42cm_2013

우리의 전통인형 꼭두는 현실세계가 아닌 이상세계로 만든 나무인형으로 해학과 재치로 현대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인 색채와 도가적인 사상은 꿈과 환상이 있어 근간의 내 작업의 모티브로 줄곧 사용해 왔다. 매끈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비면 빈 대로 나무의 생김새로 의해 인의적인 것 보다는 자연을 존중한 무심한 소박미가 지금까지 추구한 나의 조형세계다. 이번 작업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 관한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다. 목적 없이 걸어가는 인물 군상의 무표정한 사람과 꽃을 들고 서 있는 남자, 바쁘게 걷는 남자, 꽃바구니를 들고 누굴 기다리는 여자, 멍하니 서 있는 사람이 어우려 지는 공간은 냉소한 이 시대의 상처를 서술적으로 담고 있다. 6점의 큰 군상들은 통나무 판의 물성과 알록달록한 채색으로 정교하지는 않지만 현대인의 특징과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큰 원목의 두꺼운 판제를 부조와 같이 체인 톱으로 굵고 강한 선을 그려서 표현하고 일부는 색칠을 하기도 한다. 입체의 형태를 조각하다 보면 앞면과 뒷면을 생각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앞면을 다하고 옆면을 보면 틀리고 이상한 형태의 자유로움이 더 멋있을 때가 있어 그대로 그 부분을 남겨 둔다. 이미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즉 이성적 이라기보다는 감각적 논리로 만든 조각이 원시성을 뛴다. 때로는 이렇게 얽매이지 않고 즉흥적이고 유희적인 작품이 된다. 이번 작품 역시 현대인의 인물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 김성수

김현준_응시_나무_74×67×26cm_2014 김현준_who_나무_157×214×170cm_2017 김현준_60상념_나무_각 35×13×13cm_2014 김현준_somewhither_나무_202×76×70cm_2019 김현준_?_나무_122×102×70cm_2019
야외원림 출품작 / 김현준_나를 너라고 부르는 너는 누구니?_나무_590×110×107cm_2018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질문의 연속이다. 그 질문들은 늘 명확한 해답이 없다. 검증되지 않은 생각과 추측들...질문은 질문으로서의 가치만 추구할 뿐 해답을 구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세상으로 나아가다 거대한 질문에 부딪치게 되고 그 난해한 시공간에 멈춰 서게 된다. 무엇을 찾아야 하고 어디에 의지해야 하는가. 질문이 다시 되돌아올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과 마주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그 순간에 어떤 변화가 오지 않을까. 딱딱한 껍질이 벗겨지고 무엇이 돋아나지 않을까. 가지가 자라나고 꽃을 피우지 않을까. ■ 김현준

