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사우나 After Sauna

전우진展 / JEONWOOJIN / installation   2019_0726 ▶︎ 2019_0802

전우진_Absorbing Objects_싱크대, 두루마리휴지, 물공급장치, 혼합재료_가변설치_2018

초대일시 / 2019_072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율곡로 33(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고급 호텔의 침대 머리맡에는 휴지가 없다. 성적인 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용도를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의 불투명함이 그곳을 깨끗하고 안전한, 교양있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감각할 수 있게 하는 빈틈을 만든다. 반면에 들어서자마자 침대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휴지와 작은 종이 상자부터 눈에 띄는 방도 있다. 러브 호텔이라고도 불리는 그러한 공간은 이름과 존재와 목적이 투명하게 연결된다. 그곳에 놓인 사물들의 쓰임 역시 그만큼 자명하다. 무엇이든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런 곳에서 감각적인 균열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 사우나라는 공간이 가지는 균열은 이러한 투명과 불투명 사이에서 벌어진다. 사우나의 정해진 쓸모는 열기로 몸을 감싸 땀을 빼는 것에 있지만, 특정한 맥락에서 그 공간은 성적인 행위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 되기도 한다. 공공연한 것 같으면서도 애매하고 알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밖으로 내걸린 간판과 그 안쪽의 기능이 어긋나 있다. 이름도 존재도 목적도 유동적이다. 그 속에서 감각과 인식은 계속해서 미끄러지기를 반복한다.

전우진_Absorbing Objects_싱크대, 두루마리휴지, 물공급장치, 혼합재료_가변설치_2018
전우진_Steaming_전기밥솥, 물, 혼합재료, 전기작동_30×25×30cm_2018

그리고 전우진이 만들어낸 축축한 조각들이 있다. 액체를 머금은 사물들. 촉촉과 축축 사이 미묘한 감각의 낙차에서 에로틱한 상징들이 자꾸만 들러붙는다. 사우나라는 낱말과 만나며 비체적인 것들과 연결되기도 한다. 불결한 촉각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비체가 아니라 깨끗한 액체이더라도 우리는 무언가 젖어버린 것을 오염되었다고 본다. 액체가 물질의 내부에 스며들면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가 촉진되어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견고한 형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 젖어버린다는 것은 존재의 위상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젖은 휴지는 마른 휴지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이 된다. 정해진 쓸모를 잃어버린 소모품은 즉각 그 이름을 잃어버리고 쓰레기로 불린다. 물론 여기에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그것들이 조각이라는 전통을 경유한 미학적인 오브제로 구원되어 있다. 그 오브제들은 찜찜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물체와 미술사적 자장에서 조각적인 것으로 읽히는 상태를 오간다. 불결한 것과 청결한 것, 시각적인 것과 촉각적인 것, 마른 것과 젖은 것, 뚜렷한 것과 애매한 것, 단단한 것과 무른 것, 역사적인 것과 당대적인 것. 어떤 쪽에서 속하지 않고 계속 사이의 공간에 머물기 위하여 그것들은 부단히도 움직인다.

전우진_Dark Twins_혼합재료_25×15×15cm_2017_Photograph by Dan Weill
전우진_Two or Thre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9_Photograph by Dan Weill

정체성과 정체성 사이에, 욕망과 욕망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들이 있다. 항상 과정 속에 있는 정체성들. 정해진 자리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것들. 도저히 본질화되지 않는 존재들. 그 자체로 견고한 상징의 세계를 위협하는 것들. 그 존재들은 안전해 보이는 곳에서 불쑥 솟아나기도 하고, 작은 균열에서 콸콸 쏟아져 나와 세계를 축축하게 적셔버리기도 한다. 퀴어의 미학과 정치는 그곳에 있다. 단단한 상징들에 대한 믿음의 체계는 그러한 존재들에 의해 배교 당한다. ● 사우나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바깥의 온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지만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사우나 이후, 우리에게 문밖의 세계는 여전히 그토록 단단할 수 있을까? ■ 권태현

Vol.20190726c | 전우진展 / JEONWOOJIN / installation