2019 Hello! Contemporary Art-기억공작소 10년으로부터 자연설계展_ 봉산문화회관 2층 로비 기록전시.기억공작소10년-미술의 태도_2019

자연과 인공 그리고 초월의 세계 ● 동시대로 번역되는 'Contemporary'라는 용어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잠정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기에 『Hello Contemporary art』라는 제목 아래 펼쳐진 이번 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들이 인식하는 이 시대의 모습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나무를 재료로 한 작품들이 불러오는 자연은 인간의 삶과 얽혀들어 숲을 이루듯 펼쳐진다. 인공의 도시에 자연은 낯선 것으로 함께 있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공산품으로 구축된 분수대로부터 솟구치는 물을 길잡이로 하여 나무 조각들을 마주한다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인공의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을 만나는 모습이다. 이것이 또한 인공의 숲에서 삶에 자리한 자연의 울림을 불러내는 일이다. ● 예술작품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예술작품은 우리의 감각으로 인식되는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맥락 속에서 새로이 생성되는 의미의 덩어리이다. 그것은 삶의 필요로부터 삶 너머의 세계와 가능 세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그런 까닭에 예술작품은 총체적인 경험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경험의 주체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맥락과 관점을 가지고 그 작품에 연루된 요소들로부터 하나의 경험을 완성해낸다. 예술작품은 그렇게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술작품으로부터 다시 우리를, 우리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 일상에 함몰되어 사는 일상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청준의 『줄』이라는 소설의 화자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소재를 확인할 방법조차 잃어버린 자가 된다. 대상에 함몰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 미끄러져 다른 것으로 옮겨 갈 수 있을 만큼의 틈은 시대를 추동하는 동력이 되고 예술가는 예술작품을 통해 그 틈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시대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틈을 만들어 무언가를 인식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 틈으로부터 생성과 변화는 시작된다. 예술은 그렇게 욕망과 밀착된 시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우리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동시대 예술에는 시대를 비판하는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에 밀착된 상태로 있거나 현실을 벗어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일 것이다. ● 틈이 불러오는 긴장으로 작품은 현실과 공존한다. 하지만 기술과학의 첨단으로 인공지능을 말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자연은 어느새 어둠 속에 갇힌 말이 되어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스스로 있는 바 그대로의 것으로 기술로 포획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리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고 만물을 있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자연은 좀처럼 쉽게 다룰 수 없는 사태의 내용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까닭에 하이데거는 자연의 본연한 존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기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에게 자연은 근본적으로 '드러날 수 없는 사태 연관'과 더불어 있기 때문이다. 친숙했던 자연의 결을 담는 것은 전자장치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현란한 소리보다 작다. 밖을 향해 질책하는 목소리보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리는 작다. 그러나 작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삶에 대해 말하는 그 자리에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 내재해 있다. 큰 목소리만이 목소리인 것은 아니다. ● 4차 혁명 시대를 말하는 시대에서 자연을 불러내는 일은 시대착오적이고 시대를 역행하는 흐름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인 한편 자연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 본연한 무엇을 상실한 채 살아갈 수 없다. 기술과 예술은 인위적인 것으로서 자연과 상대되는 개념의 말이다. 이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이러한 이질적인 개념의 공존을 통해 한낱 도구에 불과한 것이 되어가는 자연을 그리고 인간을 돌아보게 한다. ● 권효정은 자연이 가진 물성을 통해 인공적인 환경과 공존하는 삶을 표현하는 데 주목한다. 김현준은 생명체가 뻗어가는 것과 같은 리좀적 사유방식으로 작품을 전개 시킴으로써 자신의 작품들을 생성의 과정에 열어 둔다. 하나하나의 작품은 그러한 사유방식의 결정체로 드러난다. 한편 김성수, 이상헌, 신강호는 자연물로서의 나무를 공통의 소재로 하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만물의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해학적 어조로 던지는가 하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갖는 개체로서의 실존적 상황과 군집, 그리고 개체를 연결하는 관계성에 대한 탐구를 선보인다. 이를 통해 순환하는 자연과 삶의 축제가 만나고 관계 속에 얽힌 집적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인간 실존의 무게를 느끼기도 한다. 변화 속에 끊임없이 확장되어가는 생성과 초월의 세계를 향한 열망이 자리하기도 한다.

인공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의 세계 ● 권효정의 작품, 「삶의 분수 Fountain of life; water park」는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대형 드럼통으로 뼈대를 이루고 있다. 푸른색과 흰색으로 인공의 색감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쌓여 있는 분수는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 서로 다른 인연의 결과로 모인 잡다한 물건들로 만들어진 바벨탑이다. 삶의 무질서함, 삶의 다양함 속에 자리한 사물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단순한 규격품이 아니다. 일상 속에 들어와 다양한 삶의 이야기로 다시 구성되는 가변적인 사물이다. 대형 드럼통이 쌓인 위에 고깃집이나 선술집에서 빙 둘러앉아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었을 양철로 된 드럼통 탁자가 자리해 있다. 양철 드럼통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샤워 헤드를 달고 사방으로 시원하게 물을 뿜어낸다. 그 위로 어느 집에나 하나쯤 있을 법한 스테인리스 양푼이가 맨 꼭대기에 놓여있다. 여기에 일상의 가벼움과 가변적인 삶을 담아 낼 플라스틱 꽃, 공, 저울, 컵, 우산, 어망, 플라스틱 의자 등이 곁들여진다. ● 그러나 그것이 일상의 삶을 변화시켜온 기술 세계의 징표로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자라며 보아온 시장이라는 공간을 삶의 활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우리의 삶은 이미 인공의 산물들이 넘쳐나는 세계에 자리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삶의 저변에 흐르는 자연적 존재가 직면하게 되는 삶과 죽음, 변화에 대한 인식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인공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삶의 복잡다단함을 감싸고 도는 더 근원적인 것은 자연의 존재로 감싸고 흐르는 생태적 환경이다. 물은 드럼통 더미를 타고 흐르며 일상의 사물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일상의 사물은 그 양적인 크기로 인해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드럼통을 채운 물과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로 인해 분수로서 생명을 얻게 된다. 물이 중력을 거슬러 솟아오르기 위해 기술의 힘을 빌리지만 뿜어져 나온 물의 경쾌함은 다시 흩어진다. 자연을 거슬러 분수가 만들어 낸 환희는 구축된 사물들을 타고 다시 흘러내린다. ● 물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그릇의 형태에 따라, 타고 흐르는 플라스틱 통의 형태를 따라 끊임없이 모양을 바꾼다. 물은 각각의 오브제들의 쌓임 사이로 흐름으로써 하나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물은 일정한 형태로 규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힘으로 대상을 정화하고 살아나게 한다. 권효정의 「분수」에서 물은 이질적인 것들을 잇는다. 일상과 예술을 한 자리에 끌어오고, 삶의 누추함과 경쾌함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작품은 분수의 물줄기로 퍼지는 삶의 기쁨을 선사하는 동시에 무상함으로 서성이게 한다. 「삶의 분수」는 삶 가운데 예술이 주는 청량함과 휴식이 있는가 하면 삶을 감싸고 흐르는 생태적 환경을 떠올리게 한다.

생성으로서의 작업 ● 김현준은 나무를 깎아 들어가 인물의 형상을 만든다. 그의 작업은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물상을 통해 표현한다. 김현준의 작업은 이 시대에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성찰 일기를 쓰듯 깎아 낸 육십 개의 목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십이간지 중 하나인 토끼를 자신에 빗대어 바깥 세계를 향한 커다란 귀를 가졌지만 나약한 상태의 형상으로 만들어 간다. 육십은 동양에서 인간의 일생을 상징하는 숫자로 이해된다. 십간과 십이지를 순서대로 조합하여 가면 육십 번째 되는 해에 자신이 출생한 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연도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육십갑자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삶과 작업 방향에 대한 고민으로 빚어낸 「60상념」은 선명하고 단호한 선으로 조각되기보다 나무 덩어리 속에 갇힌 듯한 토끼의 형상이 드러난다. 「60 상념」은 마치 누에가 고치 속에서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생성되기 위한 잠재태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 이유는 작품의 흐름은 자연으로서의 인간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시선을 확장하는 가운데 나와 타자, 나를 둘러싼 생활 세계에 대한 인식과 혼란스러움으로부터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새로운 삶의 싹을 키워내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 각각의 작품은 하나의 개체로서 완결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이전의 작품이 안고 있는 고민과 특성을 안고 미끄러지면서 다른 것으로 옮아간다. 겹침과 펼침이 무수히 반복되는 이러한 형태의 작업은 나무라는 매체가 가진 생태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작품들이 하나의 생명체가 생태적 연결고리 속에 펼쳐지는 양상을 보여준다. 「응시」에서 토끼의 형상을 지닌 조각상은 아직 완전한 인간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관객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 사지를 땅에 붙이고 타자를 향해 달려가려는 것인지 물러서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몸짓을 하고 있다. 이런 혼란의 상태의 원인이 작가는 외부에 있었다고 말한다. ● 「Who」에서 밴딩 처리된 리본 형태의 나무는 채색으로 인해 금속처럼 번쩍인다. 현실의 스펙터클에 몸을 내맡기고 살아가는 무중력 상태의 인간을 표현하듯 인물의 눈은 가려져 있다. 작가가 인식한 현실은 포장된 세계 속에 살아가는 타자들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시대의 흐름에 맡긴 삶이란 결국 세상의 가치관에 몸과 자신의 감각을 맡긴 채 눈을 감는 것이다. 자연의 한 존재로서의 생명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세계가 있고 자본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개별자들이 자신을 알 수 없는 혼란 속에 빠뜨리고 있음을 알게 된 작가는 다른 문제로 시선을 돌린다. ● 김현준은 우리가 마주한 세계를 인과관계로 결정된 세계가 아니라 무한히 열린 세계로 인식함으로써 스스로를 그 세계 속에서 펼쳐 보이려 한다. 작품 「?」을 통해 있는 듯 없는 듯 잡히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나를 너라고 부르는 너는 누구니?」, 「somewhither」 등에서 나무를 재료로 한 인물 조각상이라는 접근방식을 통해 미세한 움직임, 즉 막 돌아서 오는 듯, 돌아서 나가는 듯한 사이, 일어서는 듯, 주저앉는 듯한 사이의 순간을 인체의 동세와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담아 내려 한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린 생성의 세계에 대한 접근을 통해 인간존재가 가진 생명성을 표현하려 한다. 생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마주침 속에서 전체 생태계와 관계 맺으며 생성되고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who」에서 판재를 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 통나무를 깎아 인물상을 만드는 것도 전체성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어떤 시작점과 목표지점에 대한 약속된 답이 아니라 열린 질문과 답들 속에 과정으로서의 삶은 끊임없이 자기의 의미로 생성해가는 존재 앞에 놓여있다. 작가는 이를 보여주려는 것으로부터 생명을 박제화시키는 것에 맞선다.

생태적 관계망에 있는 치유로서의 자연 ● 나무라는 재료를 따라가는 작업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난다. 하나는 이상헌의 작업이 보여주는 길이다. 이상헌은 인물 조각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치유한다. 그러한 그의 시선은 인간의 내면으로 향해 있다. 다른 하나는 신강호의 작업이다. 신강호가 주목하는 것은 관계이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나무의 형상으로부터 얻어진 선을 통해 형상된다. 두 작가 모두 자연적 소재가 갖는 치유력을 믿고 작품의 재료를 기존의 화학적 재료에서 나무로 옮겨 왔지만, 이들의 작업은 안과 밖, 하나와 다수, 고독과 연결 등으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그러기에 작품을 풀어가는 방법도 다르다. ● 이상헌에게 나무는 재료인 동시에 작가 자신이다. 나무의 무르기와 단단함, 색깔 등 나무가 가진 결을 중요하게 살핀다. 이 과정에서 나무의 생장과 관련한 생태적 환경을 짐작하게 된다. 재료를 고르는 일은 작품의 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섬세하고 세밀한 작업을 위해서는 단단한 나무를 고른다. 이런 나무 고르기는 비단 형태를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무를 작가 자신의 의지로 나무를 깎아 들어가기보다 나무가 지닌 결에 맞추어 작업한다. 나무와 인간을 분리하지 않으려는 생각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 특히 자연물인 나무는 그 자체로 생태계의 순환을 보여주는 재료이다. 그래서 재료를 다룰 때 그는 생태계의 질서 속에 있는 나무의 물성을 따르는 방식을 찾는다. 틀어짐이나 변형을 막기 위해서 화학적인 처리나 인위적인 장치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나무 속을 파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은 자연을 거슬러 자연의 본성에 개입하는 일을 최소화하는 접근이다. 또한, 나무의 속을 파내는 고된 방식을 통해 가벼워진 작품은 크기라는 형태적 제약을 넘어 설치를 자유롭게 한다. 5미터에 달하는 「flying」을 천장에 매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 한편으로 나무는 그에게 자신의 내면의 아픔을 담아내는 존재로 자신과 동일시된 대상이다. 일상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자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되고,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끊임없이 추락하는 것인 일상인 삶, 현실을 벗어난 꿈에서조차 「가위눌림」 당하며 안식을 얻지 못하는 것은 비단 작가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의 무게, 실존적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염원들을 현대인들은 가지고 산다. 작가는 자신을 통해 오늘의 삶의 조건을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과 나무를 하나로 보고 삶의 고통과 아픔을 나무 조각에 투영시킨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작품을 매개로 관객이 치유되기를 바란다. 작품 「flying」와 「dance201805」 는 치유를 의미하는 작품이다. 자연을 매체로 한 작업에서 치유란 도구화된 이성에 의해 상실된 자연의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 그런가 하면 신강호에게 나무는 발견된 오브제이다. 선택의 과정이 작품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는 작품의 제작을 위한 발견이 즉흥적이고, 우연적으로 이루어져 자신은 주어진 것에서 선택할 뿐이라고 말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을 비롯한 자연물의 형상을 발견하는 일은 그에게 작품의 첫 번째 단계이다. 이때 신강호는 나무에 자신을 투영하기보다 나무가 지닌 형태로부터 인간이나 다른 자연물의 형상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자연과 소통한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이 생각한 형상을 얻기 위해 다른 가지들을 덧붙인다. ● 발견된 오브제로서의 자연물인 나뭇가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 작가가 중요시하는 것은 자연이 간직한 선과 형태의 아름다움이다. 자연물의 형태는 인간을 위해 그러한 모습을 지닌 것이 아니라 햇빛과 바람을 따라 생존하는 가운데 자연히 생긴 삶의 몸짓이다. 작가는 자연이 간직한 삶의 흔적으로 만들어진 선에서 인간이라는 또 다른 자연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자연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생태계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이 전체 생태계에 참여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개입의 최소화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말하기보다 생태계 일원으로서의 평등한 지위에서 자연에 접근하도록 한다. ● 이러한 자세는 작품을 구성하는 형태에서도 드러난다. 발견된 나뭇가지를 군집을 형태를 이루도록 설계하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체로서의 자연물이 깊은 연관 관계 속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강호의 작품 「Link-나무 정령」에서 보여주는 관계는 인과적으로 분명한 직선적인 관계라기보다 복합적이고 중첩되어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이다. 그리고 숲이라는 작은 생태계로부터 지구를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 또는 지구 너머의 우주 차원에서 생명이 자리한 관계망의 표현이다. 보이지 않는 관계망은 주워 온 나뭇가지를 이용한 예술적 행위를 통하여 군집형태로 서로를 지탱하며 작품으로 서 있게 된다. 비바람 속에 쌓여 온 자연의 선은 부드럽지만 강하다. 그렇게 중첩된 선은 공간을 장악한다. 생명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생명의 힘이다. 양감이 주는 무게감을 뚫고 나온 선은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려준다. ● 3미터에 달하는 선적인 형태의 개체는 스스로를 지탱하여 서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먹구름이 속에서 울고, 밤새 무서리가 내리고 나에게는 잠도 못 이루는' 밤이 있어야 한다. 전체가 하나와 관계하고 하나 속에는 만물이 있다. 나뭇가지들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서 있는 것은 자연 생태계의 관계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망의 은유이다. ● 이처럼 이상헌의 작품이 개체에 초점을 둔 관계망을 보여준다면 신강호는 생태계 전체의 관계망을 조망하게 한다. 생성의 자리는 어떤 것이 우위를 점유하거나, 타자를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배제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가 좋고 둘이 나쁘다고 셈을 하지도 않는다. 각 개체는 그 자체로 의미 있고 그 자체로 온전한 삶의 잠재태로서 생태계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개체는 생태계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기에 인공의 삶에서 배제된 생명은 자연에서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전시가 목표로 하는 자연설계는 결국 생명의 그물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이 된다. ● 나무 작업에서 보이는 투박함이나 자연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자연의 편안함을 느끼게도 하지만 낯섦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세련된 인공의 이미지에 익은 감성에 던지는 그 낯섦으로, 그 불편함으로 찬란함이나 성장이란 이름으로 타자를 끊임없이 포획하는 눈길을 거두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때 작은 목소리는 작은 목소리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전복적이다. 훼손된 것들에 눈길을 돌림으로써,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끊임없이 함으로써 자신의 시대를 살아나가는 진지하고 정직한 사유를 주목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서의 자연 ● 신강호, 이상헌이 현실을 살아가는 개체로서의 인간과 생태계 전체 관계망 속에 자리한 인간의 의미를 통해 치유의 의미를 보여준다면 김성수는 현실의 삶으로 드러나는 형태와 현실 너머의 작용인 초월적 삶으로서의 자연을 말한다. 이때 초월은 나무, 물, 인간으로 실재하는 것들처럼 우리의 감성에 와 닿는 세계가 아니라 그러한 세상을 펼쳐내는 세계에 대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 김성수에게 자연은 있는바 그대로로 있음이다. 작가는 나무를 깎아 꽃을 만들고 새를 만들고 사람을 만든다. 소중한 무엇이고 누구이면서 또 특별히 누구라 할 바 없는 이름 없는 그들로 있는 이들이 새겨진다. 어떤 것이 우뚝 솟아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만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그려지고 세워진다. 판재에 거친 끌질이 지나간 자리로 윤곽선을 새긴 인물은 막 도화지에 스케치하여 오려 세운 듯하다. 현실 속 인물인 듯 아닌 듯 텅 빈 눈에 단순화된 인물과 사물의 형태는 소박하다. 비어있는 것은 비어있는 대로, 거친 끌질이 지나간 자리는 자리대로, 무엇을 더하거나 뺄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 작가는 오리를 타고 날아가고 싶다고 한다. 장자의 「소요유」에 나오는 붕이 아니라 집 근처에 다니는 오리를 타겠다는 작가에게서 작품에서 느껴지는 해학과 소박함이 배어 나온다. 붕은 수천 리에 달하는 날개를 실을 수 있는 큰바람을 얻기 위해 구만리를 날아오르고, 여섯 달을 가서야 숨을 한번 쉰다는 큰 새이다. 붕의 이야기로 표현된 장자의 절대 자유의 경지는 작가에게서 오리의 비유로 표현된 자유의 경지가 된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획득되는 자유와 절대적 경지에서의 자유는 같은 것이 된다. ● 인물의 옷을 원색의 선명함으로 채색함으로써 얻게 되는 밝고 화사함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에 고요한 어둠이 서려 있는 것은 '꼭두'의 형식을 빌려 왔다는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죽어있으면서도 살아 있는 이 시대의 삶에 대한 김성수의 역설적 어법일 수 있다. 삶은 여전히 부조리와 모순 속에 있고, 복잡해지는 생활 환경은 불안과 긴장감을 높이고,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기술 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삶은 더 제한적이다. 작가는 긴장된 현실을 부정하거나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하지 않는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원인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적 상상력으로 이 부자유함에서 벗어나는 초월의 기저를 받아들인다. ● 「새를 탄 남자」는 장자에 대한 오마쥬이다. 예술적 상상력으로 현실 위에 현실을 초월하는 기저를 마련함으로써 더 적극적으로 현실과 공존하면서 부자유한 현실에 포획되지 않고 미끄러져 나간다. 작가는 삶과 죽음을 잇고, 희망과 절망, 그리고 현실과 초월의 세계를 잇는다. 죽음과 삶이 둘이 아니고 절망과 희망이 둘이 아니며 현실과 초월의 세계가 둘이 아닌 세계를 통해 부자유한 현실을 초극한다. 일상의 순간이 꽃을 들고 있는 남자와 여자, 빨간 옷을 입고 걸어가는 남자, 노란 티를 입은 여자 등으로 표현되어 흩어져 있는 것을 뒤로하고, 300명의 작은 군상을 빼곡하게 배치한 두 개의 판재를 이끌 듯 공중에 매단 채 흰옷을 입은 남자는 흰 새를 타고 천장에 높이 매달려 앞서 나간다. 마치 시류에 몸을 맡겨 살아가는 현실의 소소한 즐거움으로부터 결연히 일어나듯 일어나 오리를 타고 날아간다. ● 인물의 다소곳함과 명도 높은 채색의 선명함으로 어긋난 지점에서 이질성의 공존이 주는 미묘한 울림이 있다. 작가는 스펙터클의 질주함 뒤에 드리운 그림자를 읽어내고는 무심하게 툭툭 다듬어 조각하거나 새긴다. 그 그림자를 인물들의 눈에, 긴장한 듯 조심스러운 손 위에 얹고는 밝고 생생한 색으로 채색하여 아무 일도 없는 듯 넘어간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그 경계지점으로 삶을 길어 올리는 김성수의 날카로운 시선이 시간을 관통하여 오늘을 말한다. ● 표현방식이나 매체의 새로움만으로 이전과 다른 오늘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복을 위해서 이전 시대와 다른 무엇으로 선 긋기를 하는 것만으로 동시대를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세계와의 어긋남을 드러냄으로써 그 이질성과 공존을 끊임없이 작동하게 하는 그러한 지점들로부터 시대는 생성된다. ■ 배태주

기억공작소10년-미술의 태도 기록(2008, 2010-2019) History 2008~ 싹틔우기    00 홍현기의 지팡이(2008. 3. 1-2008. 4. 6, 3전시실), 홍현기    00 최병소-기억공간(2008. 4.22-2008. 5.25, 3전시실), 최병소    00 이건용-나, 지금, 여기(2008. 6.13-2008. 7. 6, 3전시실), 이건용

2010    00 꿈꾸는 카메라 in 잠비아 프로젝트대구(2010. 8. 5-2010. 8.22),    01 기억깨우기1(2010. 9. 2-2010. 9.12), 정병국    02 기억깨우기2(2010.11. 4-2010.11.14), 김호득    03 기억깨우기3(2010.11.25-2010.12. 5), 이명미    04 기억깨우기4(2010.12.16-2010.12.26), 류재하

2011    05 기억공작소1(2011. 4.29-2011. 6. 5), 김성수    06 기억공작소2(2011. 6.28-2011. 7.31), 임창민    07 기억공작소3(2011. 8.12-2011. 9. 4), 오상택    08 '1초수묵'-들풀(2011. 9.23-2011.10.16), 임현락    09 야생(2011.10.28-2011.11.27), 배종헌    10 Tetris(2011.12. 9-2012. 1. 8), 정은주

2012    11 dreaming book(2012. 3. 2-2012. 4. 1), 이지현    12 Nega-Posi(2012. 4.13-2012. 5.13), 김영진    13 Anywhere(2012. 5.25-2012. 6.24), 정용국    14 Truth in Non-Reality(2012. 7. 6-2012. 8. 5), 하광석    15 유산 Heritage(2012. 8.16-2012. 9.16), 윤영화    16 Layers & Dimensions(2012.11. 7-2012.12. 9), 박종규    17 contemplation(2012.12.21-2013. 1.20), 유영환

2013    18 거주(2013. 3. 8-2013. 3.31), 이기칠    19 유기체적 풍경(2013. 4.12-2013. 5. 5), 김주연    20 Fantasiless(2013. 5.17-2013. 6.30), 장준석    21 단 하나의 책상(2013. 8.16-2013. 9.15), 안규철    22 Feed back(2013. 9.27-2013.10.27), 김희선    23 군인들1978(2013.11. 8-2013.12. 1), 권부문    24 지물(2013.12.13-2014. 1.19), 송광익

2014    25 남과 북(2014. 3.26-2014. 5.25), 안창홍    26 비디오아티스트1978(2014. 6.11-2014. 8.10), 비디오-김영진    27 비디오아티스트1978(2014. 6.11-2014. 8.10), 비디오-고 박현기    28 비디오아티스트1978(2014. 6.11-2014. 8.10), 비디오-이강소    29 비디오아티스트1978(2014. 6.11-2014. 8.10), 비디오-최병소    30 wiping chloth(2014. 8.27-2014.11. 2), 김구림    31 기억공작소4(2014.11.19-2015. 1.18), 권오봉

2015    32 A Passage-창문밖을 나선풍경(2015. 2.25-2015. 4.12), 유근택    33 얼굴 Face(2015. 4.24-2015. 6.21), 권순철    34 metal & tableau(2015. 7. 3-2015. 8.23), 이교준    35 그림자(2015. 9. 4-2015.11. 1), 안수진    36 Lip-sync(2015.11.13-2015.12.27), 안정주

2016    37 순환-깃(2016. 1.15-2016. 3.13), 박철호    38 실크로드프로젝트-기록(2016. 3.25-2016. 5.22), 정재철    39 landscape in between(2016. 6. 3-2016. 7.31), KAYIP    40 공작의 기억: 나무와 신기루(2016. 8.12-2016.10.16), 이명호    41 지구를 걷는다(2016.10.28-2016.12.25), 오쿠보 에이지

2017    42 생각이 그려지는(2017. 1.13-2017. 4. 9), 서용선    43 사람과 사람없이(2017. 4.21-2017. 6.25), 윤석남    44 running railroad(2017. 7. 7-2017. 9.10), 홍명섭    45 하얀 흐름(2017.10.20-2017.12.31), 노병열

2018    46 애매한 기억(2018. 1.16-2018. 4. 1), 기쿠치다카시    47 영원한 기억(2018. 4.13-2018. 7. 1), 유비호    48 눈물(2018. 7.13-2018. 9.30), 서옥순    49 나는 하나가 아니다(2018.10.19-2018.12.30), 오인환

2019 현재    50 흔적 - 비실체성(2019. 1.17-2019. 3.31), 김성룡    51 놀자(2019. 4.12-2019. 6.30), 김태헌    52 뉴욕1985(2019. 7.12-2019. 9.29), 권정호

Vol.20190719g | 2019 Hello! Contemporary Art-기억공작소 10년으로부터 자연설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